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당신의 18번 요리는
드라마 '심야식당'은 도쿄의 뒷골목, 허름한 식당의 주방장 겸 주인장 마스터와 그의 손님들을 둘러싼 사람 사는 이야기를 잔잔하게 그린다. 눈물을 쏙 뽑거나 박장대소의 자극은 없다. 그런데 어느새인가 눈가가 촉촉해지고 입꼬리가 올라간다.
손님들은 자정을 넘어, 허기를 달래기 위해 마스터를 찾는다. 허기는 두 곳에서 온다. 하나는 텅 빈 위장에서, 다른 하나는 텅 빈 가슴에서. 마스터는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요리라면 뭐라도 만들어준다. 마스터의 음식은 자극적이지 않다. 언젠가 어머니 혹은 할머니가 만들어주셨던 가족의 요리다. 그래서 가슴에서도 포만감이 느껴진다.
몇 회를 보고 나서 배가 고파진다. 직접 만들고 싶다. 하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다. 라면을 택한다. 라면 레시피만 해도 수십, 수백 가지. 보통 라면이 아니라 특별한 라면을 만들면 되겠지. 계란을 풀고 파를 잘라 넣는다. 마스터 같은 칼질의 유연함은 당연히 없다. 칼 대신 가위를 쓸 수도 있다. 그리고 나만의 비법 한 스푼.
아내에게 내놓는다. 이 밤에 무슨 라면이냐며 손사래를 치다가 한 젓가락을 먹는다. 맛있다고 한다. 정말 맛이 있어서 맛있다고 하는지는 모르겠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부커상을 받은 영국 소설가 줄리언 반스-내게 그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연애의 기억(The Only Story)'을 택할 것이다-는 '또 이따위 레시피라니'라는 책에서 "요리는 열정과 상식의 문제다. 그렇게 전문적일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라고 했다. 또 "성실한 요리는 평온한 마음, 상냥한 생각, 그리고 이웃의 결점을 너그럽게 보는 태도를 은밀히 증진"하는 만큼 "우리에게 경의를 요구할 자격이 있다"고도 했다.
요즘 결혼하려면 요리를 잘해야 한단다. 요리사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유튜브 먹방이 종편과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으로 확장된 지도 오래다. 그런데 어디 결혼뿐일까. 신입사원 면접을 보다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각종 인증서와 스펙, 경험들…. 예전같이 졸업장 하나에 '뭐든 할 수 있습니다'라는 패기만 갖고는 명함도 못 내민다. 과거의 나는 1차 심사도 넘지 못할 것 같다.
가족의 또 다른 말은 식구다. 밥 식(食), 입 구(口). 말 그대로 밥 같이 먹는 게 가족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가족을 잘 먹이는 게 가장의 가장 중요한 임무다.
미국의 소설가 제임스 설터는 부인 케이 설터와 같이 쓴 요리 에세이 '위대한 한스푼'에서 "인생을 즐겁게 해주는 여러 가지 중에서 단연 최고는 음식이며, 함께 음식을 나눌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진정 삶의 축복"이라고 했다. 요컨대 가족을 위한 최고의 일은 '같이 밥 먹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같이 먹는 일이 별로 없는 요즘 가족들은 외롭다. 같이 자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18번 요리로 가족을 모아야 한다. 아빠들이 먼저, 그리고 기왕 하는 거 미래의 남편과 아내가 될 자녀들에게도 일찌감치 18번 요리를 익히도록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식구를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
내 18번 요리는 특별한 라면이고 콩나물국도 제법 잘 끓인다. 지난 추석에는 카레도 만들었다. 거기 아저씨들, 당신의 18번은 뭔가요?
[김영태 코레일유통(주)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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