[우리말 산책] 우리말이 오르면 우리나라도 오른다
“말이 오르면 나라가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린다.”
국어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주시경 선생이 한 말이다. 백번 천번 옳은 가르침이다. 말과 글이 병들면 그 말과 글을 쓰는 이들의 정신이 피폐해지고, 그런 정신으로 위대한 문화를 이룰 수는 없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하면서 가장 힘쓴 정책도 ‘우리말글 말살’이었다. 우리말글을 없애야 한민족의 정신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우리말글을 지켜냈고, 그 정신으로 식민의 황폐함과 전쟁의 폐허를 딛고 오늘의 한국을 일궈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우리말글에 대한 홀대가 심해지고 있다. 직장에서 “부장님, A사 제안은 ‘리스크’가 큰 반면 B사의 전체 ‘가이드라인’이 무난하니 그것으로 ‘컨펌’해 주시죠” 따위로 얘기하는가 하면, ‘더치페이’ ‘노하우’ ‘세일’ ‘모티브’ 등은 이제 생활언어가 됐다. “부장님, A사 제안은 ‘위험 부담’이 큰 반면 B사의 전체 ‘지침’이 좋으니 그것으로 ‘승인’해 주시죠”라고 하면 의미전달이 명확해진다. 더치페이는 ‘각자 부담’, 노하우는 ‘비법’ ‘비결’ ‘기술’ ‘방법’ ‘경험’, 세일은 ‘할인 판매’, 모티브는 ‘동기’ 따위로 쓰면 충분한데도 말이다.
물론 세월이 흐르고, 그 속에서 지구촌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현실에서 ‘우리 것’만 고집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거 ‘인터체인지’로만 쓰던 말이 지금은 ‘나들목’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렇듯 말은 자꾸 써야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정겨워진다. 따라서 외래어와 경쟁해 살아남을 우리말이 있으면 그것을 쓰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우리말이 오르고, 우리나라도 오른다.
예를 들어 영어 ‘캠핑’은 ‘들살이’로, 일본말 찌꺼기인 ‘삐끼’는 ‘여리꾼’으로 쓸 수 있다. 한자말 ‘야영(野營)’을 뜻하는 순우리말로 ‘들살이’가 있고, “상점 앞에 서서 손님을 끌어들여 물건을 사게 하고 주인에게 삯을 받는 사람”을 예부터 ‘여리꾼’이라고 불렀다.
9일은 577돌을 맞은 한글날이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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