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의 시대 살아남은 아이는…
[한겨레 프리즘]
[한겨레 프리즘] 허윤희 | 전국팀장
“도움받을 곳이 없으니까 고립감을 느꼈어요.”
인터뷰를 모은 책 ‘고립청년 생존기’에서 한 청년의 고백을 읽었다. 가족과의 불화로 집을 나온 그는 “은둔 생활을 하기 전부터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세상에 혼자라는 생각으로 살아간 그는 막막함, 불안감을 토로하며 돌봄 부재의 현실을 이야기했다. 지난 9월 국민통합위원회는 전국적으로 ‘고립 인구' 규모가 약 280만명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이후 고립·은둔 청년 등 사회적 고립 문제가 우리 사회의 새로운 취약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회적 고립은 과거 초고령사회의 노인 문제로 여겨졌으나 최근 청년들의 사회 진출 어려움, 1인가구 증가와 맞물려 생애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고립이란 사회적 관계망이 단절돼 다른 사람과 접촉이 없는 상황을 말한다. 여기에 더해 도움이나 지원이 필요하나 전혀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태에서 비자발적 고립에 이르기도 한다. 고립은 실업과 빈곤, 질병, 부정적인 과거 경험 등이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취약계층의 사회적 고립은 심화하고 있다. 지난달 전북 전주의 한 빌라에서 ㄱ(41)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정확한 사망 시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부패가 심한 상태였다. 옆에는 18개월 아이가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 출생 신고가 안 된 ‘미신고 아동’이었다.
미혼모인 ㄱ씨는 일정한 직업 없이 아이를 홀로 키우며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가스비를 3개월 체납했고 건강보험료는 56개월이나 내지 못해 체납액이 118만6530원에 이르렀다. 한달 5만원인 빌라 관리비도 6개월 동안 못 냈다. 지난 7월 공과금 미납 등으로 정부의 ‘위기 의심가구’ 대상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 공무원과 연락이 제대로 안 돼 지원이 늦어지는 사이 숨졌다. 생활고 사망이자 고립사(고독사)다.
ㄱ씨는 복잡한 채무 사정 탓에 숨지기 전까지도 가족들과 거의 교류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관할 시에서는 무연고 장례를 치르는 방안을 고려했으나 가족들이 마지막을 함께하겠다는 뜻을 밝혀 가족이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ㄱ씨처럼 외로운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에도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에서 4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살았고, 이웃들과 왕래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타살 정황이 없고 최근 몇달간 악취가 났다는 주민들 증언을 종합해 고독사로 추정했다. 지난 3월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 김포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된 80대 어머니와 50대 아들은 다른 가족이 모두 사망한 뒤 사회적으로 고립된 것으로 파악됐다.
문제는 초연결의 시대라지만 가족 관계가 약화하고 개인주의 문화 등으로 사회적 관계망이 붕괴하면서 고립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고립의 시대’에서 “21세기 현대인이 만성 ‘고립’ 상태에 놓여 있다”며 “현대인이 겪는 외로움과 고립감이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이 사회를 소외와 배제, 양극화로 내몬다”고 지적한다. 그간 사회적 돌봄은 주로 저소득층과 노인,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이뤄졌는데, 고립 관점에서는 돌봄 대상층이 넓어질 수밖에 없다. 국가와 사회가 사회적 돌봄을 강화해 다각적으로 지원하고 지역 내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해서 지지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고립 생활에서 살아남은 18개월 아이는 ‘존재하는 아이’가 됐다. 엄마의 성과 엄마가 지어준 이름을 갖고 주민등록번호를 얻었다. 아이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한 뒤 친인척의 보호를 받고 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처음 만난 가족이다. 친인척이 아이를 장기 보호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보호를 중단하면 제3자 위탁가정이나 보육기관으로 가게 된다. 그 아이가 살아갈 이 사회는 든든하고 촘촘한 울타리가 될 수 있을까. 과연 이 사회의 돌봄력은 얼마나 성장할까.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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