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N수학] 테렌스 타오가 말하는 영재가 행복해지는 법

이채린 기자 2023. 10. 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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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렌스 타오 교수. 수학동아 제공

‘현존하는 최고의 수학자’로 꼽히는 테렌스 타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 25세에 UCLA 최연소 교수로 임용된 그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각종 난제를 해결해 31세의 나이로 필즈상을 거머쥐었으며, 유명한 수학상은 죄다 휩쓴 인물이다.

지금까지 무려 30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했고 18권의 수학책을 썼다. 48세인 지금까지도 왕성하게 연구하면서도 시간을 쪼개 세계 곳곳을 오가며 수학의 가치를 알리는 대중 활동에도 적극적이라 존경을 한몸에 받는 세기의 수학자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전 세계에서 유명한 ‘수학 영재’였다. 2세 때 사칙연산, 7세엔 미적분에 통달했고, 11세에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에서 역사상 최연소로 메달을 땄다. 17세엔 석사학위를, 21세엔 박사학위를 받았다. 각종 언론의 꾸준한 관심을 받을 수밖에. 이런 유명세가 독이 될 수 있음에도 그는 차근차근 성공의 가도를 달려왔다.

수학자들이 말하는 테렌스 타오 교수는. 수학동아 제공

그런 그는 “당신의 삶을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내 인생은 영화로 만들 수 없다. 매우 평범했고, 또 행복했기 때문”이라고 싱긋 웃으며 답했다. 

똑똑한 아이가 행복하게 자라 성공했다. 우린 이 비결을 알아보려 한다.

○ 천재성이 빛났던 순간

타오 교수는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까. 그는 평생 천재적인 면모를 보여왔다. 학창 시절에는 수학적 이해가 빨랐던 ‘영특함’으로 수학자가 되어서는 분야를 넘나들며 수십 명의 공동연구자와 동시에 방대한 연구를 하고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내는 ‘독창성’으로 늘 주목 받았다.

4세 때 책가방을 들고 있는 타오 교수. 테렌스 타오 제공

타오 교수는 1975년 호주 남부에 위치한 도시 애들레이드에서 태어났다. 유치원에 다니며 초등학교 수학을 모두 이해했고 7세 땐 아벨군 같은 대학 수학 개념 일부까지 이해했다. 그는 명확한 규칙이 있는 게임을 좋아했으며 깨끗하고 추상적이며 단순하다는 이유로 숫자와 기호를 사랑했다. 

당시 타오 교수는 미국 영재교육 전문가가 연구했을 정도로 남달랐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아들이 지나치게 빨리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않도록 결정했다. 주변에선 “타오 정도는 초등학생 때 학사학위를 딸 수 있다”고 성화였지만 그의 아버지 빌리 타오는 먼저 가족, 지역 사회, 호주라는 환경에 아들이 먼저 완벽히 적응하길 바랐다. 

아들을 위해 열심히 영재교육을 공부하던 그는 일부 부모와 영재교육 전문가가 아동의 IQ나 성취도에 집착하는 것이 문제라고 분석했다. 또한 어린 시절 남들보다 빨리 학위를 받은 영재가 커서 큰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례도 목격했다. 그리고 대학생활에 아들이 적응하지 못할까 걱정스러웠다. 

아버지의 신념에 따라 타오 교수는 8세 때 초등학교를 다른 친구와 똑같이 다니면서 수학과 물리학만 고등학교에 가서 배우고, 9세 때도 일반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시에 호주 플린더스대학교에서 수학 강의만 들었다.

14세가 돼서야 집 근처에 있는 플린더스대에 공식적으로 입학했다. 그리고 플린더스대 측은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그와 가스 고드리 플린더스대 교수, 여러 연구자를 만나게 해 그가 학업을 잘 따라올 수 있도록 철저히 도왔다. 물론 남들보다 빠르게 학교에 진학한 건 맞지만 타오 교수의 재능에 비하면 서두르지 않는 편이었다. 

타오 교수의 부모는 2007년 호주 잡지 '더 오스트레일리안'의 인터뷰에서 “영재 아동을 둔 많은 부모는 자녀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어 학업 성취 시기를 앞당기기를 원한다”면서 “하지만 그보다 수평적 사고(상식기성 관념에 근거를 두지 않는 사고 방식)와 창의력을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천재란 계산 능력이 빠른 사람이 아닌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시도하고, 행동하고, 상상하는 고차원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들이 직접 개발한 알고리듬으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든다든지, 자신만의 생각을 담은 보고서를 쓰는 등 창의적인 활동을 할 때 크게 격려했다.

