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 복지제도에 도사린 ‘느린 폭력’
지난 9월 ‘제3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이 발표됐다. 향후 3년간 기초생활보장제도 운영의 토대가 되는 종합계획은 제도 운영 계획을 넘어 윤석열 정부의 빈곤에 대한 인식과 대응을 대표한다.
이번 종합계획안에는 몇가지 주목할 지점이 있다. 먼저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가 이번에도 담기지 않았다. 중증장애인에 한해 부양의무자의 연소득과 재산 기준을 각각 1억원, 9억원으로 인상하는 완화안만 예정돼 있다. 둘째, 의료급여 환자의 자기부담금을 인상하고 장기 입원에 대한 승인 절차를 추가하는 등 수급자 부담은 늘리고 이용은 까다롭게 만드는 개편을 준비 중이다. 셋째, 급여관리 강화라는 이름으로 부정수급 조사 및 소득·재산 변동에 관한 수급자 본인의 신고 의무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이 있다.
3가지 문제에 주목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2017년 보건복지부가 약속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가 2026년까지도 이행되지 않을 예정이다. 2020년 겨울 사망한 ‘방배동 모자’조차 이번 종합계획에 따르더라도 수급자가 될 수 없다.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의료급여 축소는 복지수급자를 향한 중요한 공격 중 하나다.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의 2006년 ‘대국민 보고서’는 의료급여 수급자들의 과다한 의료 이용을 국민에게 사죄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때부터 꾸준히 이어져온 의료급여 수급자에 대한 편견은 의료행위를 결정하는 것은 환자가 아니라 의료기관이라는 점도, 만성적 치료에는 만성적 질환이 앞선다는 사실도, 개인의 질병을 구성하는 빈곤의 사회적 맥락도 삭제한다.
이번 종합계획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수급자의 책임을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급여관리 강화뿐만 아니라 노동능력이 있(다고 판단하)는 수급자들의 시장 취업을 강조하는, 이른바 활성화 정책도 눈에 띄는데, 실업급여 개악과 각종 민영화까지 함께 보면 신자유주의 복지개혁이 떠오른다. 독일은 ‘하르츠 개혁’에 대한 반성을 시작했다는데 우리 시계는 거꾸로 간다.
롭 닉슨에 따르면 빈자는 ‘느린 폭력’에 의해 존엄과 역능을 서서히 잃는다. 느린 폭력은 일반적으로 폭력으로 간주되지 않는,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결과가 드러나는 폭력이다. 무능력을 입증하면 도움 받을 수 있지만, 능력을 통해 스스로 빈곤을 극복하라는 역설적 주문을 반복하는 복지제도 역시 느린 폭력의 일부는 아닌가. 제도의 모순된 요구는 빈곤 함정 그 자체다.
이번 종합계획안은 3년을 아우르는 전망이 잘 보이지 않는다. 편차가 큰 변화를 모조리 묶어놓아 평가하기도 까다롭다. ‘약자 복지’가 대표 브랜드인 정부는 내년도 수급비 인상을 생색내느라 여념이 없지만 우리는 그 너머를 보아야 할 때다. 근본적 변화를 도모하는 동시에 제도 전반의 후퇴를 막기 위해서는 ‘약자’가 아니라 ‘시민’의 권리가 필요하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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