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 이유도 없이 '패소'... 대법원 사건 70%가 심리불속행 기각

이정원 2023. 10. 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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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 민사·행정·가사소송에서 대법원이 본안 심리도 없이 기각한 '심리불속행 기각' 사건 비율이 70%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이 대법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법원은 올해 1~6월 처리한 민사 본안사건 6,257건 중 4,442건(71%)을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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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70% 넘나들어 '재판권 침해' 지적
"대법관 증원·상고법원 설치 등 필요"
김명수 전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들이 지난달 2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 앞서 자리에 앉아 있다. 대법원 제공

올해 상반기 민사·행정·가사소송에서 대법원이 본안 심리도 없이 기각한 '심리불속행 기각' 사건 비율이 70%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 당사자 입장에서 승소·패소 이유도 구체적으로 알 수 없는 심리불속행 기각은 매년 70%를 넘나들고 있어,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이 대법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법원은 올해 1~6월 처리한 민사 본안사건 6,257건 중 4,442건(71%)을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했다. 이유 없이 소 제기를 반복하는 남용 사례는 제외한 결과다. 민사 본안 심리불속행 기각 비율은 2021년 72.7%, 지난해 69.3%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밖에 행정 본안사건은 1,959건 중 1,473건(75.2%)이, 가사 본안사건은 343건 중 295건(86%)이 심리불속행 기각됐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대법원 재판 효율화를 위해 1994년 도입됐다. 대법원에 올라온 사건이 법령상 정해진 조건에 해당하지 않을 경우, 더 이상 심리를 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다. 상고심절차특례법에 따르면 △원심판결이 헌법에 위반되거나 헌법을 부당하게 해석한 경우 △원심판결이 대법원 판례와 상반되게 해석한 경우 △대법원 판례가 없거나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는 경우 등이 아니면 심리불속행 기각할 수 있다. 다만 상고 기록을 받은 날로부터 4개월 이내에만 결정할 수 있고, 형사 사건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문제는 심리불속행 기각 사유가 소송 당사자들에게 알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 판결문에는 "상고 이유에 관한 주장은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에 해당해 이유 없다. 법에 입각해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는 문구만 기재되기 때문이다. 소송 당사자들 사이에선 "구체적 이유를 알려주지 않으니, 대법원이 내 사건을 제대로 봤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다"는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물론 심리불속행 기각일지라도 대법관과 재판연구관들이 조건을 면밀히 검토해 내리는 판단이지만, 법조인이 아닌 소송 당사자들이 이런 사정까지 자세히 알 리가 없다.

법원 내부에서도 대법원 심리 기능 개선을 위한 고민은 이어지고 있지만, 항상 과중한 사건 적체가 발목을 잡고 있다. 대법관 수를 늘리거나 별도 상고법원을 설치해 단순 사건을 전담하게 하는 등의 방안이 주로 거론되는데, 행정부나 입법부 도움 없이 법원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다. 특히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중점적으로 추진했던 상고법원 설치안은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서 '재판 거래'의 대상으로 지목된 뒤 아예 논의 자체가 사라지고 말았다.

수도권의 한 고법 부장판사는 "해외 현황을 보더라도 대법관들은 사회적 관심과 파장이 큰 법리 검토에 치중하고, 별도 재판부에서 경미한 상고 기각 사유를 지금보다 더 자세히 설명해주게 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국민적 합의를 거쳐 대법관들의 부담을 덜어줄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이유도 없는 기각 판결문'으로 인한 사법부 신뢰 저하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다는 취지다.

이정원 기자 hanak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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