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파트에 ‘지붕 태양광’ 설치 안 하시죠? 이렇게 좋은데…
“아니 이 귀찮은 걸 뭐 하러 하려고 해요?”
아파트 관리소장인 김동신(56)씨가 2년 전인 2021년 아파트 옥상 태양광발전 시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주로 들은 말은 ‘하지 말라’였다. 태양광발전 설비가 이미 설치된 아파트의 관리소 반응이 그랬다. 태양광에 대한 잘못된 인식 탓이다. 주민들은 태양광 패널에서 전자파와 유해물질이 나오거나 반사광 피해를 볼 수 있다고 흔히 생각한다. 이런 섣부른 우려가 상당한 기회를 앗아간다.
가구당 월 1만3천원 전기료 절감 효과
공용부인 아파트 옥상에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하려면 소유주 70%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특히 옥상 바로 아래 최상층은 천장 누수나 설치 소음 우려로 민감하다. 김씨는 “결국 최종 설치 여부를 동대표로 구성된 입주자대표회의가 정하는데, 이런 문제 때문에 동대표들은 부러 나서지 않는다. 자연히 권한도 없는 관리소가 왜 구태여 이런 일을 하려 드느냐는 얘기를 듣게 된다”고 했다. 베란다 난간에 설치된 소규모 태양광 패널은 흔하지만, 아파트 옥상 태양광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다.
하지만 막상 설치하면 비용 절감 효과가 쏠쏠하다. 김씨 자신이 입주민이자 관리소장을 맡은 경기도 남양주시 ‘위스테이별내’는 소유주가 단일한 협동조합 주택이다. 일종의 임대아파트라, 설치와 관련한 의사결정에 어려움이 없었다. 이 아파트 7개 동에 설치된 태양광발전기는 2022년 한 해 약 30만㎾h의 전력을 생산했다. 지하주차장이나 승강기 등 공용부 전기료가 그만큼 절감됐는데, 공용부 사용량이 줄면서 한전과 계약한 요금제를 기존 ‘종합계약’에서 ‘단일계약’으로 바꿨다. 공용부 전기 사용량이 전체의 25% 아래이면 전용부는 싸고 공용부는 비싼 단일계약이 유리하다. 이 아파트도 태양광발전을 설치하기 직전 1년 동안 공용부 사용량이 33%였는데 이후 23%로 줄었다. 요금제를 바꾼 덕에 가구 전기료는 월평균 7500원씩(280㎾h 사용 기준) 절감됐다. 여기에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력을 전기료로 환산한 것과 합하면 가구당 월 1만3천원가량 전기료를 아꼈다는 계산이 나온다.
설치비 부담도 크지 않았다. 태양광발전기 설치비는 전부 3억450만원이었는데, 이 중 3분의 2가량인 1억9509만원을 한국에너지관리공단이 지원했다. 나머지 자부담액은 5년 동안 분납하는 조건이다. 월 납부액은 절감액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국내 핵발전소나 석탄발전소 반경 5㎞ 이내 주민들이 받는 전기요금 보조액이 월 7350~1만7950원인 것을 고려하면, 옥상에 태양광발전기를 올리는 것만으로 주민들은 그에 못지않은 비용 절감 효과를 누린 셈이다. 이 아파트는 2022년 11월 한국에너지공단이 주관하는 제4회 대한민국 솔라리그 공모전에서 지방정부협의회장상을 받았다.
태양광 설치 보조금, 효과적 물가 관리 수단
재생에너지의 핵심인 태양은 지구 만물의 근원이다. 해마다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에너지는 3850제타줄(ZJ·제타는 10의 21승이며, 줄은 에너지 단위)로, 지구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에너지의 3천 배에 달한다. 화석연료가 지역적으로 편중되고 언젠가 고갈되는 것과 달리, 태양에너지는 지구상 어느 곳에서나 무한하다. 풍력이나 수력, 바이오매스 같은 다른 재생에너지들도 근원은 태양이다.
