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급한 김에 고시원이라도"… '병원 찾아 삼만리' 신촌 한달 숙박에만 180만원

최영찬 기자 2023. 10. 8.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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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S리포트-수도권만 찾는 환자들①] 아픈 것도 서러운데… 서울서 치료받는 것도 힘들다

[편집자주]아파도 인근 지역에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지방 환자들은 서럽다. 첨단 치료시설도 없을 뿐더러 아픈 몸을 믿고 맡길 만한 의사도 부족하다. 수백만원의 숙박비와 몇 시간의 수고로움을 더한 '상경'(上京)을 감수하고서 수도권 대형병원에서 치료받기를 원하는 이유다. 지방 환자들의 상경과 수도권 병원의 현실을 살펴봤다.

지방에서 올라온 환자와 보호자들이 서울역 인근 정류장에서 서울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병원으로 향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있다. /사진=최영찬 기자
▶기사 게재 순서
①[르포] "급한 김에 고시원이라도"… '병원 찾아 삼만리' 신촌 한달 숙박에만 180만원
②서울 병원도 '빈익빈 부익부'… 의협, 대학병원 수도권 분원에 "지역의료 붕괴"
③칼 빼든 보건복지부, '병원 쏠림' 더는 없다

#. 지난 9월15일 오전 5시. 60대 A씨(남)는 몸을 일으켜 집을 나설 채비를 한다. 하필 비가 내리지만 몇달만의 약속이라 지체할 수 없다. 오전 6시. 부산에서 서울로 향하는 KTX에 몸을 싣는다. 그렇게 약 3시간 만에 서울역 3번 출구를 통해 나오면 사람들이 서 있는 줄을 뒤따라 선다.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병원을 향하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서다. 세브란스병원을 방문하고 부산에 내려가기 위해 다시 서울역으로 오면 오후 1시가 되지 않는데 서울에 체류하는 시간은 고작 3시간이 안 된다. A씨는 올 초부터 전립선암을 치료하기 위해 부산에서 서울로 통원하고 있다. 그는 "부산에서는 전립선암에 대해 방사선치료를 하는 곳이 없다고 해서 올 초부터 세브란스병원에 다니며 치료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2022년 발표한 제5차 국민보건의료실태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2020년 기준 지역 의료기관의 입원환자 중 해당 지역 환자의 구성비를 나타내는 지역환자구성비는 서울이 59.7%로 가장 낮았다. 이는 다른 지역에서 서울 소재 병원을 찾은 사람이 40%가 넘는다는 의미로, 지방에서 치료받기 어려운 질환을 서울 대형병원에서 치료받으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신촌 세브란스병원행 셔틀버스에 타기 위해 뛰는 보호자. /사진=최영찬 기자


중입자치료 받으려면 서울로


전립선암 환자들이 '꿈의 암 치료기'로 불리는 중입자치료기에서 암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세브란스병원에 있는 중입자치료센터가 지난 4월28일부터 전립선암 환자 치료를 시작해서다. 중입자치료는 무거운 탄소 입자를 빛 속도의 70%까지 가속해 암세포를 파괴하면서도 주변 장기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세브란스병원은 지난 9월19일 전립선암 2기 진단을 받고 지난 4월 중입자치료를 받은 60대 최모씨(남)의 치료 후 검사에서 암 조직이 완전히 제거됐다고 밝혔다.

