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금강송 붉은 신음…이젠 역부족인가 [영상]

한겨레 2023. 10. 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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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 선 한반도 소나무

재선충병과 기후 스트레스 탓
울진·삼척·경주·안동 등 확산세
전체의 25%…민족과 함께한 역사
‘소나무 소멸’ 실질적 대책 필요
경북 울진군 소광리 숲에서 빨갛게 죽어가는 금강소나무.

소나무가 위기다. 병해충과 기후 스트레스로 소나무가 죽어가고 있다. 우선 소나무재선충병은 주요 산림 지역에서 대규모 죽음을 부르고 있다. 1988년 국내에 유입된 소나무재선충병은 이후 몇차례 고비를 겪으며 관리 가능한 통제가 기대되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2022년 이후 극심한 지역은 손을 쓰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특히 경북 포항·경주·안동과 경남 밀양 등은 대응 자체를 포기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확산세가 심각하다. 도로에서도 가을 단풍 든 활엽수처럼 죽어가는 소나무가 쉽게 관찰된다. 경북 포항시 호미곶면 대보리 고금산은 전체 산림의 70~80%가량을 죽은 소나무가 차지하고 있다. 잎이 사라지고 앙상한 가지와 줄기만 남은 소나무를 비롯해 잎이 붉게 타들어 죽어가는 소나무가 쉽게 보인다. 포항시나 경상북도는 방제를 거의 포기한 상황이다. 밀양과 안동도 상황은 거의 비슷하다. 대구시는 주택가나 도로에서 단풍 든 것 같은 감염목이 보인다. 남해안의 한려해상국립공원이 있는 경남 거제·통영도 섬 전체에 죽어가는 소나무가 즐비하다. 국립공원공단이나 경상남도는 방제에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소나무재선충병을 현장에서 예찰(관찰과 기록)하고 방제를 수행하는 일선 기관에서도 ‘이제 역부족’이라는 정서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2014년 전후 소나무재선충병이 확산될 때는 국회가 나서서 대책을 주문하며 ‘극심 지역’에 많은 행정력이 동원돼 일시적으로 통제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도지사나 시장·군수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이대로 가면 현재의 극심 지역은 소나무가 사라지는 현실을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

경북 봉화군 태백산에서 금강소나무가 집단 고사 중인 모습.

금강소나무, 재선충병 아닌데 죽어

병해충이 아닌 기후 스트레스로 죽어가는 소나무도 확인되고 있다. 국내 최고의 소나무 숲으로 알려진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의 금강소나무가 대표적인 사례다. 2023년 10월1일 현재, 경북 울진군 소광리, 강원 삼척시 풍곡리, 경북 봉화군 석포리·고선리 등을 중심으로 금강소나무 고사목이 계속 확인되고 있다. 이 지역은 조선시대부터 산림보호구역으로 지정돼 백두대간과 낙동정맥(백두대간에서 분리돼 부산까지 이어진 산맥) 등의 생태축이 이어지는 금강소나무 최대 서식지다. 남한에서 원시림에 가까운 아름드리 소나무가 가장 양호한 상태로 하늘로 뻗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소나무 중의 소나무인 금강소나무는 경복궁과 남대문 등 국보 창건에도 사용됐다. 지금도 울진·삼척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에는 지름 1m에 키가 20m에 이르는 금강소나무가 1만㏊ 넘는 드넓은 숲에 널리 분포하고 있다. 이런 숲에서 적게는 3~5그루, 많게는 10~30그루까지 금강소나무의 집단 고사가 계속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낙동정맥을 중심으로 울진군 소광리, 삼척시 풍곡리 그리고 백두대간 자락인 봉화군 대현리·고선리 등이 대표적이다. 올여름에도 아름드리 금강소나무가 깊은 숲속에서 빨갛게 타들면서 죽어갔다.

고사 현상은 2015년 울진에서 시작돼 삼척과 봉화로 번지고 있다. 2020년부터는 백두대간으로 확산하기 시작해 2023년에는 태백산국립공원과 설악산국립공원 등 백두대간 생태축 곳곳으로 이어졌다. 국립공원공단에서도 공원 구역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공원 구역 경계에서 예상보다 많은 금강소나무 집단 고사가 확인되고 있다. 금강소나무 고사목은 소나무재선충병에 감염되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금강소나무의 고사 원인을 기후위기로 인한 겨울철 건조와 가뭄으로 추정하는 이유다. 국립산림과학원과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등의 금강소나무 관련 연구진은 기후위기에 의한 수분 부족이나 토양층에서 고사의 원인을 추정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소나무는 병해충에 계속 시달리고 금강소나무는 기후 스트레스로 점점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국내 산림의 약 25%가 소나무류라는 점이다. 죽어가는 소나무가 숲에서 어떤 연쇄반응을 일으킬지 관찰과 대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환경 변화에 따라 새로운 식물 군락으로 변해가는 자연 천이 과정처럼 소나무의 쇠퇴가 숲의 자정 능력 범위 안에서 이뤄진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부작용과 재난의 양상을 보이며 사라질 수도 있다. 소나무가 죽어간 숲이 경사가 급하면 산사태 위험은 커진다. 고사목 지대에서 또 다른 생태계 교란이나 변화도 무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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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시 고금산에서 죽어가는 소나무 군락.

소나무 고사, 재난 위험 커져

소나무는 특히 재난에 취약하다. 산사태 발생도 소나무 숲에서 더 가능성이 크고 빈번하다. 산불도 소나무 숲이 관건이다. 소나무 숲이 아닌 활엽수림은 산불의 속도와 화력이 현격히 떨어진다. 이제는 소나무를 잘 키우는 것보다 소나무로 인한 재난 방지가 더 중요하다. 소나무 쇠퇴의 충격이 감소할 수 있도록 산지 재난 차원에서 검토가 필요하다.

정부의 산림 정책도 소나무 심기를 중단하고 쇠퇴하는 소나무를 적극적으로 살피고 충격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어떻게 소나무가 사라지는지 자세히 살피고 기록해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사라지는 소나무의 변화를 적극 대비하는 것이 핵심이다. 다만 백두대간, 국립공원, 산림보호구역 등 보호구역의 금강소나무의 종과 유전자를 영구히 보존하는 복원 노력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소나무는 애국가에도 언급되는 나무다. 역사적으로 소나무는 한민족과 함께 생존했다. 문화유산인 모든 건축물은 모두 소나무로 지어졌다. 지금도 소나무는 ‘송이’라는 알짜배기 경제적 혜택을 산촌 주민들에게 제공한다. 그렇지만 이제 소나무와의 이별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기후위기 적응 차원에서 대비해야 한다. 소나무의 쇠퇴는 우리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일이며, 본질은 기후위기에 의한 생물다양성 위기다. 이 길을 어떻게 헤쳐 가야 할지 무거운 질문이 던져진다.

글·사진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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