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남북한 ‘호칭 갈등’과 선수들의 우정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8일 막을 내렸다. 새삼 확인한 것은 신체의 한계에 도전하며 선의의 경쟁을 하는 스포츠만큼 감동적인 드라마가 없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확인한 안타까운 사실은, 스포츠가 정치화된 현실이다. 과거 단일팀을 이뤄 서로 응원하기도 했던 남북한은 경기장 안팎에서 냉랭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북한 매체에서 ‘남조선’ 호칭이 ‘괴뢰’로 대체된 것이 눈에 띈다. 북측 인사들은 남측 기자들의 ‘북한’ ‘북측’ 표현을 콕 집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정정하기도 했다. 북한은 남측을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일상적으론 ‘괴뢰’라고 부르기로 한 것 같다. 이러한 호칭 변경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 명시된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로서의 남북관계를 포기하고, 적대적인 국가 간 관계로 가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국제대회에 나온 선수들이 그런 방침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남북한 선수들이 실력을 겨루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북한 선수들은 남측 선수들과 한 화면에 잡히면 웃음기가 사라졌다. 시상식에서 선수들끼리 손을 마주치는 인사는 남북한 사이엔 생략됐다.
그런 가운데 한 역도 선수의 우정 어린 발언이 화제다. 지난 5일 76㎏급 여자 역도 경기에서 북측 송국향·정춘희 선수가 금·은메달, 남측 김수현 선수가 동메달을 받고 함께 기자회견에 나왔다. 첫 메달을 딴 김 선수는 2012·2016년 올림픽 우승자 북한 림정심 선수를 언급하며 “정심이 언니보다 더 잘하는 선수 두 명이 같이 경기를 하게 돼서 앞으로 저도 더 목표가 높게 잡히면서 이 친구들만큼 더 잘해서 또 이렇게 시상대에 같이 올라가서 웃으면서 마무리”하겠다고 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북한의 두 선수와 코치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후 김 선수가 털어놓은 뒷얘기가 묘한 울림을 줬다. 4위로 결선에 오른 그가 긴장하고 있을 때 “북한 코치 선생님이 몰래 다가와서 ‘수현아, 너한테 기회가 왔다. 너 될 거 같으니까 정신 바짝 차리라’고 얘기해주셨다”고 했다. ‘핵무력’과 ‘힘에 의한 평화’에 압도된 남북관계가 함께 땀 흘린 운동선수들의 연결된 마음까지 감춰버릴 수는 없다. 그 점을 확인시켜준 선수들에게 고맙다.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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