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에 뚫린 이스라엘 ‘패닉’…중동 전면전 위기의 내막
“수년 걸려도 모두 폐허 만들 것” 전쟁 선포
미 중재 ‘이-사우디’ 수교 협상 영향 미친 듯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전례 없는 ‘전면 공격’을 가해 중동과 전세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1973년 욤키푸르 전쟁(제4차 중동전쟁) 이후 50년 만에 전면 공격을 당한 이스라엘은 즉각 “전쟁”을 선포하며 가자지구에 대한 전면 침공을 시사했다. 이번 사태는 현재 진행 중인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수교 협상 등 중동을 둘러싼 ‘강대국 외교’에까지 크고 광범위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게 됐다.
■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 없이 중동 문제 해결 없다’ 증명
하마스의 무장대원들이 7일(현지시각) 새벽 폭발물 등을 이용해 가자지구를 둘러싼 장벽과 철조망을 뚫고 이스라엘 영내로 침투했다. 이른바 ‘알아크사 홍수 작전’의 시작이었다. 일부 대원들은 패러글라이더를 타고 철조망을 넘었다. 이들은 가자지구와 맞붙은 22개 지역에서 기관총을 난사하며 민간인들을 공격했다. 대원들은 거리를 활보하며 민간인과 병사들을 공격했다. 일부는 탈취한 이스라엘군 무장 차량을 몰기도 했다. 이후 수십명의 이스라엘 군인 및 민간인들을 인질로 잡아 귀환했다. 하마스는 동시에 텔아비브 등 4개 이스라엘 도시를 겨냥해 3500여발의 포격을 가했다.
급습을 당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상대로 보복 폭격에 나섰다. 수십가구가 살고 있는 14층 아파트 등 거주 건물이 무너지고, 하마스의 사무실이 파괴됐다. 가자지구엔 이날 밤 전기가 끊긴 탓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떨며 폭격을 당했다. 팔레스타인 보건부 발표와 이스라엘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에선 600여명이 숨지고 2048명이 다쳤고, 가자지구에서도 313명이 목숨을 잃고 1990명이 부상당했다. 8일 가자지구에 붙은 남부 8개 지역에서 이스라엘군과 하마스 대원들의 전투가 이어지고 있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소장)은 8일 “어제 교전에서 400명 넘는 테러범을 사살하고, 수십명을 생포했다”며 “지금도 일부 지역에서 교전이 이어지고 있고, 여러 도시에서 수색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큰 충격에 빠졌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7일 오전 대국민 담화에서 “우리는 지금 전쟁 중이다”라고 선언했다. 이날 밤 연설에선 “하마스가 있는 모든 곳, 하마스가 숨어 있는 모든 곳, 활동하는 모든 곳을 폐허로 만들 것”이라고 선포했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이날 안보각료회의에서 하마스와 이슬람지하드의 군사·행정 역량을 “수년에 걸쳐서”라도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하마스의 이번 급습은 1973년 10월6일 욤키푸르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받은 최대 공격이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로 가는 전기, 연료, 식량 공급을 중단했고, 지구 내 7개 지역 주민에게 미리 지정된 곳으로 대피하라고 명령했다. 또 예비군 총동원령을 내리고, 가자지구 접경에 주둔한 31개 대대 병력에 더해 4개 사단 병력과 지상전 수행을 위한 탱크를 전개했다.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하는 대규모 군사 작전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 헤어나올 수 없는 안보 위기 불 보듯
하마스가 1987년 창립 이후 전례 없는 공격에 나선 이유는 여러 갈래로 살필 수 있다. 먼저 지난해 12월 출범한 네타냐후 총리의 ‘극우 연정’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봉쇄와 탄압을 꼽을 수 있다. 나아가 ‘두 국가 해법’을 내건 오슬로 합의(1993)의 사문화로 인해 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이 실종된 상황 등도 이번 공격 결정의 배경이 됐을 수 있다.
하지만, 2020년 미국의 중재로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아브라함 협정)을 맺고,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수교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현실 등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에 대한 아랍의 마지막 선제공격인 욤키푸르 전쟁 50주년의 다음날에 공격을 감행한 것이 이를 상징한다. 중동의 근본 문제인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 없이 이스라엘-사우디 수교 협상만으로는 중동의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목소리를 낸 셈이다.
이스마일 하니야 하마스 지도자는 7일 방송 연설에서 동예루살렘 성전산 내 이슬람 성지인 ‘알아크사 사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위협, 가자지구 봉쇄에 이어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의 관계 정상화 등을 언급했다. 그는 “저항자들 앞에서 자기 자신도 지키지 못하는 실체(entity)는 어떤 안전 보장도 해줄 수 없다. 당신들(아랍 국가들)이 이들과 서명한 모든 관계 정상화 합의는 (팔레스타인) 갈등을 해소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하마스는 또 이번 작전의 이름을 알아크사 홍수 작전으로 붙여 메카·메디나에 이은 3대 이슬람 성지인 알아크사 사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이스라엘에 맞선다는 명분도 내세웠다.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 없는 중동 문제 해결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면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큰 고민에 빠지게 됐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동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국교 정상화 협상을 주도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19일 미국이 사우디에 한-미 상호방위조약(1953)과 비슷한 안전보장 협정을 맺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동의 맹주를 자부하는 사우디마저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아랍의 대의’를 저버리면 팔레스타인은 중동에서 영원히 고립의 길을 걷게 된다.
네타냐후 총리 역시 시련을 안게 됐다. 가자지구에 대한 전면전에 나서면, 이스라엘-사우디 수교는 당분간 물 건너간다. 또 ‘숙적’ 이란과 레바논의 무장정파인 헤즈볼라 등과 무력 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분쟁을 감수해야 한다. 실제 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을 상대로 박격포 공격에 나섰고, 이스라엘은 반격했다.
국내 사정도 문제다. 지난 7월 사법부의 권한을 약화하는 사법개편으로 건국 이후 최대 반정부 시위에 직면했던 네타냐후 총리는 이번 사태로 당분간 반대 목소리를 잠재울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분쟁이 길어지면 더 큰 정치적 어려움을 겪게 될 게 뻔하다. 인질로 잡혀간 이스라엘 시민들의 구출 역시 까다로운 문제다.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면서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압도적인 무력으로 가자지구를 재점령해도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고백한 셈이다. 이번 사태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고통은 더욱 가중되고, 이스라엘 역시 헤어날 수 없는 안보 위기에 빠지게 됐다. 사우디 외교부는 성명에서 사우디와 미국이 “사태 격화를 즉각적으로 중단하는 쪽으로 일할 필요성”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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