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슈트는 없지만…마블과는 다른 'K-히어로'들의 매력
'힘쎈여자'·'무빙'·'경소문' 등…친근하고 인간적인 게 특징
(서울=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무전기를 타고 다급한 구조 요청이 들린다. 경찰차 여러 대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 달려가지만, 신고지는 턱없이 멀다. 복면을 쓴 히어로가 때마침 하늘을 가르고 등장한다. 초인적인 능력으로 악인을 단숨에 때려눕힌다.
숱한 히어로물에서 봐 온 클리셰다. 히어로들은 군살 하나 없어 보이는 몸에 딱 달라붙는 멋진 슈트를 입고 있고, 인간은 도저히 할 수 없는 것들을 해낸다. 자신의 존재와 위치에 대해 고뇌하지만, 결국은 대의를 위해 움직인다.
'한국형 히어로'들은 조금 다르다. 마장동 정육업계의 큰손 출신 60대 할머니 길중간('힘쎈여자 강남순'), 딸 교복 살 돈이 없어 한숨 쉬는 치킨집 사장 장주원('무빙'), 머리 희끗희끗한 국수집 명인 주방장 추매옥('경이로운 소문')은 모두 살며 한 번쯤은 스쳐 지나갔을 법한 '보통의 이웃들'이다.
친근하고, '사람 냄새'나는 K-히어로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 7일 첫 방송을 시작한 JTBC 새 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이하 '강남순')은 선천적으로 어마어마한 괴력을 타고난 3대 모녀 히어로가 주인공으로 나선다.
모녀 3대의 대장 격인 길중간(김해숙 분)은 왼쪽 어깨에 소 한 마리를, 오른쪽 어깨에 돼지 한 마리를 이고 마장동을 접수했다는 '천하무적 정육여인'으로 불린다. 벌 만큼 번 지금은 은퇴하고 람보르기니 오픈카를 끌고 다니지만, 묘하게 정이 가는 캐릭터다.
의식의 흐름대로 툭툭 내뱉는 말과 남다른 유머 감각, 구수한 플러팅(상대를 유혹하기 위해 하는 행동)까지. 힘이 세고 돈이 많지만, 거리감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김해숙은 제작발표회에서 "이제까지 히어로물 하면 주로 남의 나라, 젊은 남자들의 이야기였는데 우리 작품에서는 60대 할머니가 히어로"라며 "전무후무한 알인 것 같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3대 모녀가 강남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신종마약범죄의 실체를 파헤치는 과정을 그리지만, 사실 '강남순'은 가족애에 중심을 둔 작품이다.
연출을 맡은 김정식 감독은 "'힘쎈 여자 도봉순'과 다르게 이번에는 전 연령이 화합해 위기를 극복한다"며 "몽골에서 잃어버린 딸 강남순을 다시 찾게 되는 애틋한 가족애가 담기고, 20대, 중년, 노년의 사랑 이야기도 담았다"고 귀띔했다.
'한국형 슈퍼히어로물'을 표방했던 디즈니+ 화제작 '무빙'의 주인공들도 평범해 보이는 소시민이다.
치킨집 사장, 버스 기사, 동네 슈퍼 주인 등으로 일하며 초능력을 숨기고 살아가던 부모들은 자식을 지키기 위해 히어로가 되고, 자식들은 부모를 지키기 위해 잠재돼있던 능력을 깨운다.
작품 속 히어로들은 세상을 구하겠다는 대의보다는 소중한 내 가족을 위해 싸운다. 히어로라고 해서 모두 멋진 것만은 아니고, 히어로라고 해서 삶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여러 캐릭터를 통해 보여준다.
우리네 현실과 정서가 담긴 '무빙'은 해외에서도 신선한 매력으로 호평받았다.
미국의 연예 전문지 롤링스톤은 "'무빙'은 현재 TV 프로그램 중 최고의 슈퍼 히어로 시리즈다"라는 제목의 기사로 "지난 몇 년간 미국의 슈퍼히어로물이 만들어낸 그 어떤 스토리보다도 낫다"고 극찬했다.
롤링스톤은 '무빙'의 장점은 스토리텔링에 있다며 "이 작품은 철저히 한국적인 희생의 이야기와 영웅 서사가 층을 이루고 있다"고 평했다.
포브스도 "호소력 짙은 감정적 서사를 지닌 이야기와 깔끔한 액션이 계속해서 흥미를 자극한다"고 호평했다.
지난달 종영한 tvN '경이로운 소문2: 카운터 펀치'도 '생활밀착형 히어로'들이 주인공으로 나선 작품이다.
학창 시절 괴롭힘당했던 소문(조병규), '허당끼' 있는 형사 가모탁(유준상), 감정 표현이 서투른 도하나(김세정), 푸근한 매력으로 동료들을 치유하는 추매옥(염혜란) 등 각자 다른 초능력을 가진 '카운터'들은 멋진 슈트 대신 빨간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악귀를 물리친다.
'한국형 히어로'들의 등장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할리우드 히어로들처럼 초현실적인 액션을 보여주기에는 제작비의 한계가 명확했다. 그러나 최근 제작 기술이 진화하면서 웹툰과 웹소설 속에서 활약하던 히어로들이 드라마로도 넘어오는 추세다.
김교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엄청난 대의보다는 일상과 가족에 더 초점을 맞추고,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발견하고 지켜 나아가는 전개가 한국형 히어로물의 장르적 공식"며 "정의를 구현하며 지구 또는 우주를 지키는 마블 속 히어로들과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cou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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