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든 전기차도 충전 불편하면 '꽝'···몸값 높아지는 충전 인프라 [biz-플러스]
전기차 성장에 충전 편의성 확보도 중요
현대차, 경쟁사 테슬라 '슈퍼차저' 선택
전기차 잘 만들어도 충전 불편하면 '꽝'
충전 인프라 시장 2030년 584조 성장
에너지공급업, 소프트웨어 플랫폼 등
다양한 업체들 유기적으로 생태계 구축
돈 되는 시장, 대기업들 진출도 잇따라
“2024년 2분기부터 미국과 캐나다에서 판매되는 전기차 모델에 북미충전표준(NACS) 채택하겠다”
지난 5일(현지시간) 현대차(005380)·기아(000270)의 북미 법인 홈페이지에 깜짝 공지가 올라왔다. 지금까지 북미 판매 전기차 모델에 적용해왔던 충전방식인 ‘DC콤보(CCS)’가 아닌 테슬라 충전규격인 ‘북미충전표준(NCCS)’을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현대차·기아의 전기차는 2024년 4분기부터 캐나다는 2025년 1분기부터 테슬라의 전기차 충전시설인 ‘슈퍼차저’에서 적용된다.
현대차·기아가 오랜 고민 끝에 테슬라의 수퍼차저를 선택하기로 한 것은 전기차 시장에서 충전 인프라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소비자 편의와 직결된 충전 인프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전기차를 만들어도 팔리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세계적으로 전기차 성장률이 둔화하고 있는 터라 완성차 업체 입장에선 보편화된 충전 인프라를 확보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현재 미국·캐나다·멕시코 등에 설치된 슈퍼차저는 1만2000기에 달하고, 특히 미국은 전체 급속충전기 약 60%가 슈퍼차저다.
충전 인프라에 대한 관심은 전기차 시장이 커질 수록 높아지기 마련이다. 현대차·기아를 포함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북미 시장에서 어떤 충전 규격을 쓰느냐에 따라 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주가가 요동치는 시대가 왔다. 전기차 산업을 이야기할 때 지금까지는 ‘얼마나 멀리가는, 품질 좋은 전기차를 만드냐'에 초점을 맞췄다면, 앞으로는 ‘얼마나 빨리, 그리고 쉽게 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느냐’가 주요 화두가 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충전 인프라 시장의 규모는 얼마나 되고, 어떤 업체들이 충전 인프라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을까.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가 최근 발간한 ‘충전 인프라산업, 이제 충전할 시간’ 분석 보고서를 바탕으로 국내외 전기차 인프라 산업을 톺아봤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는 전기차 성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전기차가 많이 팔려 점유율이 올라가면 충전기도 그만큼 많이 깔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는 1000만대 이상 팔렸다. 2020년 4.1%에 불과했던 글로벌 전기차 침투율(내연기관을 포함한 전체 자동차 판매에서 전기차의 비중)은 2021년 8.3%, 2022년 13%로 상승했고, 올 상반기엔 14.3%까지 올라왔다.
최근 전기차 판매 성장율이 다소 둔화하고 있지만 대다수 국가들이 탄소중립 정책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전기차 확대 흐름은 지속될 전망이다.배터리 시장조사 업체 SNE리서치 분석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충전 인프라 시장은 2030년 4173억달러(액 584조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시장 규모가 465억달러(약 65조원)인 점을 고려하면 7년새 9배 이상 시장이 커진다는 얘기다.
국내 전기차 충전 시장의 경우 같은 기간 6000억원에서 6조3000억원으로 10배 성장할 전망이다. 지난해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17만1000대로 전년동기 대비 77.1% 증가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전기차 420만대를 보급을 목표로 전국에 전기차 충전기를 123만기 이상 설치할 계획이다. 2030년 목표치 대비 보급률을 보면 전기차는 11.8%, 전기차 충전기는 20.1%다. 숫자로만 보면 충전 인프라 보급 속도는 나쁘지 않다.
충전 인프라 산업은 다양한 업체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돼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크게 보면 충전기를 만드는 업체 외에도 전력을 공급해주는 에너지 공급업체, 충전 결제 시스템 등 소프트웨어를 관리하는 플랫폼 업체, 충전 인프라를 통합 운영하는 업체들로 나뉜다.
