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병원도 '빈익빈 부익부'… 의협, 대학병원 수도권 분원에 "지역의료 붕괴"

지용준 기자 2023. 10. 8.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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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S리포트-수도권만 찾는 환자들②]환자 흡수하는 빅5, 대학병원까지 가세… 중소병원·지역의료는 어쩌나

[편집자주]아파도 인근 지역에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지방 환자들은 서럽다. 첨단 치료시설도 없을 뿐더러 아픈 몸을 믿고 맡길 만한 의사도 부족하다. 수백만원의 숙박비와 몇 시간의 수고로움을 더한 '상경'(上京)을 감수하고서 수도권 대형병원에서 치료받기를 원하는 이유다. 지방 환자들의 상경과 수도권 병원의 현실을 살펴봤다.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쏠림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지난 9월25일 폐원으로 서울백병원(왼쪽) 앞이 텅 비어 있다. 같은날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접수처에 인파가 몰려있다./사진=지용준 기자
▶기사 게재 순서
①[르포] "급한 김에 고시원이라도"… '병원 찾아 삼만리' 신촌 한달 숙박에만 180만원
②서울 병원도 '빈익빈 부익부'… 의협, 대학병원 수도권 분원에 "지역의료 붕괴"
③칼 빼든 보건복지부, '병원 쏠림' 더는 없다

#. 지난 9월25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백병원 앞.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병원 앞 보도는 인파로 붐볐으나 병원으로 들어가는 이는 눈에 띄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이가 있었지만 환자는 아니었다. 기자의 곁을 지키던 서울백병원의 한 관계자는 "8월31일 폐원했으니 내년 2월까진 의료 의무기록 사본 등을 발급해야 하는 업무가 남았다"며 "현재 병원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인제학원 관계자들"이라고 귀띔했다. 같은 날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는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들로 넘쳐났다. 병원 내 진료 접수 창구는 대기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쏠림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의료 서비스나 기술 수준이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구축되면서 중소형 병원들은 맥을 못 추고 있다. 82년사를 자랑한 서울백병원은 환자가 끊기면서 폐업했다. 이른바 빅5(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성모병원)은 넘쳐나는 환자들로 몸살이다. 한국의 중심지, 서울에서 벌어지는 병원 양극화의 현주소다.


서울에서도 상급종합병원으로… 중소병원 폐원 속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집계 기준 2022년 1~3분기 시·도별 의료급여비용 심사실적 분석 결과 보험청구건수 6256만1785건 중 서울에서만 1141만4036건으로 나타났다. 서울은 전체 비중의 18.2%를 차지했다. 지방에서 서울로 상급종합병원 진료를 보러온 환자 수가 늘어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조명희 의원(국민의힘·비례대표)에 따르면 지난해 수도권 상급종합병원 22곳에서 진료받은 지방 거주 환자는 97만6628명이다. 2018년 87만9208명 대비 11.1%(9만7420명) 증가했다.

1941년 백인제외과병원으로 시작한 서울백병원은 환자 진료업무를 종료했다. 현재는 환자의 진료비 정산·반환 업무를 보고 있다. 서울백병원은 영상기록을 포함한 의무기록 사본 발급 업무를 2024년 2월29일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서울백병원의 폐업 이유는 경영난이다. 최근 20년 누적 적자가 1745억원에 이르자 인제학원은 지난 6월20일 서울백병원 폐원안을 의결했다. 중구 상주인구가 감소하고 인근에 서울대병원, 적십자병원, 강북삼성병원, 세란병원 등 대형 병원이 출현하면서 서울백병원의 경영은 지속해서 악화했다. 지상 주차공간이 11대에 불과할 정도로 시설이 뒤떨어졌으나 제반시설을 확대할 수 없어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것도 문제였다.

앞서 2021년 국내 최초 여성전문병원인 제일병원이 경영난으로 인해 문을 닫았다. 병원 업계 관계자는 "이대동대문병원이나 중앙대필동병원 등의 폐원 사례는 새 병원 건립을 위한 결정이었다"면서 "병원이 경영난으로 폐업한 최근 사례와 180도 다르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통계 기준 주요 병원의 의료수익이 증가세를 보였다. 그래픽은 2020~2021년 주요 병원 의료수익. /그래픽=강지호 기자


빅5 병원은 호황, 수도권 분원 준비도 '착착'


반면 대형병원은 호황을 맞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통계 기준 서울아산병원의 의료수익은 2020년 1조8681억원에서 2021년 2조1737억원으로 16.4% 증가했다. 같은 기간 다른 빅5 병원인 세브란스병원(1조5014억원→1조6611억원) 삼성서울병원(1조4362억원→1조6407억원) 서울대병원(1조1248억원→1조2647억원) 서울성모병원(8623억원→9747억원)도 증가세를 보인다.

이들 대형병원들은 분원 준비에 한창이다. 이미 11개 대형 병원이 2025~2027년 개원 목표로 관련 사업을 진행 중이다. 분원 사업이 완료될 경우 6600병상 규모의 새 병원이 들어서는 셈이다. 서울대병원은 경기 시흥 배곧신도시에 800병상 규모 분원을 준비하고 있다. 건립 예정지는 서울대 시흥캠퍼스다. 업계에선 내년 착공할 것으로 예측한다. 서울아산병원과 연세의료원도 인천 청라와 송도에 각각 800병상 이상 분원을 건립한다.

전문가들은 대학병원들의 수도권 분원으로 인해 지역, 나아가 중소병원들과의 의료격차가 심화할 것으로 예측한다. 특히 인력난을 겪는 지방 곳곳의 중소병원은 추가적인 인력 이탈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것이란 분석이다. 지난해 9월 기준 지방의료원 35곳의 결원율(결원 184명/정원 1266명) 2018년 7.6%에서 14.5%로 2배 이상 뛰었다. 결원율은 4년 새 최고 수준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수도권 대학병원의 경쟁적 분원 설립은 지역 내 환자는 물론 의료인력까지 무분별하게 흡수할 수 있다"며 "이로 인해 지역 주민의 일차적 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의원과 중소병원은 운영에 막대한 피해로 이어져 병원 폐업률을 높이는 등 지역의료와 의료전달체계를 순식간에 무너뜨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용준 기자 jyj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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