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청소년 축구 4강 신화' 쓴 박종환 전 대표팀 감독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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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4강 신화'를 쓴 박종환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지난 7일 세상을 떠났다.
공교롭게도 고인이 별세한 날에 축구대표팀이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일본을 2대 1로 누르고 금메달을 땄다.
한국 축구대표팀 서포터스인 '붉은 악마'의 유래가 됐다.
고인은 4강 신화 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 여러 차례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역임했으나 1996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서 이란에 2-6으로 져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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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4강 신화’를 쓴 박종환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지난 7일 세상을 떠났다. 대한축구협회는 8일 “박종환 원로가 지난 7일 오후 별세했다”고 밝혔다. 향년 85세. 공교롭게도 고인이 별세한 날에 축구대표팀이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일본을 2대 1로 누르고 금메달을 땄다. 빈소는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이다.
박 전 감독은 1938년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나 춘천고 경희대를 졸업하고 대한석탄공사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청소년 대표팀에 뽑혀 1960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제2회 아시아청소년대회에 참가했다. 선수 은퇴 뒤에는 지도자와 국제심판으로 활동했다.
고인은 1970년대 중반 약체팀이었던 전남기계공고의 지휘봉을 잡아 전국대회 우승으로 이끌며 감독으로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후 감독직을 맡은 서울시청팀 역시 여러 차례 국내 무대 정상에 올랐다. 서울시청에서 무려 14년간 팀을 이끌었다.
고인은 1980∼1983년 U-20 청소년대표팀을 맡아 두 차례 세계청소년대회에 참가했다. 특히 1983년 멕시코 대회에서는 ‘벌떼 축구’로 한국 축구 사상 처음으로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 4강에 올랐다. 선수들에게 멕시코 고지에 대비한 훈련으로 마스크를 쓰게 하고 풀타임을 뛰게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 대회에서 보인 한국은 기동력과 체력, 패스워크로 외국 언론으로부터 ‘붉은 악마’로 불렸다. 한국 축구대표팀 서포터스인 ‘붉은 악마’의 유래가 됐다.
고인은 4강 신화 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 여러 차례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역임했으나 1996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서 이란에 2-6으로 져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났다. 1989년에는 신생 프로팀인 일화 천마 감독을 맡아 K리그에서 돌풍을 일으켰고, 1993년부터 3년 연속 K리그 챔피언을 차지했다.
2001년 창립한 한국여자축구연맹의 초대 회장을 맡았고, 2002년 창단한 대구FC와 2013년 첫발을 내디딘 성남FC의 감독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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