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 안세영이 준 두 가지 커다란 교훈
세계 랭킹 1위의 한국 여자 배드민턴 안세영(21)이 항저우 아시안게임 2관왕에 오른 것은 당연한 듯 보이면서도 '충격의 연속'이었다. 그 충격은 '압도적 기량'과 '(듣는 이를) 짓누르는 언어'에서 나왔다.
단식 경기에서 안세영은 약간의 차이나 아슬아슬한 경기력으로 상대를 제압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믿기 어려운' 실력으로 상대의 공격 의지마저 꺾을 정도였다. 8강전에 나선 태국 부사난 옹밤룽판(27) 선수는 (자신이) 아무리 강한 스매싱을 내리쳐도 모두 받아내는 안세영의 수비에 혀를 내두르며 허탈한 웃음을 내비치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심지어 경기를 마친 뒤엔 한국어로 "안세영, 대박"이라고 외치며 그의 압도적 기량을 치켜세웠다.
결승전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계 3위 천위페이(중국)를 2대 1로 제압할 때도 그 기량은 촘촘히 빛났다. 안세영은 첫 번째 게임 마무리에서 극적으로 수비하다 무릎을 다쳤다. 가까스로 이 게임을 가져갔지만, 두 번째 게임은 상대에게 내줘야 했다. 이 흐름을 보고선 마지막 게임은 부상의 위험과 다음 올림픽 경기를 위해서라도 질 수밖에 없거나 포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하지만 안세영은 마지막 게임을 21대 8로 간단히(?) 제압했다. 경기를 마친 뒤 안세영은 "무릎 쪽이 많이 아팠다"면서 "걸을 정도는 돼 정신력으로 뛰었다"고 했다.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던 중국 여자 역도 선수 리아오 구이팡이 용상 2차 시기에서 팔꿈치에 이상이 생겨 3차 시기를 포기해 실격 처리된 사례 등과 비교하면 불굴(不屈)도 이런 불굴이 없을 정도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안세영의 전 경기를 종합하면, 그의 기량은 '압도적'이라는 말 외에 따로 쓸 수식어를 찾기 어렵다. 안세영은 우선 코트 바로 앞에서 콕 찍어 넘기는 헤어핀이나 코트 멀리 보내는 하이클리어 같은 비교적 '약해 보이는' 기술을 아주 영리하고 감각적으로 사용한다. 상대가 이런 기술을 약점 잡아 스매싱 기회로 이용하는 것 자체를 차단하려는 것처럼 '기술적'으로 방어하는 셈이다.
무엇보다 상대의 빈자리를 공략하는 과정에서 라인을 정확하게 계산해서 보내는 '신기의 기술'은 어떤 선수에게서도 보기 힘든 최고의 공격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해설자들이 저마다 'AI 안세영'이라는 별칭을 붙였을까.
안세영은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뒤 "내 연습량을 믿었다"는 말을 했다.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연습량'을 운운하지만, 이날 그의 이 멘트는 특별했다. 하루 10시간씩 독서실에 있다고 반드시 학습 능률이 올라가지 않듯, 그의 연습도 양 뒤에 숨겨진 어떤 특별한 '무엇'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을 엿보게 했다.
그만큼 그의 경기는 어떤 특별한 연습이 아니고선 증명될 수 없는 결과를 선보였다. 예를 들면, 어떤 공격도 다 받아내기 위해 여러 각도에서 받아내는 연습만 수없이 했다거나, 자신이 보낼 셔틀콕의 낙하지점을 정확히 계산하기 위해 강약 조절을 끊임없이 연습해 본능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하는 방식들이 그것이다.
잘하는 것과 매일 하던 패턴을 계속 연습하는 방식이 아니라, 못하는 것과 힘든 걸 고통스럽게 받아들이며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는 연습으로 양을 채우는 방식이 그가 말하는 진정한 연습량의 의미인 셈이다.
이용대 SBS 해설위원은 "안세영 선수를 몇 년 전 만났을 때, (네가 승리하려면) 강한 공격을 연습해야 한다는 말을 했는데, 지금 그 말을 취소해야겠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기도 했다. 승리가 정해진 툴이나 방향이 아닌, 각자의 연습과 해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도 안세영은 기꺼이 증명했다.
안세영의 기막힌 충격과 감동의 언어는 단식 결승전 이후에도 계속됐다. 그는 "무릎이 '딱' 소리가 나면서 어긋난 느낌이 들어 고통스러웠다"면서 "지금 같은 순간이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고통을 이겨내고 뛰었다"고 했다.
21세의 어린 국가대표 선수가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을 이야기할 때 머리에 크게 한 방 맞은 듯한 느낌을 피하기 어려웠다. 반백 년을 살아도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라고 절실히 느끼며 사는 인생이 많지 않은데, 이렇게 삶을 절실하고 소중하게 꾸리는 인생을 직접 마주할 수 있다니. 안세영은 자신이 충실하게 살아온 삶의 느낌을 그대로 표현했지만, 그 사실이 주는 충격과 감동은 결코 작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하루를 특별한 연습으로 시작하고 마무리했을까. 그리고 그런 날은 또 얼마나 될까. 우리는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에 얼마나 최선을 다했을까. 아니, 지금 다시 달아나는 이 순간을 잡을 생각조차 해본 적이 있을까.
안세영이 모든 경기가 끝나고 한꺼번에 터뜨린 눈물과 포효의 의미가 이제야 비로소 각인되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차근차근 쌓아 올린 작지 않은 삶의 교훈들에도 뒤늦은 감사 인사를 전한다. 탱큐, 안세영!!!
김고금평 에디터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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