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노벨상 시차 30년, 정책 시차 5년
노벨시차 갈수록 길어지는데
R&D 정책은 5년마다 개편
노벨상 업적 기술로 구현한
韓 기업 기술경쟁력에 희망
과학자들이 꼽는 노벨상 수상의 제1조건은 '장수'다. 이 조건을 갖추지 못해 노벨상을 받지 못한 천재 과학자들이 의외로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천재 중의 천재'로 불렸던 폰 노이만이다. 게임 이론의 창시자이자 컴퓨터의 창시자였지만 쉰네 살이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사망하는 바람에 노벨상 수상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
2020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라인하르트 겐첼은 "과학자가 노벨상을 받는 데 필요한 자질은 오래 사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고 농담 섞인 수상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농담으로 하는 얘기지만 꼭 농담만은 아니다. 통계가 뒷받침해준다. 지난해 국제학술지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2011~2019년 노벨 과학상 수상자들을 분석한 결과, 논문 발표 후 노벨상 수상까지 걸린 시간이 화학상의 경우에는 30년, 물리학상은 28년, 생리의학상은 26년이라는 '노벨상 시차'를 보였다.
올해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올 노벨 물리학상은 전자의 움직임을 볼 수 있게 해준 아토초 펄스광 개발에 기여한 3명의 물리학자에게 돌아갔는데 그중 한명인 안 륄리에 스웨덴 룬드대 교수가 아토초 수준의 펄스광을 만드는 데 처음 성공한 때가 1987년이다. 노벨상 수상까지 36년이나 걸린 셈이다.
화학상은 더했다. 화학상은 양자점(퀀텀닷) 발견과 발전을 이끈 과학자 3인이 수상했는데 그중 루이스 브루스 컬럼비아대 교수(80)와 알렉세이 예키모프 나노크리스탈테크놀로지 박사(78)가 양자점을 발견한 논문을 쓴 때가 1983년이다. 노벨 시차가 무려 40년이다.
생리의학상은 수상자인 커털린 커리코 바이오엔텍 수석부사장이 mRNA와 관련된 논문을 발표한 해가 2005년으로, 노벨 시차가 18년으로 짧았다. 하지만 이는 코로나19 사태라는 예외적인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논문 발표에서 수상까지 노벨 시차가 갈수록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네이처'지는 현대 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획기적인 연구나 발견이 줄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이로 인해 노벨위원회가 과거 연구 중에서 현재 기술로 구현되거나 구현 가능성이 있는 연구들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면서 노벨 시차가 늘어나고 있다.
노벨 시차는 늘어나고 있는데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은 더욱 단기 성과 중심으로 흐르고 있다. 특히 5년마다 바뀌는 정권에 따라 주무부처가 과학기술부 단독으로 있기도 하고, 교육부에 붙기도 하고, 정보통신부와 합쳐졌고 과학기술 정책 목표도 기초과학 강화, 선도적 연구 강화, 녹색 성장, 창조경제 등으로 표지 갈이를 해왔다. 더구나 역대 정부를 거치면서 이어져오던 R&D 예산의 지속적인 증액이라는 흐름마저 윤석열 정부에서 끊겨버렸다. 더한 문제는 정책 기조가 바뀌는 과정이다. R&D 예산 삭감이라는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과학기술인들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이 전혀 없었다. 이런 풍토에서 노벨상을 바라는 것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때만 관심을 보내는 종목에 금메달을 기대하는 것만큼 염치없는 일이다.
10월마다 '노벨상 앓이'를 하는 대한민국은 올해도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지나갔다. 그래도 양자점을 연구했던 동료 과학자들의 수상을 지켜봐야만 했던 이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 현택환 서울대 교수의 이야기에서 희망을 봤다. 현 교수는 "올해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들은 삼성전자에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1999년부터 2019년까지 양자점에 대한 엄청난 투자가 이뤄졌지만 이를 구현한 것은 삼성전자 퀀텀닷 디스플레이 TV뿐이다. 노벨 시차를 국내 기업이 메운 셈이다. 국내 산업이 과학기술 생태계의 중요한 축을 계속 맡다 보면 우리 연구자가 노벨상을 수상하는 날이 불쑥 올지도 모른다.
[김기철 과학기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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