중국계 호주인인 타오 교수는 삼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네에서 삼형제의 우애가 매우 좋기로 유명했는데 모두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가족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는 부모의 신념 덕분이었다. 테렌스 타오 제공
한눈에 보는 타오 교수의 성장 과정. 수학동아 제공

타오 교수가 9세 때 가족 전체가 한 달 가까이 미국에서 지냈다. 그의 부모는 자녀들에게 필요한 교육 방법을 찾고 동기 부여를 해주기 위해서 이 같은 선택을 했다.

그때 여러 영재교육센터를 둘러보고 유명 수학자와 교육 전문가에게 직접 연락해 만나서 조언을 들었다. 필즈상 수상자인 찰스 페퍼먼 프린스턴대 교수와 엔리코 봄비에리 미국 고등연구소 명예 교수도 그중에 있었다. 

헝가리의 세계적인 수학자 에르되시 팔과도 인연이 있다. 에르되시가 지인을 만나기 위해 애들레이드를 찾았을 때 10세였던 타오 교수는 지인의 소개를 받아 에르되시와 만났다. 당시 에르되시는 집도 없이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수많은 사람들과 수학 이야기를 나눴는데, 수학 영재에겐 영재가 관심 있어 하는 분야의 수학 문제를 내주곤 했다. 

타오 교수는 “에르되시가 준 문제를 아직 풀지 못했다”면서 “대화 내용이 잘 기억나진 않지만, 굉장히 흥미로웠고 그가 나를 어린이가 아닌 동등한 수학자처럼 대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고 회상했다.

에르되시는 훗날 타오 교수가 프린스턴대 대학원에 입학할 때 ‘나는 그가 일류 수학자 어쩌면 정말 훌륭한 수학자로 성장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추천서를 써줬다.

1985년 에르되시 팔(왼쪽)과 수학 이야기를 나누는 타오 교수다. 타오 교수는 2015년 에르되시가 만든 ‘에르되시 불일치 추측’이 불가능함을 증명했다.테렌스 타오 제공

“저는 자라면서 수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수학자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타오 교수는 2015년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대학원 때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껏 수학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수학을 해왔지만 수학자가 하는 수학을 접하면서 그동안 해왔던 수학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학자의 수학은 수학 개념을 이해하고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닌 새로운 이론을 창조하고 여러 분야를 연결 짓는 등 일종의 예술과 같았다. 

그래서 그는 연구에 집중하지 못하고 방황했다. 밤마다 대학원 컴퓨터실을 찾아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근처 만화책 가게를 방문해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연구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이때 타오 교수를 기억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가 훗날 성공하게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박사과정 때 논문 3개를 썼지만, 모두 평범한 내용이었다.

그러다 마음을 다잡게 된 계기가 찾아왔다. 대학원에서 한 시험을 봤는데 준비를 거의 하지 않아 낮은 점수를 받았다. 시험이 끝난 뒤 지도 교수인 앨리아스 스타인 교수가 그를 따로 불러 “성적이 실망스럽다. 수학 지식을 확고히 갖고 있어야 한다”고 솔직히 이야기했다.

그때 타오 교수는 “스타인 교수의 조언이 내가 정말 듣고 싶었던 내용이었고 다시는 지도 교수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의욕이 생겼었다”고 2018년 자신의 블로그에 밝혔다. 

이후 타오 교수는 자신이 한때 수학 신동이었던 사실을 잊고 묵묵히 공부했다. 그렇게 2004년 ‘그린-타오 정리’를 발표하며 수학계에 의미 있는 결과를 처음 내게 되는데 박사 과정에 들어선 지 딱 13년 만이었다. 

2006 필즈상을 받을 당시의 테렌스 타오 교수.테렌스 타오 제공.

이후 조화해석학을 전공한 타오 교수는 전공 분야를 기반으로 여러 분야의 난제에 거침없이 도전했고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여러 분야를 연결하고 넘나들며 성과를 만들어냈는데 타오 교수의 부모님이 바라던 ‘진짜 천재’의 모습이었다.  조화해석학은 함수와 그 함수의 푸리에 변환의 성질을 파악하고 연구하는 학문이다.

또한 공동연구를 즐겨했던 그는 한 번에 한두 개의 공동연구를 하는 것도 힘든데 십여 개를 항상 동시에 진행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연구 성과를 쌓아 필즈상을 31세라는 어린 나이에 거머쥔다.

