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진아 비젼디지텍 대표 “車 부품 국산화로 매출 400% 뛰었죠”
10년간 매출 25억→125억… “2030년 500억 목표”
안테나·와이어링 하네스 주력… 부품 국산화 성공
한국경제를 이끄는 중견·중소기업의 2·3세 경영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들은 선대로부터 배운 승부 근성과 해외 경험을 발판 삼아 글로벌 무대로 뻗어나간다. 1세대 기업인을 뛰어넘기 위해 2·3세가 어떤 고민을 하고 앞으로 무엇을 하려는지 들어본다. [편집자주]
“2019년 이사로 승진한 뒤 가장 신경 썼던 것이 연구·개발 분야였습니다. 이전에도 국책 연구과제는 조금씩 따왔는데 임원이 된 후 더욱더 관심을 가졌습니다. 총 10건가량을 진행하면서 기술력을 갖추게 됐고, 수입에 의존하던 부품을 국산화하는 성과도 냈습니다. 덕분에 매출은 지난 10년간 4배로 뛰었습니다.” (복진아 비젼디지텍 공동대표)
KG모빌리티와 대동을 주 고객사로 둔 비젼디지텍은 자동차 부품사 중 규모 대비 연구개발 실적이 좋은 기업으로 꼽힌다. 2016년 차량용 저주파수 안테나를 국산화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고, 2019년에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 참여해 스마트키 시스템에 들어가는 저주파수 안테나를 선보였다. 전기차용 와이어링하네스(배선뭉치) 설계 능력도 있다.
저주파수 안테나는 자동차 손잡이나 트렁크 등에 내장돼 차 문 개폐나 시동 등 제어 시스템 신호를 송·수신하는 역할을 한다. 자동차용 ‘스마트키 시스템’에 필요한 핵심 부품 중 하나로 꼽힌다. 와이어링하네스는 전기·전자 장치를 연결하는 전선을 묶은 것이다. 인체의 신경망처럼 자동차 내부를 결속하는 역할을 한다.
복 대표는 2013년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모친인 이정득 대표의 요청으로 비젼디지텍에 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6년간 창고관리부터 개발·구매관리까지 실무 경험을 쌓았고, 2019년 이사로 승진했다. 2021년부터 공동대표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복 대표는 입사 직후 회사의 낮은 생산성을 해결할 방법을 고민했다. 그는 “당시 회사는 농기계 기업인 대동을 신규 고객으로 확보하면서 발주량이 늘었지만, 원자재 비용을 줄이지 못해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면서 “고객과의 신뢰를 유지하면서 원가절감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고 말했다.
복 대표가 가장 먼저 추진한 것은 수급처 다변화였다. 비젼디지텍은 중국기업 한 곳만 거래처로 둔 탓에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들여오기 어려웠다. 복 대표는 직접 뛰며 거래처를 다수 확보했고, 고객사의 예상 발주 시점보다 4개월 앞서 수입원자재를 주문하는 시스템을 도입해 공급 안정성을 높였다.
복 대표는 “원자재를 미리 쌓아놓다 보니 지출이 늘어나 초반 1년 동안은 적자가 더 늘었다”면서 “하지만 발주 시스템이 자리를 잡으면서 2014년 말부터 흑자로 전환됐고, 원자재 수급도 안정화됐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연구개발에 관심을 가졌다. 고객사의 요청이 제각각인 자동차 부품 특성상 다품종 소량생산 능력을 갖춰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해외에서 열리는 다양한 전기차 박람회와 부품 박람회를 돌아다니면서 영감을 얻었고, 2016년부터는 국책 연구과제를 따왔다.
복 대표는 터치센서가 적용된 스마트키용 저주파 안테나를 개발한 것을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로 꼽았다. 이 안테나를 사용하면 손잡이에 있는 버튼을 누르지 않고 손을 가까이 대기만 해도 문이 열린다. 복 대표는 연구개발 과정을 주도하며 사전 조사부터 개발 방향 설정까지 직접 참여했다. 그는 “비슷한 제품을 보유한 기업이 3-4곳 있었지만, 비젼디지텍은 반응속도를 10~15% 줄였다”면서 “생산 효율성도 높여 비용을 10%가량 감축했다”고 말했다.
그간 중소기업 중에서는 연구개발에 투자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아 스마트키용 저주파 안테나는 주로 수입해서 썼다. 이 제품을 국내 기업이 만들면서 자동차 업체는 공급망이 안정화되는 효과가 생겼다. 과거에는 완성차 업체가 발주를 해도 1~2차 협력업체가 부품을 구하지 못해 납기를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비젼디지텍은 전기차용 부품도 개발하고 있다. 비젼디지텍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대동과 르노삼성, LG 등과 컨소시엄을 꾸려 전기차 관련 국책 연구를 진행했는데, 이 과정에 전기차용 와이어링하네스 설계 제조능력과 고전압 배선 생산 기술을 확보했다. 현재 대동의 자회사 대동모빌리티에서 추진하는 전기바이크 개발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공급망 안정화와 연구개발 실적에 힘입어 비젼디지텍은 고객사와 두터운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대동은 농기계에 들어가는 와이어링하네스의 60% 이상을 비젼디지텍에서 조달한다.
경영 실적은 대폭 개선됐다. 복 대표가 입사한 해인 2013년 25억원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125억4200만원으로 늘었다. 올해 매출은 154억원으로 예상된다. 입사 당시 20명이었던 직원 수는 65명으로 증가했다. 회사 성장세에 힘입어 올해 8월에는 대구시 달서구 성서에 기존 공장의 3배 규모로 새로운 공장을 지어 이전했다. 이곳에서는 연간 와이어링하네스 8만대, 저주파용 안테나 120만개 이상을 생산할 수 있다.
비젼디지텍은 2025년까지 매출액 250억원, 2030년 500억원 달성을 목표로 신규투자와 연구개발을 지속하고, 이를 발판삼아 코스닥 상장을 추진할 계획이다. 복 대표는 “미국 등 해외시장으로도 판로를 확대할 계획”이라면서 “기존 거래처에 한정되지 않고 더 좋은 실적을 만들어 기업 성장을 견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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