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건축비에 예천 이재민들, 임시주택서 발 동동
“애들 잘 데도 없는데 연휴가 무슨 소용 있겠니더. 손주 볼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유순악 할머니(87)가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곳에서 40여년을 살아온 유 할머니는 지난 7월 15일 발생한 집중호우로 보금자리를 잃었다. 산에서 쏟아져 내려온 빗물과 토사에 휩쓸려 집 대부분이 무너졌다.
당시 잠에서 깬 유 할머니는 가까스로 무너져 가는 집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지난 집중호우로 경북지역에서는 예천 15명·영주 4명·봉화 4명·문경 2명 등 모두 25명이 숨졌고 2명이 실종됐다.
유 할머니는 “임시주택이 손바닥만 해서 자식들 내외가 내려와도 있을 곳이 없다. 지난 추석 연휴 때 애들을 마을회관에서 하루 재우고 다음 날 올려보냈다”며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유 할머니는 현재 28㎡(약 8평) 남짓한 크기의 컨테이너 임시 조립주택에 입주해 있다.
집중호우로 고통받은 경북 예천 이재민들이 지난 주말부터 한글날까지 이어진 황금연휴에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하고 있다.
8일 예천군에 따르면 현재 임시주택에는 31가구 48명이 생활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연휴기간 동안 마을회관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모두 유 할머니와 같은 이유다. 올 여름 집중호우로 경북지역에 마련된 임시주택은 예천·봉화·영주·청송 등 모두 48동이다.
임시주택 생활도 녹록지않다. 작은 마당과 툇마루가 있던 시골집에서 살던 어르신들로선 원룸 같은 공간이 낯설기만 하다. 이모씨(70대)는 “마루에 앉아 햇볕도 받고 해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며 “아무래도 내 집이 아니라 불편한 게 많다”고 했다.
이날 반쯤 무너진 집터에서 만난 정명희 할머니(93)도 연휴를 맞아 찾아오겠다는 아들 내외를 돌려보냈다. 자고 갈 곳이 마땅찮아 늦은 밤 다시 대전으로 올라간다는 말에 걱정이 앞서서다. 정 할머니는 “밤길에 사고라도 날까 봐 오지 말라고 했다”며 “연휴도 소용없다. 내년 설에도 손주 얼굴 보기 글렀다”고 한탄했다.
하루라도 빨리 새 집을 짓고 싶지만 집을 다시 짓기에는 정부지원금이 충분하지 않다. 경북도는 집중호우 이재민이 받을 수 있는 정부 지원금과 위로금·의연금이 최대 1억300만원이라고 밝혔다. 다만 최대치를 받을 수 있는 경우는 116㎡(약 35평) 이상 전부 파손된 주택뿐이다.
피해 정도와 주택 규모에 따라 지원금은 5100만~1억300만원으로 차등 지급된다. 등기가 없는 무허가 건물이거나 창고 등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농촌의 경우 창고를 개조해 주거공간으로 사용하거나 무허가 건물에서 사는 경우가 빈번하지만, 지원금 자체가 없다 보니 집을 짓는 비용 대부분을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절반 수준만 파손(반파)됐다는 판정을 받은 예천 주민 김모씨(60대)는 “요즘 건축 자재값이 많이 올라서 평당 최소 600만~700만원은 줘야 한다고 하더라”며 “25평 주택을 짓는데 기본 공사비만 1억7000만원인데, 대부분 소득이 없는 노인이라 대출도 못 받는다”고 말했다.
창고를 주거 공간으로 활용했던 정 할머니는 지원금마저 받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했다. 임시주택에서는 최대 2년만 거주할 수 있다. 그사이 새로운 집을 마련해 나가야 하지만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다. 정 할머니는 “비가 많이 와서 똑같이 죽을뻔 했는데 창고냐 아니냐가 중요하느냐”며 “구십먹은 노인이 어디서 살란 말이냐”고 하소연했다.
경북도 관계자는 “임시주택은 행정안전부 지침상 최대 2년만 거주 가능한 상황”이라며 “주택이 아닌 무허가 건물이나 창고의 경우 근거가 없어 현재로서는 별도 지원금을 지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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