당시 필즈상을 수여하는 국제수학연맹은 “그는 여러 수학 분야에 영향을 미친 뛰어난 업적을 세운 최고의 문제 해결사다. 그는 엄청난 기술력,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초자연적인 독창성, 자신만의 관점을 결합해 성과를 냈다”고 평했다.

○ 천재가 예측하는 미래

타오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와 SNS에 글을 올리면 빠르게 기사화될 정도로 유명한 ‘인플루언서’다. 이곳에 새로운 논문과 연구에 관한 이야기뿐 아니라 통찰력을 주는 글을 자주 올리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의 미래를 구상하는 대통령과학기술자문위원회 연구그룹 의장으로 위촉됐을 정도로 정계, 학계, 과학기술계에서 그의 명성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가 꿈꾸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 첫 번째 미래 | 펜, 종이 이용한 수학 연구, AI로 완전히 바뀐다

2년 전 우연히 AI를 접한 그는 AI 연구에 푹 빠져 있다. 특히 수학자가 어떻게 AI 도구를 이용해 새로운 추측을 제시하고 증명할 수 있는지를 연구 중이다. 타오 교수는 “앞으로 수년 동안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펜, 종이를 이용해서 수학을 하겠지만 이후엔 AI가 수학 연구 방법을 완전히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AI가 내연기관, 전기, 컴퓨터, 인터넷 등과 같이 한 시대를 정의하는 기술의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타오 교수는 “AI가 완전히 수학자를 대체하기는 어렵지만 10년 뒤엔 ‘린(Lean)’과 함께 수학자의 연구를 활발히 도울 것”이라고 언급했다. 린은 지식의 고도화로 갈수록 검증이 어려워지고 있는 수학 논문 검증에 활용된다. 컴퓨터 언어인 코드로 증명 내용을 변환해 린에 입력하면 이 증명이 참인지 알려준다. 

린은 아직 대학 수준의 수학 증명만 이해하지만 많은 수학자의 노력으로 린에 입력된 논문과 정의, 정리가 많아지며 똑똑해지고 있다.

그는 “AI 성능이 좋아지면 수학자는 챗GPT 같은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아 증명을 만들어낸 뒤 린에 입력해 참이 되는 명제나 추측을 찾을 수 있고 코드로 만들어진 증명을 다시 생성형 AI를 이용해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꿔 논문을 쓰는 방식으로 연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통 수학자는 어떤 내용을 참이나 거짓이라 가정하고 증명을 시도하는데, 증명하지 못하거나 그 가정이 틀렸다는 사실을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타오 교수는 “현재 간단한 추측 하나를 증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더 높은 수준의 연구를 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AI의 도움을 받으면 인류는 광범위한 연구를 할 수 있게 된다”며 “그때 우리는 더 넓은 것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앞으로 분야를 넘나들며 서로 연결 짓는 연구가 당연한 세상이 온다는 뜻이다.

 생성형 AI와 린을 이용해 수학 연구 하는 원리. 수학동아 제공

● 두 번째 미래 | 공동연구가  더 당연해지는 세상 온다

그는 모든 학문에서 공동연구가 당연해지는 미래도 예측하고 있다. 학문의 양이 나날이 방대해지고 있어서 한 사람이 모든 학문을 다 이해할 수 없어서다. 또 한 분야에서 더 많은 진전을 이루기 위해 다른 분야나 다른 응용 분야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오 교수는 “우리는 함께 일하는 방법을 반드시 배워야 한다”면서 “대학에서 정신 건강, 괴롭힘에 대한 윤리 교육은 있지만, 올바른 협업 방법에 대한 교육이 거의 없는데 활발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타오 교수는 공동연구를 할 때 젊은 수학자가 자신보다 더 많은 주도권을 잡도록 하고도 있다.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후배들이 시도하게 하는 것이다. “후배들이 우리를 놀라게 하고 실제로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타오 교수는 이런 모든 생각을 블로그를 비롯한 여러 수학 커뮤니티, SNS 등 항상 올린다. 그 이유에 대해 “머릿속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간단히 답했다.

그는 반복하는 활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미 했던 일을 다시 하는 노력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많은 것을 머릿속에 담으려고 하면 정리가 되지 않아 시간을 낭비할 때가 있었다. 

