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솔로? 홀딱 벗겨 광장에 세워라”…독신자 공개모욕 준 나라 [사색(史色)]
[사색-42] 칼바람이 부는 겨울날, 웬 남정네 여럿이 발가벗고 광장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여러 시민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지요. 치기 어린 청년들의 무모한 도전인가 싶었지만, 자의로 서 있지 않은 듯 보였습니다. 주변 시민들 역시 동정의 눈빛이 역력했지요. 물론 고소한 표정을 짓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고위 관료로 보이는 한 사내가 나타납니다. 벌거벗은 사내들을 가리키며, 시민들에게 외치지요. “이 자들은 더러운 독신자들이다, 조국을 지킬 군인을 낳지 못하는 놈들이란 뜻이다.”
독신자의 역사는 멸시와 차별의 기록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존중받지만, 과거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길고 긴 수난의 역사를 사색합니다. 명절 때 당한 비혼족들의 끔찍한 고통을 애도하기 위해서입니다. (만국의 독신자여, 단결하라!)
“겨울이 되면 행정관들은 독신자들을 벌거벗게 해서 광장을 돌게 하며 모욕을 줘야 한다. 그들이 ‘자신들은 벌을 받아도 싸다’는 노래를 부르게 해야 한다. 어린이도 그들을 욕보여도 된다.”
“다음에 내게 자리를 양보해줄 자식이 당신에게는 없지 않습니까.” 위대한 사령관이더라도 자식이 없으면 공개적인 핀잔을 들었던 것이었습니다. 신분이 다소 낮은 스파르타인들은 공개적으로 여자들에게 두들겨 맞기도 했었지요. 독신을 처벌하는 행동(Agamiou Graphe)라는 용어가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향연에는 “결혼이 법정 의무”라고 써있습니다. 선천적 동성애자들도 결혼해야 한다고 주장하지요. ‘법률’이라는 작품에서는 35세까지 결혼 안 한 시민들에게 벌금을 물려야 한다고 얘기합니다.(플라톤 자신조차도 결혼을 안 한 사실을 잊은 것이었을까요) 문학 작품만의 얘기는 아닙니다. 실제로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독신자들은 공적인 사안에 목소리를 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오른손과 결혼했다는 디오게네스도 이 중 하나였지요. 고대 그리스의 여성 혐오 문화도 독신 찬양의 불쏘시개가 되었지요. 사회적으로는 독신에 대한 차별이 있었지만, 동시에 철학적인 독신 찬양 움직임도 공존했던 셈입니다.
서기 9년에 제정된 ‘파피아 포파에아 법’(Lex Papia Poppaea)이었습니다. 플루타르코스는 “로마인들은 상속을 받기 위해 결혼하고 자식을 낳는다”고 비아냥대기도 했습니다.
독신이 유행처럼 퍼지면서 제국위기론까지 불거집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신분이 다른 사람끼리의 결혼도 허용하고, 독신자들을 차별한 배경입니다.
아우구스투스보다 앞선 지도자 줄리어스 카이사르는 ‘당근’으로 결혼을 장려했습니다. 식민지의 땅을 시민들에게 나눠주면서 기혼자들에게 우선권을 줬던 것이지요. 마치 우리나라가 출산 가정에 분양권을 우선 배정하듯이요.
사도 바울로가 고린도인에게 보낸 편지 중 한 대목입니다. 독신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체도 독신자였던 것이 큰 영향을 미쳤지요. 또 가톨릭에서 성직자들은 결혼을 안 하는 독신자여야 했습니다. 실제로 라틴어에서 독신을 뜻하는 Caelibatus에는 독신 caelebs와 천상의 삶 caelum이라는 뜻이 동시에 내포됐습니다.
동시에 결혼은 여전히 사회의 근간이었습니다. 기독교도 이를 잘 알고 있었지요.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인구가 재생산되고, 이는 경제력의 근원이라는 것을. 기독교에서는 혼외정사를 죄로 규정하고 결혼에 충실할 것을 장려한 이유이지요. 사도 바올로는 이렇게 정의합니다. ”정욕이 불타 혼외정사를 하느니, 혼인하는 것이 나으리라.“
이렇게 중세 유럽에서는 결혼은 너무나 당연한 의례로 자리 잡습니다. 장가나 시집을 못 간 사람들의 고통은 더할 나위 없었지요. 중세 프랑스에서는 성 카트린 축제가 열리곤 했습니다. 처녀를 상징하는 카트린에게 기도를 드리면서 결혼을 기원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중세의 어둠이 걷히고, 근대의 여명이 밝아오던 17세기. 개인의 인권에도 싹이 텄을 법하지만, 독신자의 상황은 정반대로 돌아갔습니다. 인구가 국부의 원천이라는 인식이 위정자들의 마음속에 똬리를 틀었기 때문입니다. 독신주의자들은 명확히 국부를 갉아먹는 쥐새끼 같은 존재가 되었던 것이었지요. 또 당시에는 국제적 성격의 전쟁이 많았던 상황도 인구 필요성이 커진 배경이 됐습니다.
유럽의 강대국인 프랑스에서도 인구 관리는 국가적 과제였습니다. 도시가 발달하면서 독신자가 더욱 늘어났기 때문이었지요. 도시의 자유와 일자리가 주는 분위기가 독신을 장려한 것이었습니다. 1765년 아베 피숑 사제가 낸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 전체 인구 2000만명 중 100만명이 독신자였습니다.
더 많은 ‘프랑스인’이 필요했던 식민지에서도 비슷한 채찍과 당근이 주어집니다. 캐나다가 배경입니다. 프랑스는 식민지 캐나다에 더 많은 프랑스인이 자리를 잡기를 원했습니다. 아들을 20세까지 장가보내지 못하거나, 딸을 16세까지 시집보내지 못하는 가장에게는 벌금을 부여했지요. 반면 제 때 자식들을 출가시키면 20리브르의 하사품을 받았습니다.
파시스트들이 가장 혐오하던 이들은 ‘독신자’였기 때문입니다. 우월한 민족의 씨앗이 퍼지는 것을 막는 존재들이라고 파시스트들은 생각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 시기 이탈리아 파시즘 리더 베니토 무솔리니가 독신세를 신설한 배경이었습니다. 그는 1927년 25~35세 미혼자에게 1~3파운드의 세금을 추가로 매겼지요.
채찍도 당근도 비혼 흐름을 막기엔 역부족입니다. 명절 날 결혼 잔소리는 어쩌면 상황을 더 악화시킬지도 모릅니다. 침묵은 때론 더 많은 진전을 이뤄냅니다.
ㅇ독신자들은 오랜 역사동안 차별과 멸시를 당했다.
ㅇ스파르타인들은 독신자들을 공개적으로 벗기고 모욕했다.고대 로마에서는 상속을 불허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압박했다.
ㅇ이성의 힘이 강조된 근대에서도 독신 차별은 만연했다.인구가 경제력의 상징인 걸 알아서였다.
ㅇ그래도, 사람들은 결혼 안했다. 명절 때 잔소리도 소용없다.
<참고문헌>
ㅇ장 클로드 블로뉴, 독신의 수난사, 이마고,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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