지난 9월9일 서울역 앞 세브란스병원 셔틀버스 정거장에서 만난 60대 B씨(남)도 중입자치료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입자치료는 3주 동안 12회에 걸쳐 집중적으로 치료가 이뤄지기 때문에 지방 환자들은 사실상 숙박을 할 수밖에 없다. 아직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중입자치료를 받는 비용은 5000만~6000만원 정도 드는 데 환자는 숙박비까지 추가 부담하는 상황이다.B씨 보호자는 "처음 2주 동안은 호텔에서 생활했는데 하루에 20만원씩 들었다"면서 "마지막 1주는 대구에서 KTX를 타고 통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브란스병원 외에도 중입자치료기를 도입할 계획을 세운 대형병원은 있지만 모두 여의찮은 상황이어서 중입자치료를 받으려면 2027년까지 세브란스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울대병원은 부산 기장에 2027년 중입자치료기를 구축한 암센터를 구축할 목표를 세웠지만 착공조차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제주대병원이 중입자치료센터를 건립해 2026년부터 운영할 계획을 발표했으나 자금 확보 등의 문제로 인해 무산됐다. 서울아산병원도 2027년 인천경제자유구역 청라의료복합타운에 조성될 서울아산청라병원(가칭) 또는 서울 송파구 본원 중 한 곳에 중입자치료기를 도입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세브란스병원 중입자치료센터는 현재 전립선암에 대해서만 중입자치료를 하고 있는데 점차 적용 암종을 확대할 예정이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올 연말 회전형 치료기기가 도입이 되면 적용 암종을 확대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지방에서 상경한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서울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병원 인근에서 단기간 머물 수 있는 오피스텔 내부. /사진=최영찬 기자


세브란스병원 인근 방 구해보니


중입자치료뿐만 아니라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지방에서 상경하는 환자들이 많다. 지난 9월15일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서울역 앞 세브란스병원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서 있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30분 단위로 운행하는 셔틀버스였는데 용산역, 서울역을 거쳐 세브란스병원으로 향한다. 전라선 KTX를 타고 상경한 지방 환자와 보호자들을 싣고 경부선 KTX를 이용한 이들을 추가로 태우기 위해 서울역을 경유하기 때문에 좌석이 없어 셔틀버스에 미처 타지 못하고 다음 버스를 기다리거나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도 볼 수 있었다.

매번 통원을 하기 힘든 지방 환자는 세브란스병원 인근 신촌에 방을 구해 생활하는 경우도 많다. 이에 세브란스병원 인근에서 통원을 위해 1~2개월 단기간 생활할 수 있는 방을 한번 구해봤다.

신촌 인근에 있는 부동산중개인 C씨는 세브란스병원 맞은편에 있는 한 오피스텔을 소개해줬다. 그는 "병원을 이용하는 지방 환자의 경우 호텔생활을 하게 되면 교통수단을 추가로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병원 인근에서 걸어다닐 수 있는 방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C씨가 소개한 오피스텔은 냉장고, 세탁기, TV, 옷장 등이 모두 갖춰진 상태였다. 깔끔했지만 대여섯평 남짓한 공간으로 환자와 보호자 한명이 함께 살기에는 다소 좁은 느낌이었는데 한 달 월세는 160만원이었다. 환자들이 병원치료를 위해 단기간 계약을 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경우 임대인은 당초 시세보다 30만원 정도 높게 받는다고 C씨가 귀띔했다. 여기에 별도의 관리비가 15만원, 수도와 가스·전기 등 공과금까지 더하면 숙박에만 한달에 180만원가량 지출한다.

C씨는 "환자와 보호자들은 병원 치료를 받고 면역력이 약해지다 보니 일반 세입자와 달리 보다 청결하고 쾌적한 조건의 방을 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단기간 머물 수 있는 방을 구하기 쉽지는 않다"며 "임대인들은 보통 연 단위로 장기간 세를 놓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좀 더 저렴한 방을 찾기 위해 다른 부동산중개소를 찾아봤다. 다른 부동산중개인 D씨는 병원을 다니기 위해 단기로 머물 수 있는 방을 찾고 있다고 했더니 원하는 가격대가 얼마인지를 물었다. 앞서 160만원 정도 되는 방을 보고 왔다고 하자 그는 "오피스텔을 보고 온 것 같은데 오피스텔은 비싸다"면서 월 80만~90만원 정도의 원룸을 추천했다. 그러면서 "급하게 방을 찾아야 하는 환자들의 경우 하숙이나 고시텔을 찾는 게 빠르다"고 조언했다.

최영찬 기자 0chan11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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