“대학원 시절에 여러 강연을 듣다가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 적이 있는데 몇 개월 뒤에 그 아이디어가 아예 기억나지 않아서 정말 답답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블로그나 컴퓨터 메모장에 적어놓고 나중에 언제든지 검색해서 볼 수 있게 만드는 거예요. 기록해두면 마음 편안하게 머릿속에서 잊어버릴 수 있죠.”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이 주최한 강연 프로그램 'AI의 수학 이론'에 참가한 학자들의 모습이다. 타오 교수(왼쪽 7번째)를 비롯해 김재경 KAIST 교수, 김민형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박형주 아주대 교수도 보인다.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제공

"타오 교수는 사회에 이바지하고 싶어 하는 학자예요"

서울대 류경석 수리과학부 교수

"이번 타오 교수의 한국 일정을 제가 관리하며 그와 대화할 기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학자의 역할은 본인의 연구와 학술 활동을 통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과 변화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오 교수는 본인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이 세상에 가장 큰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하며 활동한다는 사실을 이번 대화를 통해 알게 돼, 매우 존경하게 됐습니다. 

한국 일정 이후에는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키이우와의 온라인 학회에 참가하기 위해 바로 폴란드 바르샤바로 가셨습니다. 사실 수학자 중에는 나이가 많이 들수록 수학 연구에 힘을 빼거나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힘들어하며 피하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타오 교수는 지금도 함께 수학을 탐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수학 연구가 수학자 집단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가치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을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타오 교수는 AI에 관심을 가지고 시간을 쓰는데요. 그러면 스스로 중요한 업적을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수학계 전체가 AI에 관심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그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가 큰 의미를 가진다고 여겨지기 때문이지요. 앞으로 그로 인해 AI가 얼마나 발전할지 기대됩니다. "

"감동을 줬던 지도 교수님이에요" 

KAIST 권순식 수리과학과 교수

"타오 교수로부터 ‘책만 보고 공부할 때보다 대화하며 배울 때 더 쉽게 이해된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어요. 그는 항상 제게 어떤 내용을 설명할 때 책에 적힌 내용과는 다른 방법으로 설명했어요. 자신의 방식대로 완벽히 이해한 다음에 그걸 제 수준에 맞춰 재구성해서 설명해줬죠. 

인성적으로도 존경할 부분이 많습니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항상 수업이 끝나면 칠판에 적힌 내용을 다 지우고 나갔어요. 직전에 수업한 사람이 칠판을 안 지우면 그다음 사람이 지워야 하잖아요. 한 번도 빼놓은 적이 없었어요.

또 타오 교수와 정기적으로 만나 연구 이야기를 나눌 때 한번은 한 시간 동안 설명해줬는데 제가 이해를 못 한 적이 있어요. 저도 다시 물어보기 민망해서 그냥 연구실을 나왔는데 타오 교수가 제 낌새를 알아차렸어요. 그날 저녁 10시에 설명한 내용을 5쪽으로 잘 요약해 보내왔어요. 그때 너무 감동했죠. 저도 이렇게 소통을 잘하는 교수가 되려고 지금도 노력 중입니다. 

타오 교수가 제 전공 분야뿐 아니라 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주 볼 기회는 없어요. 하지만 저는 늘 그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낍니다. 틈날 때마다 그의 블로그를 보며 지금 수학계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어디로 향해갈 것인지 등을 생각해 볼 수 있거든요. 그의 통찰력을 계속 배우며 저도 조금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 천재가 행복하려면?

똑똑해서 유명했던 아이가 자라 성공을 했고, 심지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똑똑한 아이가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타고난 재능이 아닌 노력에 박수를 보내주세요”

Q. 교수님은 초등학생 때 고등학교 수업을 들었을 만큼 나이보다 앞선 교육을 받았습니다.

A. "맞습니다. 학창 시절 대부분을 저보다 4, 5살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생활했어요. 나이마다 발달시켜야 할 사회성이 있는데 이런 환경에서는 쉽지 않지요. 전 비슷한 또래의 형제가 둘이나 있었고 동네에 같이 놀던 친구들이 있어서 그나마 괜찮았어요.

물론 나이에 맞는 사회적 경험을 하지 못했어요. 고등학교 때는 고등학생들끼리 하는 사교 모임이 있었는데 전 어리니까 참여하지 못해서 속상할 때가 많았어요. 그래서 프린스턴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때 학부생들과 많이 교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영화 동아리에도 가입했고, 만화방에서 카드 게임도 열심히 했어요."

