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장거리 공원 산책에 '반려견 패션 자랑'까지..
아직은 잠을 조금 더 자고 싶을 법한 8일 오전 8시경. 황금 같은 3일 연휴의 한가운데라 서울 상암동 평화의공원은 다소 한산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넓은 공원에 반려견 목줄을 쥔 사람들이 속속 모였습니다. 서울시가 올해 처음으로 개최한 ‘반려동물 한마당 축제’에 참가하려는 반려인들이었습니다. 반려견도 ‘아침형’ 성향들만 모였는지, 처음 만나는 사이에도 서로 냄새 맡으며 인사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축제가 아침 일찍부터 열린 이유는 ‘산책’을 함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500여팀의 반려 가족이 약 6㎞의 공원을 걷는 ‘댕댕이 패션런’이 첫 번째 순서로 마련돼 있었습니다. ‘패션런’이라는 이름처럼 이 걷기대회는 경주가 아니라 반려견의 완주와 패션감각에 방점이 찍혀 있었습니다. 서울시 동물보호과 윤민 주무관은 동그람이에 “이번 걷기대회는 산책의 중요성을 시민들과 공감하는 차원에서 준비된 만큼 1,2등을 다투는 것보다 산책 자체를 즐기는 코스를 마련했다”고 행사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도 취지에 맞춰 다양한 패션을 갖추고 현장을 찾았습니다. 서울 도곡동에서 반려견 ‘너구리’와 니트 커플룩을 맞추고 온 고경빈 씨는 “니트를 좋아해서 너구리와 가볍게 입고 오고 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경빈 씨는 “다견가정이라 다른 개들이 너구리의 활달함을 못 따라간다”며 “오늘 너구리와 함께 놀 친구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서울 가락동에서 온 김명추 씨는 반려견 ‘리오’와 회색 맨투맨 커플티를 맞춰 입었습니다. 그는 “리오와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옷을 맞춰 입었다”며 “오늘 날씨가 좀 흐린데 옷 색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4년째 리오와 반려생활을 하고 있다는 명추 씨는 “오늘 산책을 완주한 뒤에는 반려견과 함께 캐리커쳐를 그려주는 부스에서 추억을 남겨보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게임 캐릭터의 의상을 따라 입은 독특한 참가자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진도믹스 반려견 ‘감자’와 ‘나나’를 데리고 온 미국인 ‘안나’(Anna) 씨와 ‘컬튼’(Culton) 씨는 ‘슈퍼 마리오’ 캐릭터들의 의상을 입고 현장에 나타났습니다. 감자와 나나에게는 각각 초록색과 분홍색 옷을 입혔는데, 이 색을 고른 이유 또한 슈퍼 마리오 게임 속 캐릭터인 요시와 피치 공주에 맞춘 색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서울에 2년간 거주하면서 유기견이었던 감자와 나나를 입양했다고 하는데요, 안나 씨는 “감자와 나나는 귀엽고 사랑스러울 뿐 아니라 호기심과 총명함을 갖추고 있다”고 자랑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이렇게 많은 개들이 모여 있는데도 안정적”이라며 “준비가 잘 된 느낌”이라고 말했습니다.
보호자들은 기대감을 높이고, 반려견들은 새로 맡는 냄새에 여념이 없던 사이, 마침내 산책을 시작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6㎞라는 긴 산책길을 떠나기에 앞서 보호자들은 가벼운 스트레칭을 한 뒤, 출발선에 섰습니다. 일상적인 경주라면 500여명이 한꺼번에 출발할 때 긴장감이 감돌았겠지만, 이날은 화합과 설렘이라는 분위기가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수많은 반려견 산책 행렬을 마주하자, 시민들은 신기한 듯 바라봤습니다. 흐뭇하게 바라보는 시민도 있는 한편, 낯선 시민들에게 애교를 부리는 강아지를 쓰다듬는 모습도 목격됐습니다. 보호자들은 안전요원들의 안내에 따라 우측으로 질서 있게 산책을 이어갔습니다.
