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태극마크의 피, 땀, 눈물"…하정우, '보스톤'의 달리기
[Dispatch=구민지기자] "태극 마크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두가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하정우도 확신이 없었다. 마라톤 영화에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았다. 실화물은 뻔하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심지어 역할은 '민족 영웅' 손기정.
한순간 마음이 바뀌었다.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출연을 결정했다. "태극 마크를 다는 여정은 굉장한 울림이 있었다. 드라마 주는 힘이 컸다"고 밝혔다.
한국인 최초, 금메달리스트, 태극 마크, 국가 대표, 마라톤 전설….
"솔직히 손기정 선생님 역할은 부담이 컸습니다. 제가 이런 장면을 재연해도 될 만한 사람인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묻고 또 물었다.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아가 마라토너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42.195km를 직접 뛰었다.
하정우의 고민과 몰입은 대성공이었다. 손기정 역을 탄탄한 연기력으로 표현했다. 아픈 역사 속, 불가능에 도전하는 국민 영웅을 그려냈다.
'디스패치'가 하정우의 이야기를 들었다.
◆ "태극마크의 의미"
'1947 보스톤'은 손기정, 제자 서윤복의 이야기다. 손기정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다. 1947년엔 감독으로 보스턴 기적을 이끈다.
하정우는 11년 전 빼앗긴 영광을 되찾으려는 손기정의 열정을 재연했다. 임시완(서윤복 역)과 애틋한 사제지간까지 표현했다. 묵직한 울림을 남겼다.
그는 "사실 마라톤 영화라고 했을 땐 크게 끌리지 않았다. 그러나 손기정, 서윤복의 이야기가 와닿았다. 단순한 스포츠 영화가 아니었다"며 선택 계기를 밝혔다.
"국가대표가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하면 얼마나 큰 책임감을 갖는지, 선수가 아닌 사람은 모르잖아요. 시나리오를 볼 때, 엄청나다고 느꼈습니다."
난민국의 아픔에 공감했다. "대회 출전 자체가 쉽지 않았다. 미군용기를 얻어 타고, 괌, 하와이, 샌프란시스코 등을 거치며 겨우 도착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교포들이 쌈짓돈을 꺼내서 선수들의 여비를 마련해 줬다. 김치 등 음식 반찬 등도 전달한다. 그 드라마가 정말 흥미로웠다"고 떠올렸다.
"대회에서 좋은 결실을 맺는다…뻔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죠. 막상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태극마크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 "42.195km, 달렸습니다"
"손기정 선생님은 모두가 아는 국민 영웅이시잖아요. 의식이 됐죠. 모든 신에 조심스럽게 임했어요. 감정이 크게 없는 장면도 뭔가를 머금고 했다고 할까요?"
하정우는 계속 파고들었다. "감독에게 '이렇게 해도 되나?' 매번 물었다. 장면을 찍으면 손기정 재단에 항상 확인했다. 더블 체크하면서 찍었다"고 회상했다.
'대한민국은 난민국이기 때문에, 태극기가 아닌 성조기를 달아야 한다'
극중 하정우는 여기에 굴복하지 않는다. 해외 언론을 모아 기자회견을 연다. 그는 "이 장면이 손기정 연기의 가장 중요한 지점이었다"고 짚었다.
그는 "연설신만 두 달간 연습했다. 대사를 할 때 아주 작은 주저함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거침없이 말이 쏟아져서 감정이 관객에게 닿길 원했다"고 전했다.
공감하기 위해 직접 뛰었다. "마라톤 풀코스(42.195km) 뛰는 느낌을 알아야 할 것 같았다. 호놀룰루 마라톤 대회에 출전했다. 6시간 3분이 걸렸다"고 알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전쟁터였어요. 몸싸움도 벌어지고, 화장실 문제도 있어요. '와 정말 이렇게까지 한다고?' 하며 놀랐죠. 풀코스가 쉬운 일이 아니구나 느꼈습니다."
◆ "제작·연출·출연, 계속 나아갈 것"
하정우는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시간이 정말 빠른 것 같다. 제게 '잘 버텨왔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팬들과도 만나고 싶다"고 미소 지었다.
신인 하정우에게 하고픈 말이 있을까.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것. '황해'가 기대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아 힘들었다. 하지만 추후 좋은 재평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전 사실 과거보다는 미래를 바라보는 스타일이거든요. 지금도 '어떤 작품을 선택할까' 고민하고 있고요."
그는 3번째 연출작 '로비' 촬영에 한창이다. 배우와 감독을 겸하는 것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감독을 거친 뒤 카메라 앞에 섰을 때 시너지가 있다는 것.
"감독을 경험하고 연기하면, 작품 전체를 보는 시야가 생겨요. 감독이 디렉션을 줄 때 사정을 이해하게 됐죠. 연출할 땐 배우들이 뭘 불편해하는지를 빠르게 알 수 있어요."
열정을 드러냈다. "제작이든 연출이든 출연이든 왕성하게 하고 싶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거 같다. '롤러코스터'(2013) 연출도 '로비'를 연출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웃었다.
"거창한 타이틀보다는 영화를 꾸준히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릴 때부터 영화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제가 가졌던 소망을 이뤄가는 단계예요."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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