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다시 '피의 전쟁'...이스라엘 사망자 600명, 팔레스타인의 2배
양측 900명 사망… 수십명 인질로 잡아
이란·헤즈볼라 개입… 대리전 확전 우려
중동이 또다시 전쟁의 격랑으로 빠져들었다.
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 본토를 기습 폭격하고 이스라엘군이 보복하며 하루 만에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스라엘에서 600명, 팔레스타인에서 300명이 숨지는 등 사망자가 최소 900명에 이른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모두 “상대 궤멸”을 주장해 전면전으로 치닫게 됐다. 특히 팔레스타인보다 희생자가 많이 나온 이스라엘은 먼저 물러설 리가 없다. 전쟁이 서방과 중동의 대결로 확대될 가능성도 상당하다.
이스라엘과 앙숙인 이란은 하마스의 공격 배후를 자처했고, 이란이 지원하는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도 8일 이스라엘 북부 공격에 가세했다. 헤즈볼라까지 전면전에 나서면 이스라엘은 동시에 두 개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미국은 이스라엘 지원을 선언했다.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관계 개선을 시도 중인 사우디아라비아 등 일부 아랍권 국가들은 일단 양측 모두를 비판했지만, 전쟁이 본격화하면 입장을 바꿀 가능성이 크다.
중동의 안정 자체가 "피 묻은 신기루"에 불과했다는 비관적 진단이 나온다.
새벽 포격 후 무장대 침투… 구급대원까지 공격
AP통신과 아랍 매체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7일 오전 6시 30분쯤 하마스는 이스라엘 국토 전역에 수천 발의 로켓 포격을 발사했다. 하마스는 5,000발을, 이스라엘은 2,000발을 쐈다고 각각 주장했다. 포탄은 수도 텔아비브와 예루살렘 인근까지 도달했다. 이날이 유대인 명절 수확 축제(수코트) 기간이어서 휴일을 보내던 이스라엘군과 시민들이 공격에 무력하게 노출됐다.
오전 9시 45분쯤부터는 하마스 무장 부대가 낙하산과 모터보트 등을 타고 가자지구와 인접한 이스라엘 22개 지역에 침투했다. 이들은 경찰서와 주택,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이스라엘 장교를 포함한 군인과 시민 수십 명을 인질로 납치했고, 이스라엘 구급차 2대를 탈취했다.
이스라엘 언론에 따르면 이스라엘 사망자는 최소 600명, 부상자도 2,000명이 넘었다. 이스라엘은 1973년 제4차 중동 전쟁을 시작한 아랍연합국 기습공격 이후 최대 규모의 침공을 당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하마스 지도자 무함마드 데이프는 “오늘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점령을 끝내는 위대한 날”이라고 선언했다.
이스라엘 "전쟁 선언"… 지상군 투입 검토
이스라엘은 즉각 보복에 나서며 전쟁을 선포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의 치명적 공격 때문에 전쟁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며 개전을 선언했다. 전투기 등을 동원한 보복 공습으로 가자지구 주민 최소 300명이 죽고 2,000명 가까이 다쳤다. 알자지라 방송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지상군 투입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전략 수정을 뜻한다. 이스라엘은 2005년 가자지구에서 철수한 이후 막대한 전쟁 비용을 부담하는 대신 팔레스타인을 ‘말려 죽이는’ 정책을 취했다. 가자지구를 봉쇄한 채 수시로 포격을 가해 주민들을 죽이고 경제를 틀어막았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최근 15년간 이스라엘 포격으로 팔레스타인인 6,407명이 숨졌다. 이스라엘 사망자는 308명이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아랍권 국가와 관계 개선을 시도하는 방식으로 팔레스타인을 고립시켰다. 2020년 아랍에미리트(UAE), 수단, 모로코와 국교를 정상화했으며 올해는 미국의 중재로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와 국교 정상화를 논의 중이었다. 네타냐후 연립정부에 참여한 극우 인사들은 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 알아크사 모스크를 모독하며 팔레스타인을 자극했다.
이번 사태로 이스라엘은 초강경 노선으로 선회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중동정책센터의 책임자 나탄 삭스는 NYT에 “이스라엘의 비용 계산이 상당히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하마스는 이번 전쟁의 책임을 이스라엘에 돌리며 양보 없는 싸움을 선언했다. 칼리드 카도비 하마스 대변인은 알자지라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알아크사 등에 대해 저지른 만행을 국제사회가 중단시켜달라. 이것이 이번 전투를 시작한 이유”라고 밝혔다. 작전 이름도 ‘알아크사 홍수’로 정했다.
헤즈볼라 "팔레스타인과 연대" 이란 북부 포격
중동 정세는 순식간에 소용돌이쳤다. ‘편’이 확고한 국가들은 전쟁에 개입했다. 헤즈볼라는 8일 “팔레스타인 저항군에 연대한다”며 레바논·시리아 접경 골란고원의 이스라엘 점령지 ‘셰바팜스’에 로켓과 박격포를 발포했다. 가지 하마드 하마스 대변인은 7일 BBC방송 인터뷰에서 “이번 기습 작전을 이란이 지원했다”고 공개했다.
이스라엘의 우방 미국 역시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의 혐오스러운 공격을 명백히 규탄한다”며 이스라엘 지원 의사를 밝혔다.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도 이스라엘 지지 입장을 표명했다.
다만 사우디는 유보적인 자세를 취했다. 사우디는 하마스 공격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합법적 권리를 빼앗은 결과”라면서도 이스라엘을 직접적으로 규탄하지 않은 채 “양측의 상황 악화에 즉시 중단과 자제를 촉구한다”고 했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조너선 파니코프 중동 국장은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아랍의 분노는 커질 것이며 사우디가 현재의 태도를 유지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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