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미곡처리장 먼지는 미세먼지가 아니다?···농식품부의 알 수 없는 법령 해석

이창준 기자 2023. 10. 8. 14:5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먼지가 쌓여있는 한 미곡종합처리장. 어기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미곡종합처리장에서 배출되는 먼지를 일정 수준 이하로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는 정부 부처가 실제 적용해야 하는 기준보다 75배나 후한 기준으로 처리장을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처간 기준이 달라 비산먼지 발생사업으로 적용해야 할 기준을 일반먼지 기준으로 허용했기 때문이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어기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8일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농식품부가 현재 관리하고 있는 미곡종합처리장은 전국 182개소로, 농식품부는 이들 미곡처리장에 ㎥ 당 30㎎ 이하의 먼지 배출 기준을 충족하는 집진 시설(먼지 제거 시설)을 설치토록 규제하고 있다.

미곡종합처리장은 벼나 보리 등 쌀 종류의 곡물에 대한 선별, 계량, 품질 검사, 도정, 저장 등 종합 처리를 담당하는 시설이다. 시설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농식품부는 2020년부터 미곡종합처리장에 설치하는 집진 시설에 대한 개보수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지원 대상 처리장에 설치하는 집진 시설의 먼지 배출 기준은 농식품부가 정하며, 관리 및 감독 책임 역시 농식품부에 있다.

문제는 농식품부가 미곡종합처리장의 집진 시설 기준을 ‘비산먼지’가 아닌 ‘일반먼지’ 기준으로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환경보전법 시행령 44조. 곡물 운송·하역·보관업을 비산먼지 발생 사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갈무리

농식품부는 대기환경보전법 제16조 제1항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15조에 따라 집진 시설 기준을 정했다. 이 기준은 화력발전소처럼 굴뚝 등 배출구를 통해 나오는 일반 먼지를 관리하기 위한 기준이다.

반면 환경부는 미곡종합처리장에서 주로 발생하는 오염 물질은 배출구 없이 대기 중에 직접 배출되는 먼지인 비산먼지로 분류하는 것이 맞다는 입장이다. 비산먼지는 미세먼지 발생의 주범으로 지목되기 때문에 대기환경보전법은 비산먼지 발생 시설을 엄격한 기준에 따라 관리토록 규정하고 있다. 시멘트 제조시설은 먼지 배출 기준 ㎥ 당 0.3㎎ 이하, 그 밖의 시설은 ㎥ 당 0.4㎎ 이하의 집진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대기환경보전법 제43조 및 같은 법 시행령 제44조를 보면 곡물의 운송 및 하역·보관업은 ‘비산먼지 발생 사업’으로 규정돼있다. 즉 정부는 ㎥ 당 0.4㎎의 먼지 배출 허용 기준에 따라 미곡종합처리장을 관리해야 했으나 이보다 75배나 더 많은 ㎥ 당 30㎎ 기준에 따라 처리장을 관리한 것이다. 환경부는 의원실에 제출한 서면 답변 자료에서 “미곡종합처리장은 곡물가공업으로 분류돼 비산먼지 발생 신고 대상”이라며 “비산먼지에 대한 (미세먼지) 배출 허용 기준 등을 준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곡 가공 작업 중인 미곡종합처리장. 어기구 의원실 제공

농식품부는 미곡종합처리장에서 발생하는 먼지가 비산먼지가 아니어서 현행 적용 기준도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처리장에서 발생하는 먼지는 외부로 노출된 상태에서 발생하는 먼지가 아니기 때문에 대기 중에 직접 배출되지 않아 비산먼지로 볼 수 없다”며 “㎥ 당 30㎎라는 관리 기준도 환경부와 함께 정했다”고 말했다.

의원실 관계자는 “미곡 처리 과정에서 다량의 먼지가 외부로 날릴 수밖에 없다”며 “법령 관리 부처인 환경부 해석을 농식품부가 자의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 의원은 “농식품부가 미세먼지 대책의 강도를 높이고 있음에도 미곡종합처리장 집진 시설 관리 기준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부처간 협의를 통해 현장에서 혼선이 없도록 관련 법률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준 기자 jchang@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