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WHO 권고에도 내년 ‘두창백신’ 예산 전액 삭감···이유는?
긴축재정 기조를 강조하는 정부가 북한의 생물테러 등에 대응하는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사항이기도 한 두창백신 비축 관련 예산은 ‘0원’으로 편성됐다.
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내년 질병관리청 예산 중 생물테러 대응 예산은 50억2300만원으로 올해(119억7300만원) 대비 약 60% 삭감된 것으로 나타났다.
생물테러는 바이러스, 독소와 같은 생물학 작용제를 이용해 대량 살상을 목적으로 하는 테러이다. 테러 발생 시 치명률이 높고 음압격리 등 높은 수준의 관리가 필요한 에볼라바이러스병, 페스트, 탄저, 두창, 보툴리눔독소증, 마버그열, 라싸열, 야토병과 같은 제1급감염병에 감염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북한의 생화학무기 전력을 세계 3위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2022년 133억300만원이었던 생물테러 대응 예산은 현 정부 들어 2023년 119억7300만원, 2024년 50억2300만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질병청은 기획재정부에 내년 생물테러 대응 예산으로 117억6200만원을 신청했지만 최종 예산안엔 이보다 약 60% 줄어든 50억2300만원만 편성됐다.
이 중 가장 크게 예산이 감소한 사업은 ‘생물테러 대비 비축물자 구입’이다. 질병청은 관련 예산으로 71억6200만원을 신청했지만 최종 예산안엔 12억3000만원만 편성됐다. 기재부가 부처 신청안보다 59억원 가량을 삭감하면서 내년 두창백신 구입과 개인 보호장비 구입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 올해 각각 57억7600만원, 1억5600만원이었던 두창백신과 개인 보호장비 구입 예산은 내년엔 모두 ‘0원’으로 편성됐다.
기재부는 “현 재정 상황들을 고려한 우선순위에 따라서 예산을 조정했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긴축재정 기조에 따라 생물테러 대응 관련 예산은 대폭 삭감했다는 설명이다.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된 두창백신 비축 사업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사항이기도 하다. 질병청은 WHO의 권고에 따라 국내 생물테러감염병 발생에 대비해 단계적으로 두창백신을 비축하고 있다. 국민의 80%인 4000만명분의 백신을 보유하는 것이 목표다. 질병청에 따르면 미국은 국민 100% 분량의 백신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되면서 내년 추가 구입량이 없어 두창백신 보유량은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김 의원이 질병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금까지 총 2380만명분의 백신 유효 기간이 만료됐고, 내년에도 325만명분의 백신이 추가 만료되면서 유효기간이 남은 두창 백신 비축량은 1296만명분으로 올해 12월 기준 1621만명분보다 20% 가량 줄어든다. 최근 5년간 두창백신 비축 현황을 보면 2018년부터는 1600만~1800만명분을 웃도는 분량을 보유해왔다. 국내에서 두창백신을 생산하는 유일한 업체의 생산라인 가동도 중단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개인보호장비 구입 예산도 전액 삭감되면서 레벨 A 개인보호장비는 올해 589개에서 내년 493개로, 레벨 C 개인보호장비는 올해 2242개에서 내년 1457개로 줄어들게 된다.
김 의원은 “생물테러는 극소량으로도 심각한 재난을 초래할 수 있고 발생 시 확산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며 “백신과 치료제 등 필수 비축물자는 단순히 비용 차원이 아닌 국가 안보·국민 안전의 관점에서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민서영 기자 min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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