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 안세영은 천재가 아닙니다" 전율을 불러온 부모의 단언
한국 배드민턴 역사에 영광스러운 이름을 당당히 아로새긴 여왕 안세영(21·삼성생명). 29년 만에 아시안게임 여자 단체전과 단식 모두 금메달을 따내며 종목은 물론 한국 스포츠의 대세로 우뚝 섰다.
안세영은 7일 중국 항저우 빈장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에서 천위페이(중국)를 제압했다. 세트 스코어 2 대 1(21-18 17-21 21-8) 승리를 거뒀다.
화끈한 설욕전이다. 안세영은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당시 1회전에서 천위페이에 지면서 탈락의 아픔을 맛봤지만 5년이 지나 가장 마지막 경기에서 통쾌한 승리를 거뒀다.
특히 한국 선수로는 무려 29년 만의 아시안게임 여자 단식 금메달이다. 안세영은 1994년 히로시마 대회 방수현 이후 처음으로 여자 단식 우승자가 됐다. 지난 1일 이미 29년 만에 여자 단체전 우승을 이끈 안세영은 방수현 이후 처음으로 단식과 단체전 2관왕에 등극했다.
이런 안세영의 모습을 누구보다 뿌듯한 표정으로 바라본 이들이 있었다. 바로 안세영의 부모인 안정현 씨(54)와 이현희 씨(48)다. 단체전은 물론 개인전까지 관중석에서 목이 터져라 응원하며 힘을 실어줬다.
세계 랭킹 1위의 무적 행진을 벌이고 있지만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안세영은 개인전 8강전 이후 인터뷰에서 "무릎이 안 좋은 게 살짝 걱정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를 전해들은 어머니 이 씨는 "세영이가 아파도 특히 부모한테는 얘기를 잘 안 하고 혼자 하는 스타일"이라면서 "무릎이 아프다 했을 때는 정말 많이 안 좋은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 씨는 "아빠가 운동 선수 출신인데 세영이에게 어릴 때부터 '선수가 몸이 고장이 나는 상황을 겪어야 국가대표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했다"면서 "세영이도 '운동 선수는 갖고 가야 하는 통증'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심각하게 물어보면 말을 안 하니까 아빠가 지나가는 말처럼 '어때?' 하고 물으면 '아직 쓸 만해요. 나도 사람인데 정말 힘들면 못 하지' 얘기하더라"면서 "본인 생각에는 부담되는 상태이긴 한데 그거에 맞춰서 잘 대비했을 것"이라고 신뢰를 보냈다.
복싱 국가대표 출신 안 씨도 걱정하면서도 가슴을 졸이지는 않았다. 안 씨는 "예선까지는 테이핑을 안 했는데 8강전부터 오른쪽 무릎에 해서 안 좋긴 하구나 했다"면서 "그러나 딸의 스타일이면 이겨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세영이가 이기니까 나도 힘이 난다"면서 "천위페이도 결승에 오를 거 대비해서 노력했기 때문에 불안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편안했다"고 미소를 지었다.
다만 결승전 당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 씨는 "세영이가 쓰러지고 메디컬 타임을 불렀을 때 '이제 그만 기권하라'고 외치기도 했다"고 전했다. 소속팀 삼성생명 관계자는 "부모님이 거의 주저앉아 응원을 할 수 없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안세영은 부상까지 극복했고, 한국 배드민턴의 새 역사를 쓸 수 있었다. 경기 후 시상식과 취재진 인터뷰를 마친 딸을 향해 이 씨는 "미쳤어, 어떻게 그걸 버텨냈어"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안 씨는 "사실 내가 운동을 해서 아이들에게는 시키지 않으려고 했다"면서 "고생하는 거 보면 왜 시켰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운을 뗐다. 안 씨는 소프트테니스(정구)를 하다 복싱으로 전향해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도 출전했다.(안 씨는 "당시 메달을 못 땄는데 딸이 29년 만에 아버지의 한을 풀어줬다"고 너털웃음을 짓기도 했다.)
하지만 안 씨는 "목표 세우고 이루기 위해 열심히 하는 거 보면 다음 생에도 운동 선수를 해야 할 정도로 너무 열심히 노력한다"면서 "(운동 선수 출신인) 내 DNA가 있다고 하겠지만 천재보다는 노력형"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천재성 있는 선수들이 노력이 좀 약하다"면서 "그러나 세영이는 비율로 따지면 노력이 훨씬 더 많다"고 강조했다.
엄마도 마찬가지 의견이다. 이 씨는 "세영이가 다른 선수들처럼 활동적인 에너지와 DNA가 있는 것은 맞다"면서 "그러나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원래 타고 나서 잘 하는 건 아닌 거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항상 자신의 부족한 것을 채우려고 하는 스타일"이라면서 "이를 위해 노력할 수 있다는 게 세영이의 진짜 역량"이라고 짚었다.
재능의 천재가 아니라 노력의 천재라는 것이다. 이 씨는 "노력도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사실 하루도 안 쉬고 운동하겠다 한다고 해서 약속이 지켜지지 않거든요?"라고 반문하면서 "근데 세영이는 그걸 견뎌내는 마음을 갖고 있는데 그게 진정한 힘이 아닐까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자신과 약속을 지켜내려고 하고, 책임지려고 하고, 해보겠노라 마음 먹고, 정말 힘들더라도 참고 견뎌내는 힘이 메리트"라고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결국 딸이 가진 가진 최고의 재능은 부모의 말처럼 "정말 노력"이라는 것이다. (특히 딸의 성향에 대한 어머니 이 씨의 설명을 듣고 있으니 전율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말투는 조곤조곤 평안했지만 혹독했을 안세영의 성장과 훈련 과정을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안세영도 노력의 힘을 믿는다. 단체전 우승을 이끌었던 안세영은 개인전을 치르면서 체력에 대한 부담을 묻는 질문에 "많이 힘들긴 하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내가 이러려고 새벽(훈련)을 했나 싶기도 해서 괜찮다"고 씨익 웃었다. 새벽부터 오전, 오후, 야간까지 엄청난 훈련을 견뎌냈기에 안세영은 "누가 올라오든 내가 훈련한 대로 한다면 충분히 하고 싶은 플레이를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자신감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안 씨는 "엄마가 딸의 마음을 읽을 줄 아니까 멘토 역할을 한다"고 귀띔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어떨까. 안 씨는 "버팀목"이라면서 "세영이가 '아빠는 가만히만 (거기) 있어도 좋다'고 하더라"고 그야말로 아빠 미소를 지었다.
이 씨는 "세영이가 초등학교 때 아빠가 국가대표를 했다고 하니까 '열심히 해서 아빠보다 이력 한 줄 더 넣겠다. 올림픽 줄을 목표로 하겠노라' 했다"는 일화를 들려줬다. 이어 "본인이 목표를 세우고 달성해 가는 선수라 기특하고 자랑스럽다"고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부모가 있었기에 노력하는 천재가 태어날 수 있었다.
항저우=CBS노컷뉴스 임종률 기자 airj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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