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가계부채 부추기는 정책부터 없애야

양재찬 편집인 2023. 10. 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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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 성장 · 금리 트릴레마
연준, 연내 추가 금리인상 전망
외인 투자자 국내 증시 이탈 가속
복병으로 등장한 슈퍼 엔저 현상
한국 경제 L자형 장기 침체 우려
불어난 가계대출 이미 위험수위
고금리 장기화와 슈퍼 달러 등 미국발 통화긴축 여진은 한동안 국내 금융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사진=뉴시스]

추석 연휴 푹 쉬고 지난 4일 개장한 한국 금융시장이 미국발 날벼락을 맞았다. 주가는 급락하고 원·달러 환율이 치솟았다.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들이 대량 매도에 나서며 코스피지수 2400선이 위협받았다. 코스닥지수 하락폭은 더 컸다. 두 시장의 시가총액이 하루 사이 62조7923억원 증발했다.

4일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4.2원 급등(원화가치 하락)하며 연고점을 경신했다. 이날 종가 환율 1363.5원은 지난해 11월 10일 이후 약 11개월 만에 최고치다. 가히 '검은 수요일'로 불릴 만했다.

한국 금융시장이 요동친 데는 치솟는 미국 국채 금리 영향이 크다. 세계 시장금리의 기준(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미 국채 금리가 16년 만에 최고 수준(3일 연 4.8%)으로 급등하며 글로벌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고금리 기조가 더 높게 더 오래(higher for longer)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한 결과다.

연준은 지난 9월 금리를 동결하면서 연내 추가 금리인상을 강력 시사했다. 미국의 금리인상이 연내 끝날 것이란 기대는 사라지고, 고금리 상황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우세해졌다. 미국 금리가 7%대로 오를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도 나왔다.

미 국채 금리가 상승하면 달러화는 더 강해지는 반면 다른 나라 통화와 주가는 약세를 면지 못한다. 미 국채 금리가 오르는 데다 강强달러가 지속되면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증시 이탈이 가속화할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미 9월 한달 동안 유가증권시장에서 1조원, 코스닥시장에서 1조2000억원 등 2조2000억원을 순매도했다.

고금리 장기화와 슈퍼 달러 등 미국발 통화긴축 여진은 한동안 국내 금융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기업들의 실적 전망이 어두워지면서 한국 경제는 사면초가에 빠져드는 모습이다.

고금리·고환율·고유가의 '3고高'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어서다. 수출 회복세가 더디고 내수는 더욱 위축될 수 있다. 하반기에 경기가 좋아질 거라며 정부가 기대해온 '상저하고上底下高'는커녕 'L자형' 장기 경기침체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고금리·고환율·고유가의 3고는 이미 가계소비와 기업투자에 상당한 충격을 주고 있다. 정부로선 물가와 성장, 금융안정이라는 세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데, 세가지 목표를 동시에 취하기 어려운 트릴레마(trilemma·삼중 딜레마) 상황이다.

한미 간 금리격차가 이미 2%포인트나 벌어진 상황에서 미국이 추가로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한국도 금리를 올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 국내에 들어와 있던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환율이 급등하는 등 경제 전반에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과 미국의 경제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미국은 고용 등 경제지표가 너무 강해 금리인상을 통해 진정시킬 필요가 있는 반면 한국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 1%대 성장이 기정사실이고, 내년 성장률도 2%를 장담하기 어렵다. 이런 판에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할 경우 환율과 물가에는 도움을 주겠지만 경기회복 모멘텀은 약화할 게다.

슈퍼 엔저도 일본과 수출시장에서 경쟁하는 우리 입장에선 복병이다. 엔화 가치가 달러당 150엔 근처로 하락했다. 원엔 환율도 100엔에 800원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덕분에 일본은 수출과 관광이 늘어 올해 경제성장률이 1.8%에 이를 전망이다. 반면 한국의 성장률은 1.5%에 그쳐 25년 만에 일본에 역전될 판이다.

경기를 부양하려면 금리를 내려야 하는데, 기준금리는 이미 미국보다 한참 낮다. 원·달러 환율이 오르는 것에 대응하려면 오히려 금리를 높여야 할 처지다. 한은이 금리를 찍어 누르면서 외환보유액을 꺼내 환율을 방어하는 지경이다.

가계와 기업의 빚이 이미 위험수위인 우리에겐 비상상황이다. 가계대출의 상당 부분은 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어갔다. 고금리 상황에도 주택담보대출은 계속 불어나고 있다. 이자 부담을 버티지 못한 영끌족의 주택 매물이 쏟아지면 부동산시장과 금융시장이 상호 연쇄 반응하며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에 이를 수 있다.

가계부채가 불어난 데에는 정부 책임도 적지 않다. 집값 급락을 막을 요량으로 연초부터 대출 규제를 완화했기 때문이다.[사진=뉴시스]

가계부채가 불어난 데에는 정부 책임도 적지 않다. 집값 급락을 막을 요량으로 연초부터 대출 규제를 완화했다. 특례보금자리론과 50년 만기 대출을 통해 주택매수 심리를 부추겼다.

한쪽에선 주택시장 연착륙을 꾀하고, 다른 한쪽에선 규제완화라는 명분으로 집값을 자극하는 엇박자를 내지 않아야 한다. 가계든, 기업이든, 정부든 부채는 결국 갚아야 할 돈이다.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통해 가계부채부터 줄여나가야 할 것이다. 기업과 정부도 선제적 조치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할 때다.​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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