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여행자 전윤선 "잠긴 장애인 화장실 많아 옷에 싼 적도"
출퇴근 시간 피해서 여행…발판 고장 저상버스 때문에 4시간 대기하기도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휠체어 앞바퀴가 걸리면서 저만 전동차 안으로 떨어졌어요, 개구리처럼. 그 많은 사람 앞에서 내동댕이쳐진 것이 너무 창피해서 원래 가려던 곳까지 못 가고 도중에 내렸어요."
전윤선(56) 씨는 플랫폼이 전동차 바닥보다 낮은 지하철역에서 전동휠체어의 속도를 약간 높여서 열차에 진입하려고 시도했다가 겪은 일을 이렇게 회고했다.
높낮이 차가 커서 전동휠체어 바퀴가 걸렸고, 휠체어에 앉아 있던 전씨만 전동차 안쪽으로 내던져진 것이다. 다른 승객들의 도움으로 열차에 타기는 했지만, 당시의 충격과 수치심은 오래 남았다.
전씨는 지하철 전동차와 플랫폼 사이의 높이 차이를 줄여달라며 서울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장애인을 위한 국내 여행안내서인 '아름다운 우리나라 전국 무장애 여행지 39'(나무발전소) 출간을 계기로 지난 6일 저자인 전씨를 만나 휠체어 사용자로서 겪은 어려움과 그가 바라는 사회 변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씨는 온몸의 근육이 점차 없어지는 희소 질병인 '근위영양증'을 앓고 있다. 20대에 이미 걷는 게 쉽지 않았고 결국 보행 능력을 상실했다. 현재는 전동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하고 있다. 폐 근육까지 약해져 집에 머물 때는 산소호흡기를 착용한다.
38세 때인 2005년 '버킷 리스트'를 실현하고자 휠체어를 타고 인도 여행을 다녀왔다. 장애인을 평범한 이웃으로 대하는 인도 사회를 체험하고서 여행에 대한 자신감을 되찾았다.
2008년 휠체어 배낭여행 단체를 만들었다. 이 단체는 이후 비영리사단법인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로 조직 형태와 명칭이 변경됐고, 현재 전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무(無)장애 관광에 관한 인식을 개선하고 장애인 인권에 관한 인식을 새롭게 하기 위해 강사로도 활동한다. 여행 체험을 토대로 교통약자나 장애인을 위한 개선 방안을 당국에 제안하기도 한다.
이번에 펴낸 책에서는 휠체어를 타고 직접 가 본 여행지를 소개했다. 유튜브나 블로그에 여행지 정보가 넘치는 시대지만 장애인에 필요한 정보는 부족한 현실을 고려해 체험담을 바탕으로 상세히 기술했다.
전씨는 여행을 떠나는 휠체어 사용 장애인에게 복지 카드, 여권, 활동 지원 바우처 카드, 복용 약 여분, 휠체어 사양 정보, 휠체어 배터리 충전기 및 코드 길이 3m 이상의 멀티탭, 휠체어 소모품, 겉옷 여벌과 물티슈, 비닐봉지, 보조배터리와 고속 충전용 케이블, 슬라이드 시트, 길이 3m 이상의 샤워기 줄 등을 챙기라고 조언했다.
비장애인 독자도 휠체어 사용자가 겪는 일상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장애인이 여행하기 쉽지 않은 현실을 바꾸고 싶은 마음을 책에 담았다.
전씨는 "장애인들도 여행하고 싶은데 여행을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거나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부터 장애가 있어 수학여행이나 현장학습에서 배제당한 이들은 여행의 기술을 터득하지 못하고 어른이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어른이 된 후에 갑자기 장애가 생긴 이들은 장애인에게 맞는 여행법을 새로 배워야 하는데 그런 기회 역시 드물다고 전씨는 지적했다.
전씨는 장애물이 없는 '무장애'(Barrier Free) 환경을 조성하고 장애인의 물리적 접근권, 정보 접근권, 서비스 접근권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동권은 일종의 생존권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은 미흡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장애인의 여행을 이야기하는 것이 혹시라도 사치스럽다는 오해를 사지는 않을까.
이런 우려에 대해 전씨는 "이동은 삶의 시작과 같으며, 자유로운 여행은 자립 생활의 완성"이라고 반응했다.
"휠체어를 타기 전에는 간단히 하던 것도 휠체어를 타니 제한이 너무 많았어요. 내가 마음먹으면 훌쩍 떠날 수 있는 접근권이 보장되면 진정으로 자립적인 삶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의 이동할 권리, 접근권을 외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벌인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가 대표적이다. 사회적으로 주목 받았지만 격렬한 논쟁도 낳았다.
전씨는 출퇴근 시간을 피해서 여행한다. 지하철에서는 휠체어용 공간이 있는 칸을 골라서 탄다.
"금지사항은 아니지만, 제가 휠체어 공간이 없는 칸에 타면 중간에 어정쩡하게 머물러야 합니다. 타고 내리는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기도 하고, 저도 불편해요. 그래서 노약자석 근처에 휠체어 혹은 유아차 공간이 있는 칸에 탑니다."
