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앞둔 美, 中기업 42곳 무더기 제재

푸틴 내주 중국 방문 앞두고
군사지원 가능성 사전 경고
中 "모든 조치 취해 기업 보호"
4년만에 中찾은 美상원의원단
"美기업, 中서 공정한 대우를"

다음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을 방문한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왼쪽)가 7일(현지시간) 천지닝 상하이시 당서기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 군사 부문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미국이 중국 기업 40곳 이상을 무더기로 제재했다. 다음달 미·중 정상회담 개최 논의가 오가는 가운데 또 한 번 대중 수출통제가 실시돼 양국 간 긴장 국면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미국 상무부는 6일(현지시간) 러시아 군과 방위 산업을 지원한 것으로 의심되는 중국 기업 42곳을 비롯해 49개 외국 법인을 일명 '블랙리스트'로 불리는 '수출통제 리스트(entity list)'에 새롭게 올렸다. 중국 기업 외에 핀란드, 독일, 인도, 튀르키예, 아랍에미리트(UAE), 영국 등의 기업 7곳도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

이들 중 일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민간 부문을 공격할 때 미사일이나 무인기(드론)를 정확하게 유도하는 데 사용하는 미국산 반도체 기술을 러시아 측에 공급했다고 미국 상무부는 밝혔다. 매슈 액설로드 미 상무부 수출집행 담당 차관보는 "만약 러시아 국방 부문에 미국 고유 기술을 제공하면 우리는 그것을 찾아내 조치를 취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출통제 명단에 오른 외국 기업은 물자 수출 전 미국 정부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사실상 허가를 받기 어렵다.

이번 조치는 중국을 향한 미국의 경고로 풀이된다. 지난달 북·러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대(對)러시아 무기 제공이 본격 시작됐다는 관측이 나온 직후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중국이 대러시아 군사 지원에 나서지 못하도록 주의를 주는 게 시급하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로 보인다. 특히 이달 중순 중국이 주최하는 일대일로 정상포럼을 계기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중이 예정돼 있어 중·러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에 건설적 역할을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러시아와 연계된 중국 기업을 제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미국 상무부는 러시아에 드론 부품을 공급했다는 이유로 중국 기업 11곳을 지난달 수출통제 명단에 등재했다. 특히 이번 대중 '무더기' 제재는 다음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중 정상회담이 논의되는 시점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양국 간 회담을 앞두고 해빙 분위기를 적극 조성했던 지난 8월과도 대비를 이룬다. 당시 상무부는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 방중을 앞두고 27개 중국 기업 및 단체 이름을 블랙리스트 전 단계 격인 '미검증 명단(Unverified list)'에서 잠정 삭제했다.

이에 중국은 즉시 강하게 반발했다.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7일 홈페이지를 통해 "미국은 짧은 시간 안에 또다시 러시아와 관련한 이유를 들어 중국 일부 기업을 수출통제 목록에 올렸다"며 "미국은 국가 안보(개념)를 확장하고 수출통제 조치를 남용해 중국 기업을 향해 멋대로 일방적 제재와 '확대 관할(long-arm jurisdiction)'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은 즉시 잘못된 처사를 바로잡고 중국 기업에 대한 비합리적 탄압을 중단해야 한다"며 "중국은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 중국 기업의 합법적 권익을 굳게 수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4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을 찾는 미국 초당적 상원대표단이 7일 오후 중국 상하이에 도착해 방중 일정을 시작했다. 미국 대표단은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를 포함해 여야 상원의원들로 구성됐다. 미국 상원의원단까지 중국을 찾아 양국 관계 관리에 나섰지만 간극은 분명했다.

상원대표단은 이날 이른 오후에 도착해 천지닝 상하이 공산당 서기와 회담했다. 슈머 원내대표는 천 서기를 만나 "미국은 중국과의 경제적 분리를 원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경쟁할 준비가 돼 있지만 갈등을 추구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또 그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일부 미국 기업이 불공평한 기업 환경에 직면해 있다고 밝혔다. 슈머 원내대표는 이날 "많은 사람이 중국이 미국 기업을 공정하게 대하지 않는다고 느낀다"며 "중국 기업이 하는 것처럼 미국 기업도 중국에서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상호주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대표단에 포함된 마이크 크레이포 공화당 의원 역시 이번주 초에 미국 기업 마이크론테크놀로지를 대변해 중국 내 공정 경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상하이에 진출해 있는 미국 기업을 방문한 후 베이징으로 이동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면담을 추진한다. 다만 시 주석과의 만남이 실제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외신은 다수 중국 전문가 말을 인용해 이번 방중단과 시 주석 간 회담이 성사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한재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