에너지 공급업체는 전기생산과 저장, 관리, 소매판매 등을 담당하는 충전 인프라의 핵심이다. 전기차 성장에 따라 전기 충전 인프라는 인구 밀집 지역 뿐만 아니라 외곽 지역도 커버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이게 가능하려면 전력 인프라도 넓은 범위를 커버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는 전기차의 보급 확대를 위한 초기 단계로 시간대별 단일 요금이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향후 전기 사용량 증가를 대비하기 위한 전력 수요 관리 정책으로 시간대별 차등 요금 적용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 차등 요금제 적용과 V2G 활용 확대로 에너지 공급업체의 역할은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
충전기 제조업체들은 충전기를 만들어 충전사업자(CPO)에 공급하는 역할을 맡는다. 충전기만 공급하는 업체도 있고, 설치와 유치보수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곳도 있다. 기술적 장벽이 낮아 업체들이 난립한 완속기 충전기와 달리 급속 충전기는 기술력을 갖춘 일부 업체를 중심으로 과점화될 가능성이 높다. 전기차 배터리가 대용량화되면서 빠르게 충전하기 위한 전기차 충전기 제조 기술도 고도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충전사업자(CPO)는 주유소를 떠올리면 된다. 충전기 설치 및 서비스 제공을 통해 전기차 이용자들에게 전력 판매로 수익을 창출한다. 단순 전력 판매 외에도 주차장, 마트, 백화점 등의 상업시설 등과 연계해 운영이 가능하며 광고 등을 통한 추가 수익 창출도 가능하다
소프트웨어 플랫폼 업체는 전기차 충전 결제 시스템 등 인프라 플랫폼을 운영해 수익을 얻는다. 플랫폼만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업체도 있고, CPO가 자체적으로 플랫폼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 이들의 공통적인 기능은 충전소 정보 제공와 결제 서비스 제공이다. 충전소의 위치, 충전기 종류, 사용 여부, 고장 여부 등등 이용자가 필요로 하는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해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CPO들과의 로밍을 통해 결제 플랫폼의 역할도 한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 시장의 성장성이 높다보니 국내에서도 대기업들이 앞다퉈 충전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 한국전기차충전서비스의 지분 50.1%를 확보하며 경영권을 확보했다. 지난해 말 기준 지분율을 63.53%(현대차 38.12%, 기아 25.41%)까지 늘렸다. 한국전기차충전서비스는 전기차 충전서비스인 ‘해피차저’를 운영하는 업체다. 현대차그룹은 통합 충전브랜드인 ‘이핏(E-pit)’과 현대차 전용 충전브랜드인 ‘하이차저(Hi-Charger)’를 운영하고 있다.
SK그룹도 전기차 충전 인프라 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SK는 전기차 충전기 제조에서 충전소 운영 및 서비스 제공까지 아우르는 밸류체인을 완성해 국내 전기차 충전 인프라 시장 내 가장 앞서있다는 평가다. SK는 2021년 전기차 충전기 제조업체 시그넷이브이를 인수한 후 사명을 SK시그넷을 바꾸고 충전사업에 진출했다. SK네트웍스는 전기차 급속 충전소 운영 업체인 에스에스차저를 인수한 후 SK일렉링크로 이름을 바꿨다. 완속 충전기 운영기업인 에버온에는 지분투자를 단행해 2대주주에 올랐다.
LG그룹도 충전 인프라 시장에 진출했다. LG전자(066570)는 지난해 전기차 충전기 제조업체인 애플망고를 인수, 하이비차저로 사명을 바꿨다. LG전자는 전기차 충전기 제조를 시작으로 전기차 충전 인프라 공략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LG유플러스(032640)도 카카오(035720)모빌리티와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LG유플러스는 충전 서비스 브랜드인 ‘볼트업’을 출시했고, 카카오모빌리티는 카카오내비 앱을 통해 전기차 충전소 위치 안내 및 결제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LG전자가 전기차 충전기를 만들고 LG유플러스-카카오모빌리티 합작사가 설치와 운영을 맡는 구조다.
이밖에 롯데그룹과 GS(078930)그룹도 전기차 충전 운영사업자로 나섰다. 롯데그룹은 롯데정보통신을 통해 전기차 충전소 운영업체인 중앙제어(현 EVSIS)를 인수한 후 전기차 충전소 운영 업체에서 충전기 제조 및 플랫폼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GS그룹은 GS칼텍스의 전국 주유소와 LPG 충전소 등에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해 전기차 충전 사업에 참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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