Q. 다른 사람과 사회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한가요.

A "인간은 굉장히 사회적입니다. 소통해야 더 나아갈 수 있어요. 내가 무언가를 완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질문을 주고받거나 이야기를 하는 등의 소통을 하며 아니었다는 걸 아는 경우가 많아요. 대학에서 기초 수학을 강의할 때 제 수학적 지식에 빈틈이 얼마나 많은지 깨닫는답니다. 

그리고 소통하다 보면 혼자서 생각할 때보다 더 높은 수준에서 생각하고 새로운 접근을 떠올릴 수 있어요. 과거에 한 부등식과 관련해 증명하려고 노력한 적이 있어요. 특수한 경우에서 증명은 성공했지만 일반적인 경우에서 증명하지 못해 막혔었어요.

이에 대해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한 청중이 “먼저 일반적인 경우에서 반례를 찾아 보았나요?”라고 무심히 물었어요. 제가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접근이었어요. 강의 이후 새로운 방법으로 이 문제에 시도해 성공했어요.

그리고 함께 일하는 게 더 재밌잖아요. 혼자 작업하면 아무도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기 쉬워요. 여럿이 하면 적어도 한 명은 내 일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장할 수 있어요(웃음). "

Q. 교수님은 IMO에서 최연소로 메달을 땄어요. 경시대회에 참가하는 학생들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면 좋을까요.

A "지나치게 경쟁에 집중하지 않길 바라요. 경시대회는 스포츠에 가까워요. 수학 연구보다 호흡이 훨씬 짧아서 경시대회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다고 훗날 연구에서 좋은 결과를 내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일부 나라나 혹은 부모가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데 좋은 성적을 받으라고 강요합니다. 여기에 너무 지쳐서 다시는 수학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좋은 현상이 아니에요. 저는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분위기일 때 IMO에 나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너무 재밌었거든요."

테렌스 타오 교수. 수학동아 제공

● 타오 교수가 건네는 영재교육에 대한 4가지 조언

1. 특정 기준에 지나치게 집착해서는 안 돼요. 

IQ나 어떤 학위를 몇 년 만에 취득했는지 등의 기준은 장기적으로 볼 때 경력에서 결정적인 도움이 되지 않아요. 오히려 이 목표를 위해 과도하게 노력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겨 사회적, 정서적, 신체적, 지적, 학업적 발달을 고루 하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2.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내 일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일할 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힘입니다. 재능이 있는 일을 하라고 지나치게 강요하지 마세요. 스스로 진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할 기회를 주세요.

3. 타고난 재능이 아닌 노력과 성취에 대해 칭찬하세요. 

재능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안돼요. 무언가 배우려는 노력보다 똑똑해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쉬워요. 타고난 재능은 영원할 거라고 생각하죠. 이러한 믿음은 자신의 실수를 개선하려고 하지 않고, 실패에 쉽게 좌절해서 도전을 두려워하다가 자신감을 확 잃기 쉬워요. 

4. 목표를 유연하게 설정하세요. 

처음에는 A 분야에 재능이 있는 것처럼 보여도 나중에 B 분야가 더 즐겁거나 잘 맞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자신이 편안하게 느끼는 분야나 사람들에게 더 알려지지 않은 분야에서 일하는 것이, 경쟁이 치열한 분야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일 수 있어요.

“미래의 제 자신을 돕는다는 생각으로 일해요”

Q. 수학자가 되지 않았으면 어떤 일을 했을 것 같나요.

A "개발자나 금융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둘 다 저와 잘 맞지 않았을 것 같아요. 

수학에는 두 가지 장점이 있어서 좋아요. 하나는 언제나 문제를 바꿀 수 있다는 거예요. 다른 분야에서는 드문 일이죠. 기자님이 개발자라 제가 이 프로그램을 개발해달라고 부탁한다면 기자님은 다른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쉽게 말할 수 없어요.

의사라면 누군가 이 병을 치료해 달라고 물었는데 다른 병을 치료하고 싶다고 말할 수 없죠. 그건 불가능해요. 하지만 수학에서는 문제가 어렵다면 문제를 더 쉽게 만들어 다른 문제처럼 보이게 해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수학에서 실패에 드는 비용이 매우 저렴하다는 거예요. 의사가 수술 도중에 큰 실수를 하거나 엔지니어가 다리를 잘못 만들었을 때 큰 문제가 생기죠. 반면 수학에서는 문제를 깔끔하게 풀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아무도 다치지 않으니까요. 약간 당황스러울 수도 있지만 다른 방법을 시도하면 됩니다. 

