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섭의 기업과 경제] '24-7' TSMC와 '52' 삼성전자의 반도체전쟁
삼성은 주 52시간 묶여 불가능
속도차이 누적돼 큰 경쟁력격차
정부·정치권 머리맞대 해법내야
지난달 중순 매경미디어그룹의 세계지식포럼에서 필자는 '삼성, TSMC, 인텔의 반도체 전쟁'이라는 제목의 세션을 주관했다.
필자가 삼성전자, 하이테크 전문 유튜브 아시아노메트리(Asianometry)의 존 와이가 TSMC, 미국의 윌리엄 라조닉 교수가 인텔에 관해 발표하고 토론이 이어졌다. 존 와이의 발표에서 흥미로운 발언이 나왔다. TSMC 관계자들에게 삼성에 비해 경쟁력이 있는 이유를 물어보니 자세한 설명 없이 '문화의 중요성'이라는 말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토론 시간에 그게 무슨 뜻인지 부연해줄 수 있는지 질문했다. 답변은 개략 다음과 같았다.
"TSMC는 연구개발(R&D)팀이 하루 24시간, 주 7일간 가동된다. 2교대나 3교대로 연구가 끊기지 않도록 한다. 위계가 강한 삼성보다 상하 구분 없이 비판과 토론이 활발하다. 주요 공급망 업체들이 근거리에 포진해서 TSMC에 문제가 발생하면 3시간 안에 해결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그가 얘기한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는 문화는 과거 동아시아와 서양 기업을 구분하는 차이였다. 대만과 한국 기업은 같은 문화권이었다. 그러나 반도체 전쟁에서는 이제 다른 문화권이 되어 있다. 대만도 경제가 성숙하면서 '워라밸'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TSMC와 같이 '혹독한(brutal) 업무 문화'를 가진 직장을 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단 TSMC에 들어온 사람들은 그 문화를 받아들이고 전력을 다한다.
이 차이를 만들어낸 데는 지난 정부에서 도입한 경직적 주 52시간 제도가 결정적이다. 반도체와 같은 하이테크에는 스피드 경영이 필요하다. 작은 속도 차이가 누적되면서 큰 경쟁력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규제 상황에서는 아무리 의욕이 넘치는 직원이라도 중간에 업무를 접고 퇴근할 수밖에 없다.
삼성이 설혹 '24-7' R&D 시스템을 구축하려 해도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TSMC는 초과근무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래서 2교대를 주로 사용하고 필요하면 3교대도 투입한다. 하지만 삼성은 최소한 3교대를 하고 4교대도 동원해야 한다. 반도체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이것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TSMC보다 훨씬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일이다.
상하 구분 없이 비판과 토론이 활발한 것은 실리콘밸리 문화가 처음부터 이식됐기 때문이다. TSMC의 창업자 모리스 창은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서 30년간 근무하며 부사장까지 지냈던 중국계 미국인이다. TSMC 경영진에는 실리콘밸리에서 경력을 쌓고 합류한 미국계 대만인이 많다. 야심 있는 젊은이들이 팍팍 치고 올라갈 수 있는 문화다. 삼성도 나름대로 내부 정보를 활발히 공유하는 체제를 구축해서 반도체 부문의 경쟁력을 확보했다. 능력 있는 '젊은 피'를 끌어올리는 노력도 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TSMC보다 앞섰다고 하기는 어렵다. 공급망에서도 삼성은 TSMC에 뒤져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삼성은 공급망이 전 세계적으로 넓게 퍼져 있다. 해외 공급망이 문제를 그렇게 빨리 해결해줄 가능성이 없다. 국내 공급망 기업들도 주 52시간 규제 등에 따라 신속성과 유연성에서 뒤떨어진다.
존 와이가 지적한 3가지 차이는 삼성이 당분간 짊어질 수밖에 없는 핸디캡이 됐다. 핸디캡을 줄이기 위해 자동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삼성그룹의 각종 역량을 잘 활용해야 할 것이다. 패키징 기술에 주안점을 두거나 메모리 부문에서 시작된 GAA 기술을 빨리 적용하는 것 등이 그런 방향의 움직임일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도 제도가 만들어놓은 핸디캡을 줄여주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주 52시간 규제를 개편하는 것이 1차 과제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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