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인터뷰] '한국이 싫어서' 김우겸 "벅찼던 레드카펫…자신감 얻었죠"

조은애 기자 2023. 10. 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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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우겸이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VAST엔터테인먼트

[부산=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가을 햇살처럼 말갛게 쏟아지는 눈웃음이 매력인가 싶었더니 중저음의 목소리가 반전이다. 영화 '한국이 싫어서'(감독 장건재)의 선하고 의리 있는 지명(김우겸)의 얼굴이 겹쳐서였을까.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국제, BIFF)가 한창인 10월6일, 부산 해운대구 우동의 한 카페에서 스포츠한국과 만난 배우 김우겸은 유독 밝고 서글서글한 매력이 넘쳤다. 개막작 '한국이 싫어서'로 뜨거운 주목까지 받았으니 올해 부국제가 발굴한 최고의 별이라고 할 만하다. 김우겸은 "부모님께서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한 건 했다' 싶다. 앞으로 5년 정도는 편할 것 같다"며 유쾌하게 웃어보였다.

부국제 올해의 개막작 '한국이 싫어서'는 20대 후반의 계나(고아성)가 자신의 행복을 찾아서 어느 날 갑자기 직장과 가족, 남자친구를 뒤로하고 홀로 뉴질랜드로 떠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장강명 작가의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인 작품으로, '한여름의 판타지아'로 사랑받은 장건재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그는 김우겸을 캐스팅하기 위해 직접 준비한 책까지 선물하며 진심을 전했다.

"처음에 감독님이랑 한성대입구 성북천을 걸으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님의 책 '카메라 앞에서 연기한다는 것'도 주셨고요. 그때 제가 뭘 좋아하는지, 평소에 뭘 하는지 제 삶에 대해 물어보셨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편안한 모습이 흘러나왔는데 그게 지명이와 닮았다고 보신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지명이를 연기할 때 특별히 다른 인물을 만든다기보다 제 안에 있는 건강하고 정직한 면들을 끌어내는 데 집중했어요."

김우겸이 연기한 지명은 계나의 오랜 남자친구다. 중산층 가정에서 특별히 부족한 것 없이 사랑받으며 자랐고 대학 졸업 후 원하던 회사에도 취직한다. 긴 시간 함께 한 계나에게 한결같이 잘해주지만, 계나는 자꾸만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려 한다. 계나와의 미래를 설계했던 지명은 답답해진다.

"지명이는 한국이 좋은 사람이에요. '내 인생은 뭐지?' 묻기보다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해나가죠. 어떻게 보면 계나보다는 믿음이 강한 것 같기도 해요. 자기 자신이나 계나와의 관계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너랑 난 사랑하니까 곧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평범하게, 행복하게 살자'고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계나랑 안 맞는 부분도 있었겠지만, 저는 지명이가 계나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보이길 바랐어요. 계나가 없는 삶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사람처럼요."

자칫 계나의 주변 인물로만 머무를 수도 있었던 지명이 개성 뚜렷한 계나, 재인(주종혁) 사이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던 건 김우겸의 힘이다. 그는 귀엽고 든든한 연인일 때부터 삐걱대는 관계의 틈까지, 계나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함께 한 지명의 얼굴을 자신만의 색깔로 선명하게 그렸다. 특히 김우겸은 극 중 기자가 되는 지명의 직업적 배경을 위해 실제 기자에게 꼼꼼히 자문을 구하는 등 드러나지 않는 부분까지 착실히 채워 디테일을 더했다.

"캐릭터 밑에 나만 아는 비밀들이 많을수록 카메라 앞에서 자신감이 생겨요. 근데 그건 관객들도 느끼더라고요.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하는 지명이가 기자라면 어떤 삶을 사는지 궁금했어요. 그렇게 일찍 일어나는데 계나랑 밤늦게까지 술 마시면서 얘기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겠어요. 기자라는 직업군을 이해할수록 지명의 삶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폭이 넓어져서 더 깊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당연하지만 쉬운 일처럼 보이지 않길 바랐고요."

사진=부산국제영화제

'한국이 싫어서'는 어딘가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끊임없이 헤매는 청년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는다. 가장 큰 매력은 담백함이다. 공허한 응원이나 메시지를 강요하는 대신, 세상 모든 계나의 얼굴을 꾸밈없이 그릴뿐이다. 말하자면 '그게 자연스러운 거야'라고 다독여주는 듯한 세심함이 따뜻한 영화다. 김우겸 역시 "정답을 내리지 않고 그 마음을 들여다보는 영화"라며 작품에 애정을 드러냈다.

"군대에서 휴가 나왔을 때 혼자 기차 타고 부국제에 와서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봤어요. 이번에 '한국이 싫어서'로 기자회견을 했던 그 극장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제가 굉장한 위로를 받았던 것처럼, 누군가 이 영화를 보고 마음을 이해받았으면 좋겠어요. '한국이 싫어서'는 판단하지 않아요.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않고요, '네 마음이 이렇지?' 해주는 영화거든요. 미래가 잘 안 보여서 혼란스럽고 어려울 때 본다면 분명 좋은 에너지를 얻으실 거예요."

'한국이 싫어서'만 봐도 남다른 내공이 느껴지지만, 김우겸은 아주 어릴 때부터 배우를 꿈꾼 케이스는 아니다. 중학교 때 밴드부로 활동했을 만큼 기타, 보컬에 소질이 있었고 뮤지션이 되고 싶었다. 그러다 어머니의 권유로 연기를 시작했고 안양예고, 성균관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2014년 단편 '뿔'로 데뷔한 이후에는 '우리의 낮과 밤', '낫아웃', '소피의 세계', '경아의 딸', '세이레', '다음 소희',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등 알찬 작품들로 필모그래피를 채워가고 있다.

"집 근처에 안양예고가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넌 수학을 못 하니까 대학 가려면 연기를 해보는 게 어떻느냐'며 추천해 주셨어요.(웃음) 예고를 위해서 연기를 준비한 케이스였죠. 말 잘 듣는 'K-장남'이라 부모님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공부도, 연기도 열심히 했고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야 진지하게 연기를 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시작한 연기는 이제 김우겸의 삶이 됐다. 군 복무 중에도 '연기와 멀리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 하나로 찾았던 부국제, 올해는 관객이 아닌 개막작의 주연으로 레드카펫까지 밟았다. 차기작도 줄줄이 대기 중이다. 쏟아지는 러브콜 속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LTNS', '유쾌한 왕따'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간다.

"부국제 레드카펫을 걸어보니까 정말 벅차고 자신감도 확실히 생기더라고요. 제가 힘들었을 때 영화를 보면서 위로 받았던 것처럼 누군가에게도 제 작품이 위로가 됐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하고 싶은 연기가 많은데요, 멜로를 해보고 싶어요. 제가 시골 논두렁이랑 어울리는 스타일이거든요. 제 수더분하면서도 촌스러운 매력을 잘 녹여낸 캐릭터로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보고 싶어요."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eun@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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