전씨는 장애인의 이동권이나 접근권에 관해 핏대를 세우는 대신 모범 사례를 칭찬하는 방식으로 무장애 환경 조성을 권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복원된 덕수궁 석조전에 승강기가 설치된 것에 관해 "문화재에 승강기를 설치하는 것은 많은 논의가 필요한 일이다. 때로는 훼손을 막기 위해 경직된 보호도 필요하다"면서 "문화재 훼손 없이 접근성을 높였다는 것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책에서 소개했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런 방식에 관해 전씨는 "내가 전장연에 참여할 수는 없지만 내 방식대로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여행이라는 형식으로 세상 구석구석과 맞닥뜨리며 장애인 이동권, 접근권에 관해 몸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려면 고단한 과정을 피할 수 없다.
전씨가 수년 전 오이도 여행을 마치고 '장콜'이라고 불리는 장애인 콜택시가 오지 않아 저상버스를 기다릴 때의 일이다.
기다리던 번호의 버스 중 저상버스는 일부라서 그가 탈 수 있는 버스는 애초 몇 대 걸러 한 대씩만 오게 돼 있었다. 한참 기다린 끝에 저상버스가 왔는데 휠체어용 발판이 고장 나 있었다. 다음 저상버스를 기다렸는데 그 차 역시 발판 고장이었다. 이런 상황은 반복됐고 전씨는 저녁 무렵부터 4시간 넘게 기다렸다.
결국 그는 지방자치단체의 24시간 민원센터에 연락해 사정을 설명했고, 시의 연락을 받은 버스 회사가 발판이 고장 나지 않은 저상버스를 보내줘 귀가할 수 있었다.
휠체어 이용자가 저상버스를 타는 일은 쉽지 않다. 자주 오지도 않고 탑승을 거절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씨는 지적했다.
"제가 타려고 하면 버스 기사는 일단 발판을 내려줘야 하고, 원칙대로라면 탑승 완료 후 의자를 접어서 휠체어 공간을 확보한 뒤 안전벨트도 채워줘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귀찮아서 발판이 멀쩡한데도 고장 났다면서 그냥 가버리는 경우가 있어요."
휠체어 사용 장애인이 여행할 때 화장실 확보는 매우 중요하다.
근래에는 공원이나 공공기관 등에 대체로 장애인 화장실이 있다.
하지만 어렵게 찾은 장애인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해 낭패를 본 적도 있었다.
전씨는 "쓰지 못하게 잠가 놓는다든가 안 잠가놓았지만 (안에) 청소 도구가 너무 많아서 휠체어가 들어가 수 없다든가 하는 경우가 많다"며 "옷에 싼 적 많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의 입장을 배려하지 못한 숙박 시설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호텔 장애인용 객실에 설치된 유리 샤워 부스가 그중 하나다.
유리 부스가 설치돼 있으면 우선 휠체어의 움직임이 제한된다.
전씨는 샤워용 의자에 앉아서 씻던 중 의자 다리가 부러지면서 넘어지는 일이 있었다. 가까스로 유리에 부딪히는 상황을 피했지만, 만약 유리가 깨졌다면 크게 다쳤을 것이다.
전씨는 유리 샤워 부스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에 민원을 제기했다. 담당자는 '유리 칸막이를 설치하는 것에 대한 제재 규정이 없다'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전씨는 계속 문제 제기할 계획이다.
장애가 주는 불편도 힘들지만, 장애인을 향한 뒤틀린 시선이 전씨의 마음을 더 무겁게 한다. 그는 관광지의 식당이나 시설을 운영하는 이들이 장애인을 고객으로 인식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관광지를 찾아가는 장애인 여행자도 손님입니다. 하지만 돈을 내면서도 불쾌한 대우를 받거나 거절당하는 일이 많아요. 다양한 사람이 있고, 다양한 손님이 있다는 인식이 부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양한 손님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면 좋겠습니다."
sewonlee@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해를 품은 달' 배우 송재림 사망…"친구가 자택서 발견"(종합) | 연합뉴스
- [2보] '음주 뺑소니' 김호중 1심 징역 2년6개월…"무책임·죄질불량" | 연합뉴스
- '훼손 시신' 유기한 군 장교는 38세 양광준…경찰, 머그샷 공개 | 연합뉴스
- 코미디언 김병만 가정폭력으로 송치…검찰 "수사 막바지" | 연합뉴스
- 트럼프, '정부효율부' 수장에 머스크 발탁…"세이브 아메리카" | 연합뉴스
- "멋진 웃음 다시 볼 수 없다니"…송재림 사망에 추모 이어져 | 연합뉴스
- '선우은숙 친언니 강제추행 혐의' 유영재 첫 재판서 "혐의 부인" | 연합뉴스
- [이슈 정조준] '정숙한세일즈' 인기에 성인용품 판매 '쑥'…"폭죽 터지나요?" | 연합뉴스
- '김호중 소리길' 철거되나…김천시 "내부 논의 중" | 연합뉴스
- "계모 허락 없인 냉장고도 못 열고, 물도 못 마셨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