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속에 담긴 기억의 조각들
납활자 활용 '기억연습' 선보여
조각가에게 유리는 까다로운 소재다. 돌이나 금속처럼 깎아내면 깨지기 쉽고, 숨길을 불어넣어 형상을 만들어내야 한다.
한국 유리 공예 1세대인 고성희 작가(남서울대 교수)의 유리 조각전이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동 청작화랑에서 오는 25일까지 열린다. '기억연습' 시리즈 20여 점을 선보인다.
작업의 출발점은 기억이다. 망각의 힘을 이기기 위한 도구로 작가는 활자(活字)를 발견했다. 그는 홍익대에서 조각을 전공했지만 새로운 재료연구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프랑스, 체코와 독일 등의 여러 공방까지 돌며 유리 조형이라는 외길을 고집했다. 1990년대 중반 귀국했지만 국내에 유리 공예에 관한 여건이 부족한 상황 속에 유럽 고물상에서 구해온 '납 활자'를 꺼내 들었다.
작가는 "납 활자에 대한 첫 선입견은 차가움이지만, 활자를 통해 텍스트를 생성하는 과정에서 더없이 따뜻한 감성과 감흥을 자아낸다. 대화의 매개체가 되기 때문이다. 활자는 조형적으로도 완결성을 지녔다"고 설명했다.
유럽에서 가져온 서너 주먹으로는 작업을 이어가기 부족했지만 최근 파주출판단지에서 극적으로 납 활자를 구해 다시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유리 공예의 다양한 기법을 사용한다. 흙과 납 활자, 오브제 등으로 형태를 만든 후 실리콘으로 틀을 뜨고, 석고 틀을 다시 덮는다. 유리를 700도 이상으로 소성한 후 약 일주일 뒤 작품을 꺼내 연마하는 고된 과정을 통해 작가가 간직하고 싶었던, 혹은 버리고 싶은 기억을 필름처럼 유리 조각 속에 담아냈다.
신체의 일부를 찍어내듯 유리로 재현하거나, 알파벳과 한글 등 활자의 형태를 투명한 유리 조각 위에 덧붙이듯 찍어낸다. 유리 공예임에도 티끌 하나 없이 투명한 유리만 사용하지 않는다. 불투명한 표면과 다양한 색채를 사용해 유리의 표현력을 넓혔다.
손성례 청작화랑 대표는 "풍부한 감성과 섬세한 감각으로 여러 변화 속에 기억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활자를 재료로 하여 차가운 물성의 유리작품이지만 따뜻한 감성과 감흥을 자아낸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홍익대 미대 조소과 학사·석사과정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국립미술대 초청학생과 파리 ADAC 유리 전공을 거쳤고 30회 이상의 개인전과 400여 회 기획전에 참가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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