문제의 절반을 풀 수 있다면 큰 진전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머지 절반을 풀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수학에서 실패는 거의 매번 일어나고 다시 도전하면 돼요. 컴퓨터 게임을 할 때 이기려면 여러 번 죽고 플레이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요."

Q. 반대로 수학자로서 성공해도 큰돈을 얻을 수 없다는 것 아닐까요.

A "그렇긴 하죠.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지 않다 보니 경쟁이 적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 초전도체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운데요. 실제로 초전도체가 만들어지면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엄청난 명성과 돈을 얻을 수도 있죠. 그러다 보니 누가 논문을 먼저 썼냐, 누가 먼저 개발했냐를 두고 경쟁이 치열하죠. 

하지만 수학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떤 논문이 나오더라도 대부분 20명 정도의 사람만 이 논문에 관심이 있을 겁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 논문을 아무리 빨리 내더라도 여기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나 손해는 그렇게 크지 않아서 경쟁이 적어 내 일에만 집중할 수 있어요."

Q. 당신의 삶을 영화로 만든다면 어떨 것 같아요.

A "푸하하하하(머리를 싸매며). 여러분이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전적으로 지원해주시는 부모님과 매 순간 좋은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또 인생 목표를 많이 달성했습니다.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있고 가족이 있잖아요.

굉장히 평범하고 행복한 삶입니다. 영화에서는 엄청난 갈등이 있고 그것이 해결되는 과정이 중요하잖아요. 관객들도 그걸 원하실 텐데 저는 그러한 것이 없어요. 저는 영화의 좋은 소재가 아니에요(웃음)."

Q. 교수님은 현재 어떤 일에 가장 열중하고 있나요.

A "경력에 따라 하는 일이 계속 바뀌고 있어요. 젊을 때는 종신 교수직을 얻어야 하고, 연구에 대한 압박이 많기 때문에 논문을 쓰고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데 집중했어요. 저녁 8시까지 퇴근하지 않고 계속 연구실에 있었죠.

지금도 계속 공동연구를 하고 있지만 대부분 멋진 문제를 발견하고 잘 풀 것 같은 사람에게 넘겨줍니다. 다른 연구자가 문제를 풀 때 도울 방법을 제안하지요. 

이번에도 서울대에서 류경석 교수와 만나 이야기하던 중, 그가 제게 질문을 하나 했습니다. 마침 시차 때문에 밤에 잠을 못 자고 있어서 그 문제에 대해 고민을 계속했고 이를 도울 방법을 떠올려 제안했습니다. 아직 이런 작업을 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

Q. 수학 대중 활동, 수학 위원회 활동, 학회 참가 등 다양한 일을 하는 비결이 있나요.

A "테트리스 게임을 하듯이 일정을 관리합니다. 시간을 쪼개서 쓰는 거죠. 30분 정도 걸릴 일이 있다고 생각하면 캘린더를 쫙 훑고 ‘아, 여기 작은 공간이 있네. 여기에 넣을 수 있어’라든지 ‘이 일은 하고는 싶은데 오늘은 시간이 없으니 다른 날 빈 공간에 채워 넣어야지’라고 하는 거죠. 

너무 피곤해서 깊은 생각을 할 수 없을 때는 이메일 확인 같은 크게 집중할 필요가 없는 것을 하죠. "

Q.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 목록)가 있나요.

A "아뇨. 저는 목표를 크게 정하는 편이 아니거든요. 저는 우연을 믿습니다. 눈앞에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다가 재밌는 게 생기면 방향을 바꿀 뿐이에요. AI가 좋은 예입니다. 2년 전만 해도 AI로 연구할 줄은 전혀 몰랐어요. 가족과 함께 여행을 최대한 많이 다니고 싶긴 하네요.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Q. 이미 놀랄만한 업적을 이뤘는데, AI 등 계속해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이유는 뭔가요.

A "저는 언제나 미래의 제 자신을 돕는다는 생각으로 일을 합니다. 언젠가 필요할 것 같은 일에 시간을 투자하도록 스스로에게 강요하는 거예요. AI도 이런 의미에서 미리 공부하고 있어요. 세상이 변할 때 미래의 제가 과거의 저에게 고마워할 거예요. 인간은 자신의 일이 언제 AI로 대체될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경력을 계속 재창조해야 하잖아요.

전 특별한 목표는 없습니다. 단지 기회가 왔을 때 무언가를 잘 해낼 수 있는 위치에 있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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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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