2022년 시작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전기료 인상과, 체감할 만큼 심각해진 기후위기로 태양에너지는 새롭게 주목받는다. 2022년부터 주차장 태양광 의무화 캠페인을 벌여온 환경운동연합은 2023년 9·23 기후정의행진의 6대 요구로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중단’ ‘핵오염수 투기 중단’ 등과 함께 시대적 과제인 재생에너지, 특히 태양광의 과감한 확대를 내걸었다. 당장 가능한 유휴부지 활용을 위해 법·제도 정비를 서두르고 예산을 투입하자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특히 심각한 기후위기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최근 발간한 6차 평가보고서는, 산업화 이전보다 지구 평균온도가 1.5도 오르는 상황을 불과 17년 뒤인 2040년 이전에 맞을 것으로 전망했다. 인류가 지금 같은 탄소배출량을 유지한다는 전제에서다. 1.5도는 기후위기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 ‘기후재앙’으로 치닫는 시작점으로 알려졌다. 1.5도 상승까지 남은 탄소의 누적 배출량은 400~650GT(기가톤)으로, 전세계 연간 배출량을 고려하면 남은 시간이 고작 3년뿐이다. 세계기상기구(WMO)도 2023년 5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1.5도 마지노선이 향후 5년 내 뚫릴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전기요금이 급격히 오른 상황도 태양광에 대한 관심을 촉발했다. 에너지정책을 주로 다루는 민간연구단체 넥스트의 김승완 대표(충남대 교수)는 최근 언론 기고글에서 “전기요금 상승으로 생애 평균 발전단가가 ㎾h당 160원 정도인 지붕형 태양광과 130.5~166.6원인(2022년 11월 기준) 일반 건물과 공장 전기요금의 골든크로스가 시작됐다”며 “경제적 요소만 따지면 지붕형 태양광을 설치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해 보이는 시대”라고 했다. 그러면서 “에너지요금 상승으로 정치적 압박에 직면한 현 정부 입장에서도 연이은 전기요금 상승에 대응해 자영업자나 중소·중견 제조기업의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지붕형 태양광 설치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이 하나의 효과적인 물가 관리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세계적으로도 태양광은 대세다. 2023년 세계 태양광 투자 규모는 사상 처음으로 석유보다 많아진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3년 6월 발간한 연례 투자 보고서에서 2023년 청정에너지 기술에 한 해 전보다 24% 늘어난 2257조원(1조7천억달러) 이상 투자될 것으로 내다봤는데, 이 중 태양광발전 투자가 5분의 1가량인 504조원(3800억달러)이었다. 사상 처음으로 석유 생산 투자 규모(491조원·3700억달러)를 넘어선다. 10년 전인 2013년엔 석유가 844조원(6360억달러)인 반면, 태양광이 168조원(1270억달러)에 불과했다.
설치 시간 빠르고 별도 부지도 필요 없어
무엇보다 태양광은 다른 에너지들과 견줘 여러 장점이 있다. 우선 설치 기간이 짧다. 기후운동단체인 기후솔루션이 전력거래소 자료(2023년 1분기 발전소 건설사업 추진현황)로 계산한 결과, 최초 계획부터 준공까지 걸리는 기간은 태양광이 5년4개월(20㎿ 이상 대형)로 가장 짧았다. 같은 재생에너지인 육상풍력과 해상풍력은 각각 11년8개월, 10년8개월로 두 배 이상 걸렸고 화석에너지인 가스와 석탄은 각각 9년4개월, 11년9개월 소요됐다. 원자력은 가장 긴 17년4개월이 있어야 발전소 준공이 가능했다. 태양광은 중소 규모로 지을 경우 더 기간이 빨라져서 1㎿는 9~10개월, 100㎾ 이하는 8개월 만에 설치가 가능했다.
또한 태양광은 별도 부지가 필요 없다. 아파트 옥상 같은 비어 있는 지붕을 활용해도 충분하다. 민간연구단체 넥스트가 2023년 초 국가 지리정보 시스템과 일사량 정보를 활용해 지붕형 태양광의 잠재량을 추산한 결과, 국내 모든 일반 건물과 산업단지 건물 지붕에 각각 35GW, 7GW의 태양광발전기 설치가 가능했다. 옥상 면적 200㎡ 이하인 건물을 제외하고 가용 면적 4분의 1만 따진 보수적 추산이었다. 1GW는 핵발전소 1기 용량으로, 합하면 지붕형 태양광으로만 핵발전소 42기 용량이 된다.
유일하게 태양광 보급 수치 줄었다
이런 추산은 여럿이다. 한국환경연구원은 농지를 그대로 쓰면서 전력을 생산하는 영농형 태양광을 이용하면 국내 농지 20%만 활용해도 229GW의 설비를 갖출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또 국내 모든 도로·철도 유휴부지를 활용하면 5.11GW(녹색연합)를 확보할 수 있고, 철도 궤도 사이마다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면 전체 철도 전력 소비량의 4분의 1을 충당할 수 있다는 분석(넥스트)도 있다. 독일과 스위스가 이미 200㎞ 구간에 이런 시설을 설치했다. 프랑스는 2022년 말 국내 모든 대형 주차장에 태양광발전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한국도 수도권에 이를 적용하면 국내 모든 전기차 수요의 1.4배를 생산할 수 있다는 계산(환경운동연합)도 나와 있다. 어떤 면에서 에너지 전환은 인식과 의지의 문제일 뿐이다.
주요국들은 앞다퉈 태양광 확산에 진력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 자료(태양광산업 동향)를 보면, 세계 각국은 연초 전망했던 2023년 태양광 신규 보급 실적을 상향 조정했다. 중국은 130GW를 155GW로, 미국은 30GW를 35GW로, 독일은 9GW를 10GW로 상향했다. 전세계 전망치도 320GW에서 340GW로 조정됐다. 자료에 언급된 10개국 가운데 숫자가 줄어든 것은 한국(3→2.5GW)이 유일하다.
기후운동단체 플랜1.5의 권경락 활동가는 “국내에선 수년 전부터 가짜뉴스로 인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하면서 태양광에 대해 이격거리 등 다양한 입지 규제가 시행됐고, 일부 기초지자체는 도로 이격거리를 무려 1㎞로 규제해 주차장 태양광 설치를 아예 불가능하게 해놨다”며 “재생에너지 사업이 적극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법·제도적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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