걸음 속도는 제각각이었습니다. 높은 활동량을 자랑하며 빠르게 앞서가는 강아지가 있는가 하면, 여유 있게 천천히 걷는 강아지도 있었습니다. 반려견 ‘뽀군’(16)이와 경기 안양시에서 참석한 김은주 씨는 “가을에 맞춰 브라운 계열의 옷을 선택했다”며 “뽀군이가 나이가 있는 만큼 빨리 가는 것보다는 걷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방향 또한 다양했습니다. 앞만 보고 걷는 사람과 달리 반려견들은 풀숲에서 나는 흥미로운 냄새를 맡기 위해 옆으로 빠지기 일쑤였고, 심지어는 ‘역주행’을 하며 사람들을 웃음 짓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둘씩 결승점을 향해 각자의 페이스에 맞게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골든 리트리버 품종 반려견 ‘해리’(6)와 함께 완주에 성공한 박서연 씨는 “생각보다 힘들었다”며 “해리도 처음에는 신났다가 힘이 좀 빠진 듯하다”며 웃었습니다.
완주에 의미를 두는 것은 단순히 주최 측만의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3년 전 디스크로 뒷다리가 마비된 반려견 ‘라떼’(6)는 휠체어를 달고 산책길을 완주했습니다. 오르막을 오를 때면 보호자 김미소 씨가 잠시 안아주면서 어려운 길을 함께 해낸 라떼는 먼 길을 다녀온 뒤에도 활달했습니다. 미소 씨는 “제주도에서 구입한 감귤 모자를 쓰고 참석했다”며 “조금 길을 헤매긴 했지만 완주해서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산책이 끝난 뒤에도 보호자들은 다채롭게 마련된 행사장에서 반려견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서울시와 동그람이가 함께 주최하는 ‘2023 반려인능력시험’ 실기시험을 미리 체험할 수 있는 부스도 마련돼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특히 이날 실기시험을 체험해본 보호자들은 심사를 맡은 트레이너들에게 평상시 품었던 질문들을 쏟아냈습니다. 반려견 ‘크림이’(2)와 함께 모의고사를 치른 김의중 씨는 “크림이와 나의 마음이 얼마나 통하는지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며 “앞으로 시험을 봐도 좋은 점수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며 기대감을 드러냈습니다.
이번 모의고사에도 심사위원으로 나선 김민희 스파크펫 트레이너는 “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보호자가 반려견에게 해주는 ‘보상’”이라며 “단순히 간식을 주는 것뿐 아니라 칭찬을 하면서 반려견의 행동을 북돋아주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보호자들을 위한 유익한 시간은 이어졌습니다. 반려견 보호자를 위해 펫티켓 강연을 준비한 강형욱 보듬컴퍼니 대표는 “펫티켓이라는 게 단순히 대변 치우고, 목줄 채우고 다니는 것만은 아니다”라며 “펫티켓을 준수하지 않는 보호자들을 향해 함께 잘 지키자고 독려하는 보호자가 되자”고 주문했습니다. 이날 강 대표는 15분간 준비한 강연 이후 보호자들의 질문에 답하며 45분간 소통을 이어갔습니다.
고양이 보호자들에게 ‘고양이와 소통하는 법’으로 강연을 준비한 나응식 그레이스동물병원 원장(수의사)은 고양이에 대한 간단한 상식과 재미있는 역사 속 고양이 이야기로 참가자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나 원장은 “고양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집사가 고양이의 행동에 대해 지식을 갖추고 소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고양이가 집사에게 ‘꾹꾹이’를 한다면 그것은 불안감에서 나오는 행동”이라며 “애정표현이 아니라는 점을 꼭 기억하라”고 예시를 들었습니다.
반려견과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여러 체험행사도 마련됐습니다. 반려견과 최근 유행하는 ‘인생네컷’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견생네컷’ 부스에는 오전 시간에만 200여명이 몰렸습니다. 그 외에도 ‘반려견 아로마 마사지 체험’, ‘반려견 캐리커처’ 등의 체험행사도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반려견 건강 상담도 이어졌습니다. 서울시수의사회가 마련한 부스에서는 수의사의 간이 건강검진과 함께 내장형 동물등록도 진행됐습니다. 여기에 서울동물복지센터와 발라당 입양센터에서도 유기견 입양을 독려하는 입양 행사도 마련돼 예비 반려인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서울시는 내년부터 10월 4일을 ‘서울 동물보호의 날’로 지정하게 됐습니다. 윤 주무관은 “반려견 보호자들의 호응을 보며 서울에서 이런 행사에 얼마나 목말라 계셨는지를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었다”며 “내년에는 더 알찬 기획과 준비로 반려동물뿐 아니라 모든 동물이 행복한 서울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시의 이 다짐이 내년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지 주목됩니다.
글·사진 =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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