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전3기' 황선홍, ‘금빛’으로 33년간 맺힌 아시안 게임 한 씻어내[최규섭의 청축탁축(清蹴濁蹴)]
“비로소 33년간 가슴에 박힌 한을 빼냈다. 오랜 세월 아시안 게임에 맺힌 한을 씻었으니 오늘 밤은 편안한 잠을 이룰 수 있을 듯싶다.”
황선홍(55) 한국 축구 23세 이하(U-23) 대표팀 감독은 감격에 겨워했다. 국가대표로서 그라운드를 누비던 시절부터 사령탑으로 태극전사를 호령하는 지금까지 긴 시간 가슴속을 짓누르던 응어리를 푼 감개가 어린 목소리는 떨려 나왔다.
‘2전3기!’ 선수로서 두 번이나 도전했건만, 아시안 게임은 그를 외면했다. 거머쥘 수 있다고 자신했던 금메달은 번번이 눈앞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러나 결코 꺾일 수 없었다. 감독으로서 출사표를 던지고 세 번째 등정의 열정을 불사른 전장(戰場),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마침내 야망을 이뤘다. 더욱이 ‘숙명의 맞수’ 일본과 치른 마지막 한판에서, 통쾌한 역전승(2-1)을 거두고 울린 승전고라 벅차오르는 감동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지난 7일 늦은 밤, 최후의 한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기 힘들었던 ‘운명의 한판’에서, 마침내 신은 한국에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 순간, 황 감독의 눈앞엔 자신이 걸었던 아시안 게임 도전의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영광과 오욕으로 점철된 파란만장한 세 번의 아시안 게임 도전사다(표 참조).
선수로서 못 이룬 금빛 꿈, 감독으로서 마침내 이뤄
황선홍 감독에게 아시안 게임 첫 무대는 1990 베이징 대회였다. 약관(弱冠)의 나이에 일약 국가대표팀에 발탁돼 1988 카타르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에 출전했던 그는 2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싱그러운 기운을 내뿜는 골잡이였다.
그는 데뷔 경기부터 나래를 활짝 펴고 날았다. 조별 라운드 두 번째 판인 파키스탄전에 첫 모습을 나타내 선제 결승골을 비롯해 해트트릭을 터뜨리는 비상으로 7-0 대승을 이끌었다. 그룹 스테이지 3경기에서 16골의 폭죽성을 울리며 승승장구하던 ‘박종환호’의 거침없는 기세에 한몫한 좋은 공격수가 틀림없었다.
그러나 신은 ‘박종환호’에 등을 돌렸다. 4강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이란에 0-1로 고배를 들었다. ‘시한부 사령탑 퇴진’의 비운에 내몰렸다가 극적 반전을 이루며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박 감독이 이끄는 태극전사들은 금의 꿈이 스러지며 그라운드에 주저앉았다. 3-4위 결정전에서, 태국을 1-0으로 꺾고 차지한 동메달로 그나마 스스로를 달랠 수밖에 없었다.
4년 뒤, 그는 다시 도전의 길에 나섰다. 이번엔 ‘비쇼베츠호’였다. 처음엔, 역시 순탄했다. 조별 라운드 첫판 네팔전에서, 그는 그야말로 용솟음치는 활화산이었다. 물경 8골을 쏘아 올렸다. 홀로 북 치고 장구 치며 11-0 대승을 연출했다. 나흘 뒤 두 번째 오만전(2-1 승)에서도, 결국은 결승 득점이 된 한 골을 잡아냈다. 개최국 일본과 맞붙은 8강전도 2골을 터뜨린 그의 독무대였다. 종료 직전인 후반 45분엔, 페널티킥으로 역전 결승골까지 빚어냈다.
그러나 신은 또 한 번 농락했다. 4강전에서, 슛을 소나기처럼 퍼부으며 일방적 경기를 펼쳤음에도 우즈베키스탄에 0-1로 분패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3-4위 결정전에서 쿠웨이트에 1-2로 져 동메달마저 놓쳤다.
29년이 흘렀다. 그는 세 번째 도전장을 던졌다. 이번엔 감독으로서 비장한 마음을 추스르며 아시안 게임 정복의 발걸음을 내디뎠다. 각축장은 그가 아시안 게임과 첫 연(緣)을 맺은 중국이었다. 도시만 베이징에서 항저우로 바뀌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토록 열망을 불태웠던 금빛으로 항저우 하늘을 수놓았다.
그를 선장으로 한 ‘황선홍호’는 거침없는 항해를 바탕으로 엄청난 전과를 올리며 희망봉에 닿았다. 7연승의 승전보를 올렸다. 27득점 3실점은 완벽한 공수 균형을 뽐낸 한 징표다. 그 결실은 대단하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아시안 게임 최초 3연패(覇)를 디딤돌로, 우리나라가 보유한 최다 등정 기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5→6회). 또, 출범(2021년 9월) 후 처음으로 희망봉에 닻을 내렸다.
아울러, 황선홍호가 마지막 파고를 넘기고 우승에 다다른 데엔, 또 하나의 깊은 의미가 깃들어 있다. 각급 대표팀 일본전 연패 고리를 끊는 전과까지 올렸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은 A대표팀을 비롯해 U-23대표팀과 U-17대표팀에 이르기까지 일본에 거푸 쓴잔을 들었다. 우위를 지킨 U-20대표팀을 제외하면 연패의 나락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던 실정이었다. 이날 결승전에 앞서 U-23대표팀 한일전 마지막 승자는 지난해 6월에 벌어진 AFC U-23 아시안컵 8강전에서 축배(3-0 승)를 든 일본이었다.
적어도 아시안 게임에선, 그는 일본에 좋은 추억을 갖게 됐다. 선수로서 1승, 감독으로서 1승 등 두 번 맞붙어 모두 개선가를 소리 높여 불렀다. 사실, 그에게 무척 기분 좋은 추억거리로 남아 있는 일본전 첫출발이다. 태극 유니폼을 입고 A매치 데뷔골의 희생양으로 삼았던 상대가 일본이다. 35년 전인 1988 AFC 아시안컵 조별 라운드 일본전에서, 2-0 완승의 기폭제가 된 선제 결승골을 터뜨린 바 있다.
“이제 영광과 기쁨을 뒤로하고 새로운 발걸음을 떼야 한다.”
그의 말처럼, 황선홍호는 새 출발에 나선다. 2024 파리 올림픽에서 메달의 꿈을 이루겠다는 각오를 다지면서 또다시 희망에 가득 차 닻을 올리려 한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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