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권총 겨누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법 바꾼 탈주범의 절규[뉴스속오늘]

하수민 기자 2023. 10. 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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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있으면 판검사도 살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돈 있으면 무죄 돈 없으면 유죄), 우리 법이 이렇다."

이들 중 한명이 '유전무죄 무전유죄' 말을 남긴 지강헌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치며 억울함을 호소했던 지강헌은 몇 시간 뒤 병원에서 수술도 받지 못한 채 사망했다.

잡범으로 시작해 탈주극에 이어 인질극까진 범죄자 지강헌의 죄는 여전하지만, 그가 외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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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기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1988년 10월 17일 인질극을 벌이던 탈옥수들이 검거된 내용을 담은 경향신문 보도 내용. /사진=네이버 옛날 신문 라이브러리


"돈이 있으면 판검사도 살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돈 있으면 무죄 돈 없으면 유죄), 우리 법이 이렇다."

1988년 10월 8일. 서울 영등포교도소에서 공주교도소로 이송되던 25명 중 12명이 교도관을 흉기로 찌르고 탈주해 서울 시내로 잠입했다. 이들 중 한명이 '유전무죄 무전유죄' 말을 남긴 지강헌이다.

지강헌은 흉악범이 아니라 잡범이었다. 하지만 사회보호법에 의한 보호감호제도 때문에 징역형을 마치고도 보호감호처분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과 560만 원 훔친 자신은 무려 감옥에서 17년을 살아야 하는데, 70여억 원을 횡령한 것으로 알려진 전두환의 막냇동생 전경환은 7년을 선고받고 그마저도 3년도 지나지 않아 풀려난 사실에 불만을 가지고 탈출한 것이다.

지강헌은 이런 불만을 갖고 교도관을 찌르고 탈주해 서울 시내를 전전하다 10월 15일부터 16일까지 서대문구 북가좌동에서 안광술, 강영일, 한의철 등 3명과 더불어 인질극을 벌이다 경찰이 쏜 총에 사살당했다.
인질극 현장에서 흘러나온 팝송…탈옥수 2명 자살 1명 사살
1988년 10월 17일 인질극을 벌이던 탈옥수들이 검거된 내용을 담은 동아일보 보도 내용. /사진=네이버 옛날 신문 라이브러리

지강헌 일당이 벌이던 인질극은 당시 TV를 통해 그대로 전국에 생중계됐다. 이들은 서울 서대문의 한 가정집에 침입해 일가족 6명을 인질로 잡아 대치극을 벌였다.

앞서 인질로 잡혀있던 고 모 씨가 10월 16일 오전 4시쯤에 몰래 탈출에 성공해 인근 파출소에 신고했고, 곧바로 경찰 병력 1000여 명이 집을 둘러쌌다. 그러면서 온갖 취재진도 함께 이 상황을 지켜보게 됐다.

그러던 와중 탈주범 강영일이 자수하겠다고 나서면서 탈옥수들 사이에 격투가 벌어졌고, 지강헌으로부터 권총을 빼앗은 안광술과 한의철은 스스로 끝내 목숨을 끊었다.

탈주를 주도했던 지강헌은 인질을 붙잡고 경찰과 대치를 이어 나갔고, 경찰에 팝그룹 비지스의 '홀리데이'까지 요청해 현장에는 감미로운 선율이 현장에 흘러나왔다.

이날 경찰과 기나긴 대치 끝에 지강헌은 깨진 유리창으로 자기 목을 찔러 자살 기도를 했다. 이를 지켜본 인질이 비명을 지르자 경찰특공대가 인질이 위험한 걸로 판단, 즉각 무방비 상태의 지강헌에게 다리와 옆구리에 총을 발사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치며 억울함을 호소했던 지강헌은 몇 시간 뒤 병원에서 수술도 받지 못한 채 사망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사회보호법의 단점이 폭로되기 시작했다. 이 사건 이후인 1989년에 사회보호법이 개정되며 보호감호 기간이 7년을 넘지 못하게 고정됐다.

그러나 이후에도 시민단체와 보호감호 피해자에 의해 '이중 처벌'이라는 지적을 받으며 2005년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잡범으로 시작해 탈주극에 이어 인질극까진 범죄자 지강헌의 죄는 여전하지만, 그가 외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 있다.

하수민 기자 breathe_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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