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도 없는 어린이집 ‘0살반’…복직 10일 전 가까스로 구해
한겨레교육에서 진행한 ‘김완 기자의 실전 100% 기획기사 워크숍’ 수강생들이 8주에 걸쳐 직접 취재·작성한 기사 가운데 몇 편을 <한겨레21> 독자에게 선보입니다. _편집자
“워낙 초저출산이라고, 그걸 해결한다고 했으니까. 낳으면 정책의 도움을 받아 키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막막하고, 의외였다. 그러다 나중엔 이런 현실에 화가 났다.”
놀랐다. ‘저출산 대책’이 사회적 화두로 자리잡았고, 육아하기 좋은 사회를 향해 ‘정책’이 나아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아가 현실이 되자, 정책은 내 아이에게 와닿지 않았다. 김은미(가명)는 출산휴가 3개월 뒤 복직해야 했다. 남편 벌이만으론 생활하기 빠듯했고, 무엇보다 비정규직 신분이라 휴가 기간 내내 서늘한 기분이었다. 시가와 친정 부모님이 아이를 맡아줄 수 없다는 걸 최종 확인하곤 정부의 ‘아이돌봄서비스’를 찾았다. 아이돌봄서비스는 맞벌이 등의 사유로 양육 공백이 있는 가정의 만 12살 이하 아동을 대상으로 아이돌보미가 집으로 찾아와 돌봄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복직 90일 전
‘90일 미만 아이는 등록할 수 없습니다’. 무얼 잘못 입력했나, 몇 단계 인증과 입력을 다시 해봤지만 화면엔 같은 메시지만 떴다. 정부가 운영하는 육아 복지 포털 사이트 ‘복지로’는 아이를 서비스 대상자로 등록할 수 없다고 했다. ‘등록돼야 필요한 시점에 맞춰 신청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혼란스러웠지만 이때는 설마 했다. ‘내가 너무 앞서갔겠지, 아직 서비스를 받으려면 한참인데 태어나자마자 등록하는 건 너무 이른가.’ 불안해하지 말자고 충분히 보육 서비스를 구할 수 있으리라 스스로를 다독였다.
복직 50일 전
‘90일 미만 아이는 등록할 수 없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지 40일이 지났지만 복지로의 대답은 같았다. ‘도대체 왜 안 된다는 거지, 주민센터에 전화라도 해봐야 하나’ 싶었지만 좀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남편과 이야기하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많아졌지만 그래도 그때까지는 정부 정책을 믿어보기로 했다. ‘육아 정책이 이렇게 많고 다양한데 당연히 아이를 맡길 수 있겠지.’
복직 30일 전
‘90일 미만 아이는 등록할 수 없습니다’. 같은 메시지를 보니 가슴이 울렁거렸다. 이제 한 달 뒤면 출근해야 하는데 여전히 복지로의 대답은 같았고, 아이를 어디에 맡겨야 하는지 확인조차 할 수 없었다. 본격적으로 여성가족부와 보건복지부 누리집을 들락거리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아이돌봄서비스 담당자는 “90일 미만 아이는 신청할 수 없다”는 사실을 육성으로 전했다. 이미 두 달 전 온라인에서 확인했던 것이 끝내 사실로 확정된 순간이었다. 담당자는 친절하게 “복직 시점에 맞춰 미리 신청하는 건 규정상 불가능하다”고 알려줬다.
회피했던 사실을 복직에 임박해 확인하니 더 숨이 막혀왔다. 아이 태어나자마자가 제일 고비란 말은 현실이었다. ‘차라리 복직하지 말아야 할까, 왜 정규직이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붙여 쓰는지’ 알게 됐다. 회로에 갇힌 듯, 압박적인 질문들에 이미 마음은 패배자가 됐다. 정규직이면 아이를 돌볼 수 있을 텐데, 태어나자마자 아이를 맡기자고 마음먹은 게 잘못이었는지 막막했다. 마음을 진정시키며 ‘맘카페’를 들여다보니 이미 먼저, 비슷한 고민을 마주했던 워킹맘이 꽤 있었다.
대표적 고민이 ‘육아휴직 중이라 정부의 아이돌봄서비스를 신청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정부 규정상 ‘육아휴직은 맞벌이로 볼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정부 지원 아이돌봄서비스를 받으려면 신청 시점에 재직 증빙을 해야 한다. 이 때문에 휴직 중인 워킹맘은 시스템을 우회해 주민센터에 전화해 구두로 대기를 걸어 육아돌보미를 구한 뒤, 복지로 사이트에 나중에 지원 신청을 다시 했다. 생각해보니 재직 증빙이 되지 않아 서비스 신청이 되지 않는다던 맘들과 비슷한 처지 같기도 했다.
주민센터에 직접 전화해봤다. 연결된 아이돌봄센터 직원은 이번에도 친절했다. 미리 대기를 걸 수 있지만 “대기 가정이 좀 많다”고 했다.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니 “200가정”이라며 “신청은 받아도 언제 매칭될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가정마다, 선생님마다 상황이 달라서 확답을 드릴 순 없지만 아주 운이 좋으면 한 달, 길면 1년까지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작년에 신청해서 아직 기다리는 분도 있다”는 말이 차라리 신청하지 말란 권유처럼 들리기도 했다. 차례대로라면 기다릴지 안 기다릴지 결정이라도 할 텐데. 남편은 그나마 차례대로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기다림이란 걸 다행으로 생각하자고 했다.
