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업체에 스마트팜 R&D예산 …"中企 1만곳 상대로 현금 뿌린꼴"

홍혜진 기자(honghong@mk.co.kr), 신유경 기자(softsun@mk.co.kr), 이희조 기자(love@mk.co.kr) 2023. 10. 8.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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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예산 방만운영 살펴보니

◆ 줄줄 새는 R&D 예산 ◆

연구개발(R&D) 예산 방만운영 사례는 유형별로 다양하다. 경쟁률이 매우 낮아 무늬만 공모인 '눈 가리고 아웅형', 진입 제한을 높여 특정 업체만 수행 가능하게 한 '특혜형', 이미 개발된 기술이 사업 목표인 '땅 짚고 헤엄치기형', 특정 기관이 연구를 기획하고 유관 기업에서 과제를 수행하는 '자가발전형'까지 포착됐다.

실제로 정부의 실태조사 결과, 경쟁률이 매우 낮아 무늬만 공모인 R&D 사업은 수백 개에 달했다. R&D 공모 사업 가운데 평균 경쟁률이 2대1 이하인 사업만 700여 개로 파악됐다. 공모 사업 중 평균 경쟁률이 1대1 이하여서 신청만 하면 무조건 선정돼 경쟁력 심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사업도 수십 개였다.

형식상 공모지만 특정 기관만 수행 가능하도록 기획된 사업도 포착됐다. 산림과학기술 실용화 지원 사업은 '골담초 추출물을 이용한 눈 건강 개선 건강기능식품개발'처럼 극도로 구체적인 분야에서 선행 연구 성과를 보유한 기관만 참여할 수 있도록 공모를 진행해 특정 기관에 대한 특혜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경쟁력 있는 기술 개발에 집중 투자하지 않고 단순 기술 개량처럼 거저먹기식 쉬운 과제를 지원하는 경우도 많았다. 전기로 제강 공정 디지털화를 통한 고효율 조업 기술 개발 사업이 대표적이다. 이 사업은 다른 나라에서 이미 제품 양산에 활용 중인 스펙을 사업 목표로 설정해 R&D 예산 투입 당위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기획부터 시행까지 한 업체가 모두 맡거나 유관 기관이 시행한 폐쇄적 자가발전형으로는 A기술원이 항공교통 기술 개발 사업 과제를 기획하고 수행한 사례가 있다. B협회가 도시건축 연구 사업 과제를 기획하고 주관 연구기관으로 선정된 사례, 차세대 계량 기술 개발 사업과 스마트계량 측정 기술 기반 조성 사업에 유관 협회인 C협회가 기술 수요조사를 한 뒤 주관 연구기관으로 참여한 사례도 나타났다.

특히 R&D 예산을 뿌려주기식으로 지급하다 보니 R&D가 사실상 중소기업과 연관성 없는 사업 지원으로 변질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령 정부의 사회적경제 혁신성장 사업은 다양한 지역 자원과 연계한 기술 개발·사업화를 지원하는 것이지만, 취지와 달리 기술력이 낮거나 사업과 큰 연관성이 없는 업종의 기업에 R&D 예산이 지원됐다. 이 사업과 관련해 연 매출액 5억원 미만의 영세 가구 제조 업체가 엉뚱하게 스마트팜 표고버섯과 친환경 기능성 화장품 개발 과제를 수주한 사례도 있었다.

대북 지원 사업과 연관이 있는 중소기업들이 문재인 정부 시절 R&D 과제를 중복으로 따낸 사례도 여러 건 파악됐다. 정치권에 따르면 농업법인 D사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16건의 정부 R&D 과제에 선정됐다. 이는 연도마다 이어지는 계속과제들로 인해 중복되는 건수를 제외한 후 집계한 수치다. 이 회사는 2011년부터 북한에 인도적 차원의 종자 지원 사업을 해온 대북 지원 관련 기업이다. 대북 관련주로 주목받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이 북한과 정상회담을 할 때마다 주가가 뛰는 등 수혜를 받기도 했다.

E사도 같은 기간 3건의 정부 R&D 과제를 따냈다. 이 회사 역시 대북 지원 관련 기업으로 분류된다. 2018년 한국농기계공업협동조합이 '남북 농기계교류협력 추진방안 좌담회'를 개최했는데, E사 대표가 조합 이사장으로서 좌담회에 자리했다.

다만 R&D 집행부터 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구조적 문제에 대해 정부가 연구 정책 개선이 아닌 예산 삭감이라는 처방을 먼저 들고나오면서 정부의 감시·감독 부실 책임을 과학기술계로 전가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일부 성과를 내는 사업까지 정부의 칼질을 피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대표 사업인 융합연구 사업 예산은 530억원으로 올해(820억원)보다 약 35% 삭감됐다. 정 의원은 "융합연구 사업은 출연연의 연구 경쟁력을 높이고 산학연 협력을 통해 우수한 성과를 내는 사업인데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출연연 융합연구에 더 많은 지원을 쏟기는커녕 후퇴시키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정부는 기존 R&D 평가 자체가 지나치게 관대하게 이뤄져 지속 여부를 판단하는 지표가 될 수 없고 혁신성과 기술의 실제 적용 여부를 따져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R&D 평가가 당초 계획 대비 진도 달성 여부만 평가해 사실상 모든 사업이 '성공'으로 집계돼 유명무실하다는 것이다. 가령 2022년도 129개 R&D 사업을 중간 평가한 결과, '미흡'으로 평가받은 사업은 단 한 개에 불과했다.

R&D 예산 삭감을 놓고 정부과 야당 입장이 팽팽히 갈리고 있어 10일 시작되는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민주당은 R&D 예산 원상회복을 추진하기로 방침을 정한 한편, 정부는 R&D 분야도 예산 효율화 원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입장이라 격론이 예상된다.

[홍혜진 기자 / 신유경 기자 / 이희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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