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약국] ‘환각 이상행동 부작용’ 타미플루 소아청소년에게 정말 위험할까
초등학생인 A군은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 깜짝 놀랐다. 어제 자기가 이런저런 이야기나 행동을 했다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5살인 B양은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엄마, 내 머리카락이 날아가고 있어”라고 되뇌었다. 평소와 달리 눈빛이 흐릿해져 있었다.
중학생인 C양은 평소 교우관계도 좋고 공부도 열심히하던 아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아침, 1층에 추락한 채 발견됐다. 창문이 열려 있었다.
A군과 B양, C양은 모두 A형 독감 감염 판정을 받고 항바이러스제인 타미플루(성분명 오셀타미비르)를 복용하고 있었다.
위 이야기는 포털에 ‘타미플루 부작용’ 등을 검색하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례다.
매년 12~3월 겨울에만 유행하는 독감이 코로나19 대유행의 영향으로 유례 없이 1년 내내 유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거의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를 하면서 바이러스에 대한 집단면역이 사라져 지난 여름에도 이례적으로 독감이 돌았다고 보고 있다.
독감에는 확실한 치료제가 있다. 바로 ‘타미플루’다. 타미플루는 약 5일간 복용하면 독감 증상이 뚝 떨어질 정도로 효과가 좋다. 하지만 소아청소년이 복용하면 환각이나 환청, 이상행동, 심각하게는 자살을 유발한다는 이야기가 십수년 전부터 이슈가 돼왔다.
하지만 국내외 학계에서는 타미플루와 이런 증상들이 유의미한 관계가 없다고 본다. 오히려 약의 부작용이라기보다는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영향이라는 설명이다.
◇지금도 외래에서는 “주의 깊게 관찰하세요”... 과학적으로 인과관계 밝혀진 적 없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사람이나 조류 등 숙주의 세포를 감염시킨 뒤, 그 세포의 소기관을 이용해 새끼 바이러스를 증식한다. 세포 안에서 태어난 새끼 바이러스들은 숙주 세포에서 빠져나와 기침이나 재채기, 콧물 등으로 밖으로 나가 새로운 숙주를 감염시킨다. 타미플루는 새끼 바이러스들이 숙주 세포에서 빠져나오는 일을 막아 독감을 치료하는 원리다.
하지만 2007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10대 청소년이 타미플루를 먹고 추락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후 국내에서도 이 약을 먹은 청소년들이 환각, 환청을 호소하거나 추락사했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이후 2015년과 2016년, 2018년 비슷한 소식이 여럿 보도됐다.
이때문에 2023년인 지금도 병원에서 타미플루를 처방받으면 의사나 약사 모두 “소아청소년은 이상행동이 나타날 수 있으니 반드시 옆에서 지켜보라”거나 “혼자 오랫동안 두지 말라”는 권고를 한다.
그러나 학계는 지금까지 타미플루와 이런 증상 간에 과학적인 인과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때 10대 청소년 대상으로 타미플루 처방을 금지했던 일본 후생노동성은 2018년 5월 전문가단을 꾸려 타미플루와 이상행동을 조사했지만 뚜렷한 인과관계가 없다며 금지 해체했다.
그해 3월 미국 일리노이대 연구진은 2009~2013년 1~18세 소아청소년의 자살 사건 2만1407건 중 타미플루를 복용했던 251명과 관련해 조사했지만 유의미한 인과관계가 없었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가정의학회지 연보’에 발표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와 가천대 길병원 인공지능및빅데이터융합센터, 신경과 공동 연구진이 2009~2017년 독감에 감염된 335만2015명을 조사한 결과 역시 타미플루와 이상행동 간에 뚜렷한 인과관계가 없음을 밝혔다. 연구진은 타미플루를 처방받은 그룹(37.8%)이 자해자살 시도를 한 비율은 0.86%지만, 타미플루를 처방받지 않았던 그룹(62.2%)에서는 1.16%로 오히려 다소 높았다고 분석했다. 타미플루 복용이 자해자살 등 이상행동을 할 위험을 증가시키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연구 결과는 2020년 12월 국제학술지 ‘임상 감염병’에 실렸다.
◇ 범인은 타미플루가 아니라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가능성 높아
전문가들은 타미플루를 먹은 사람들 중 이상행동, 특히 자해자살 시도를 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이며 그 원인도 타미플루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독감으로 인한 영향이라고 보고 있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특히 10대 청소년이 독감에 걸리면 성인에 비해 고열을 많이 겪는다”며 “고열 상태에서 환각, 환청을 겪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타미플루와 이상행동 간 인과관계 연구에 참여했던 신동훈 가천대 길병원 신경과 교수는 “타미플루의 대표적인 부작용은 구토, 오심, 두통 등인데 다른 항바이러스제를 먹을 때도 늘상 나타날 수 있는 증상들”이라며 “청소년 자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우연히 타미플루를 복용 중이었던 것이 자극적인 뉴스로 퍼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타미플루는 (바이러스가 세포를 빠져나갈 때 사용하는 효소와) 3차원 구조적으로 딱 맞도록 설계해 만든 약물이기 때문에 독감을 치료하는 기능은 완벽에 가깝다”며 “극히 드문 부작용을 걱정해 독감에 걸리고도 타미플루를 일부러 먹지 않는다면 오히려 병을 키우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우주 교수는 “타미플루를 전세계에서 사용한 지 벌써 20년 이상이 지났고 수많은 사람이 복용했다”며 “이상행동이나 자해자살 사고 등을 유발한다는 뚜렷한 인과관계가 발견됐다면 이미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퇴출되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참고 자료
Annals of Family Medicine(2018) DOI: 10.1370/afm.2183
Clinical Infectious Diseases(2020) DOI: 10.1093/cid/ciaa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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