복직 25일 전
정부 육아 정책이 진화해서 아이를 낳고도 출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나에게 맞는 건 아이돌봄서비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안 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부터 잠든 아이의 표정을 볼 때조차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그사이 복직 시계는 멈추지 않고 흘렀다.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었다. 애초에 고려하지 않았던 어린이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이번에도 정보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알아봐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 아파트 단지 내 국공립어린이집에 전화를 걸었다. 돌아온 대답은 “0살반이 없다”는 것이었다.
근처 어린이집 몇 군데에 전화를 더 걸어봤으나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맘카페에 ‘0살반이 있는 어린이집을 찾는다’는 글을 올렸다. 처지에 대한 공통감각 때문일까, 금세 답변이 달렸다. ‘민간어린이집이나 가정어린이집에 0살반이 있을 수 있으니 한번 알아보세요.’ 궁하면 통한다는 심정으로 맘카페와 아파트 커뮤니티를 통해 알아낸 모든 민간·가정 어린이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30곳이 넘는 어린이집 중 0살 아이가 입소할 수 있는 어린이집은 없었다. 아예 0살반이 없거나, 있어도 빈자리가 없었다. 0살반 입소를 위해 미리 대기를 걸어놓는 건 알았지만, 임신하자마자 대기를 걸어둔다는 것은 이때 처음 알았다.
복직 10일 전
2주간 30곳 넘는 어린이집들과 통화하며 김은미는 바람받이에 선 촛불 같았고, 세상에 무엇을 이리도 간절히 원한 적이 있었는지 생경했다. 하루가 멀다고 저출산 대책이 쏟아지는데 내 아이 하나 맡길 곳이 없다 생각하니 갑자기 세상이 좁고 닫힌 듯했다. 그냥 다 포기하고 육아휴직을 신청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갑자기 그러는 건 동료들에게 민폐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보다는 비정규직이라 육아휴직이 끝났을 때 내 자리가 있을지 두려웠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화났다. 정규직이었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더욱 맹렬히 맘카페를 비롯한 커뮤니티를 파고들었다. 그러다 좀 오래된 글 하나를 발견했다. ‘아이가 가정어린이집 0살반에 다니는데, 사람들이 잘 몰라서 없어질까봐 불안하다’는 어느 워킹맘의 글이었다. 썩은 동아줄 잡는 심정으로 그 어린이집에 전화했다. “혹시 0살반 자리가 있을까요? 바로 입소하고 싶은데요.” “네, 마침 빈자리가 하나 생겨서 바로 들어오실 수 있어요.” 자연 상태에서 네잎클로버를 찾을 확률이 1만 분의 1이라던가. 아이를 맡기는 일이 그래도 되는 것일까. 김은미는 복직 열흘 전에 아이 맡길 곳을 찾았다.
그래도 김은미는 운이 좋은 사례다. 0살반 빈자리를 끝내 구하지 못해 복직을 미루거나, 주변에 0살반 어린이집이 없어 아이를 원정 보내는 워킹맘이 부지기수다. 아이돌봄서비스는 복지로에서 신청하지만, 어린이집에 맡길 때는 임신육아종합포털 ‘아이사랑’을 이용해야 한다. 아이사랑은 연령과 상황을 입력해 대기를 걸면 자동으로 순번을 알려주는 방식인데 보통 6개월~1년 전부터 대기를 건다. 하지만 이 순번을 무조건 믿으면 안 된다. 0살반의 경우 신청은 되지만, 실제론 운영하지 않는 곳이 많다.
어린이집 수지타산 안 맞는 ‘0살반’ 운영
어린이집이 0살반 운영에 적극적이지 않은 데는 사정이 있다. 현행법상 ‘0살반 편성’은 의무사항이 아니다. 또 0살반을 운영하려면 훨씬 품이 많이 든다. 0살반은 아이 3명당 보육교사 1명을 원칙으로 한다. 1살반 5명, 2살반 7명, 3살반 15명보다 정원이 훨씬 적다. 인건비가 2~5배 더 많이 든다는 의미다. 한 반의 정원이 적으니 1명만 빠져나가도 적자가 커져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전체적인 아이 수가 줄어 어린이집이 노인시설로 전환되는 세태에서 민간어린이집이 경영 부담이 큰 0살반을 편성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출생인구가 줄어가는 상황에서도 돌봄을 필요로 하는 0살 어린이는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0살반에 다니는 어린이 수는 2021년 8만3815명, 2022년 9만4620명, 2023년 2월 9만5798명으로 증가했다.
아이를 낳고도 언제든 일터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상식이 되는 세상은 언제쯤일까. 육아 정책이 현실에 와닿지 않고 표류하는 사이, 복직을 앞두고 아이 맡길 곳이 없어 애타는 워킹맘은 맘카페 같은 곳에서 겨우 스스로 구한다. “워킹맘은 아이 키우기 힘든 세상이에요. 도우미분 꼭 구하셨으면 좋겠어요. 힘내세요.” “네. 이래서 출산율이 낮나봐요. 아기는 정말 예쁜데 현실이 너무 힘드네요. 감사해요.”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십수 년 전에도 나눴을 것 같은 응원과 위로를 교환하며 말이다.
최현정 한겨레교육 수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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