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탄소배출권 거래 활성화 위해 ETF 만든다는데… 증권가는 “시장 정상화 먼저”

권오은 기자 2023. 10. 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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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탄소배출권 가격 1년 새 반토막
탄소배출권 가격 벌어지면 수출 타격
정부, 거래 시장 활성화 방안 마련
“무당할당 비중 등 근본 대책도 필요”

국내 탄소배출권 가격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정부가 시장 활성화 대책을 내놓았다. 탄소배출권을 주식처럼 증권사를 통해 위탁거래하고, 시장 참여자를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다만 금융투자업계에선 정부의 목표 시기를 달성하기에 물리적 시간이 빠듯하고 효과도 미지수라고 평가했다. 무상할당 비중 등 국내 탄소배출권 거래제(ETS)의 근본 문제도 함께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윈 LNG 터미널 내에 이산화탄소 분리 공정을 위한 탄소 포집(Carbon Capture) 설비가 설치돼 있다. /SK E&S 제공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6일 기준 탄소배출권 2023년물(KAU23) 가격은 톤(t)당 1만1700원이다. 전년 동기 2만7750원에서 반토막 이상 떨어졌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배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탄소배출권 가격이 오름세인 것과 비교된다.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이 경직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탄소배출권은 기업이 일정 기간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의 양을 의미한다. 기업이 할당량보다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할 경우 다른 기업의 탄소배출권을 사야 한다. 한국은 2015년 탄소배출권거래제를 도입했다. 국내 배출권 거래량은 2015년 566만t에서 2021년 5472만t으로 증가하다 2022년 1200만t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기준 전체 배출 허용량 대비 거래량은 2%에 그쳤다.

정부는 최근 탄소배출권 시장 활성화 대책을 제시했다. 현재 배출권은 기업 간 현물 거래만 가능한데 이를 다양화하기로 했다. 대표적으로 2024년부터 증권사와 자산운용사가 탄소배출권 상장지수펀드(ETF)와 상장지수증권(ETN)을 출시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시장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정부 대책이 이제 막 첫발을 뗀 면도 있지만, 탄소배출권이 아직 상품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탄소배출권 거래가 현재 할당 기업 간 거래 비중이 90% 수준이어서 앞서 증권사로 유동성 공급자를 확대했을 때도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며 “기업 외 거래량이 적은 상황에서 탄소배출권 관련 상품이 나오기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기초지수를 추종하는 ETF와 ETN의 특성상 2024년 목표가 물리적으로 달성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국내 탄소배출권 관련 지수가 없어 연계 상품을 출시하려면 지수 개발부터 거래소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며 “1년 만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정부는 탄소배출권 시장 활성화 대책에 따라 2025년부터 탄소배출권 선물 시장도 도입하기로 했다. 국내에서는 현물 거래만 가능하지만, 유럽연합(EU)·영국·미국 등 주요국은 탄소배출권 선물 시장도 운영하고 있다. 선물 시장을 통해 유동성이 공급되고 다양한 투자 전략도 가능해지면 전체 탄소배출권 시장이 활성화하는 선순환을 그릴 수 있다고 정부는 기대한다.

다만 이월제한조치 완화나 무상할당 비중 축소 등 탄소배출권 관련 근본 대책이 나와야 시장도 살아날 수 있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린다. 정연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선물시장이 열리면 국내 배출권 거래량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겠지만, 시장 개방보다 이월제한조치 완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탄소배출권 거래제 대상 기업은 탄소배출권 순매도량의 2배까지만 이듬해로 이월할 수 있다. 이월 가능 물량이 제한되다 보니 탄소배출권 소멸을 막기 위해 매도가 과도해지고 가격이 급락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가 각 기업에 무상으로 배출권을 지급하는 무상할당 비중도 90%로 높은 편이다. EU가 탄소배출량이 많은 발전 부문에 무상할당을 하지 않는 등 업종별 차등을 두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만큼 국내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의 수요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탄소배출권 가격 문제는 앞으로 수출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시장에선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본격화하는 2026년을 그 시작점으로 보고 있다. 탄소국경세로도 불리는 CBAM은 EU 밖에서 생산한 제품을 수입할 때 탄소함유량 1t당 CBAM 인증서 1장을 구매하는 것이 골자다. EU는 다음 달부터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수소·전력 등 6개 업종에 CBAM을 적용하되, 2025년 12월까지 보고 의무만 있는 전환 기간을 설정했다. 2026년부터 CBAM 인증서 구매가 의무화된다.

CBAM 인증서 가격은 EU 탄소배출권거래제와 연동돼 움직인다. 다만 수출국에서 지불한 탄소 비용은 빼준다. EU와 한국의 탄소배출권 가격 차이가 벌어질수록 부담해야 할 비용이 늘어난다는 의미다. EU 탄소배출권 가격은 최근 내림세에도 t당 85유로(약 12만원) 수준이다. 현재 한국 탄소배출권과 10배 가까이 가격 차이가 난다.

김윤정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EU의 배출권 가격은 상승 곡선을 그리지만 한국은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며 “이 같은 현상은 CBAM이 시행된 뒤 수출 기업이 국내에서 지불한 탄소 비용의 인정 여부와도 연결되기 때문에 제도 개선이 필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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