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오부치 선언 25주년… "과거사, 중장기 로드맵 마련해 풀어야"
尹 정부 출범 후 '마이너스→제로베이스' 복원
"역사갈등, 중장기적 로드맵 마련해 풀어내야"
'21세기 한일관계의 이정표'.
1998년 10월 8일 발표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소개할 때 주로 쓰는 표현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의 공동선언문은 2000년대 한일관계 방향성을 제시한 '길잡이'였다. 선언 25주년을 맞은 8일 한일관계 전문가들은 지속가능한 한일관계 구축을 위해서 양국의 장·단기 이행 계획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일관계 분기점' 김대중-오부치 선언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은 비대칭적이었던 한일관계를 극복해 서로 동등한 시선에서 상호 존중 의사를 담은 외교문서다. 처음으로 일본 정상의 한국 식민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과'를 담았고, 우리 정부는 전후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리더십을 평가했다. 상호존중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정치 △안보 △경제 △인적·문화교류 △글로벌 이슈 등 5가지 미래지향적 협력 방향을 제시했고 43개 실천계획을 세웠다. 이후 한일 인적 교류뿐 아니라 양국 교역·투자 규모는 급증했다.
하지만 최대 현안인 '과거사'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못했다. 당시 봉합됐던 위안부 문제는 한일 위안부 합의와 재검토로 이어졌고, 우리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과 이에 대한 보복조치인 일본의 수출규제로 양국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한일관계, 과거사·정치 불안 여전히 변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일관계는 지난 3월 정부의 강제동원 피해배상과 관련한 '제3자 변제' 방식의 해법 발표로 전환점을 맞았다. 아울러 윤석열 정부는 한일 기본조약 체결 60주년을 맞는 2025년을 계기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뒤를 잇는 '지속가능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위한 공동선언(가제)'을 추진하고 있다.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계승하면서 국제환경 변화에 따른 새 방향성을 모색하겠다는 취지다. 한일 전문가들은 이 같은 관계 개선 흐름을 긍정 평가하고, 일본 내 과거사 부정 움직임과 한국의 정권교체에 따른 대일정책 변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극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당장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역사 문제'를 다룬 새 공동선언에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집권여당인 자민당에선 "과거사에 대해 더 이상 사과하지 않는다"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역사인식이 남아 있는 탓이다. 이날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자민당에선 '식민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라는 표현을 다시 언급하는 데 부정적이라고 보도했다.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는 "한일이 새로운 전략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가시적 성과를 낼 만한 새로운 틀을 만드는 것은 의미 있다"면서도 "일본에서는 (한국에서) 정권 교체가 되면 헛수고가 되지 않겠냐는 불안이 있고, 지금 (과거사와 관련한) 결단을 내리기보다는 한국 정치상황을 지켜보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김대중-오부치 정신이 무너지게 된 것은 과거사 문제의 부활 때문"이라며 "과거사 문제를 중장기적 과제로 풀어나가기 위한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과거사 문제를 회피하면 갈등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으로, 민·관 한일 역사공동위원회의 부활을 제안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일관계가 '마이너스'에서 '제로베이스'로 복원됐다며 "역사 문제를 중장기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당장 과거사 문제를 다루기는 어렵다"고 전제하고 "우선 불안정한 국제사회를 고려해 한미일 협력과 인도·태평양 협력 속에서 한일 양국이 어떻게 시너지 효과를 가질 수 있는지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연구소장은 "연간 5만 명 학술 교류 계획 등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마련해 국민들이 실감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협력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연 기자 munjae@hankookilbo.com
도쿄= 최진주 특파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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