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아시아에서도 밀려난 한국 레슬링, 육성 없인 해답 없다
57년 만에 '노골드-노실버'…동메달 2개로 대회 마감
(항저우=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레슬링을 배우려는 아이들이 없어요. 이러다간 올림픽은커녕 아시안게임에서도 메달을 못 따는 날이 올 겁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직후인 2019년, 한 체육고교의 레슬링부 지도자가 한 말이다.
이 지도자는 "학생들을 설득해도 소용없다"라며 "모두 훈련이 힘들고 수입도 변변치 않은 레슬링을 꺼린다"고 말했다.
레슬링 유망주 가뭄 현상은 수년 전부터 심각했다.
현장 지도자들은 국내 유망주의 씨가 마르자 귀화 선수, 북한이탈주민을 중심으로 스카우트 작업을 펼치기도 했다.
한국 레슬링은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지만, 어른들은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레슬링계는 지독한 파벌 싸움을 펼쳤고,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했다.
2021년에 열린 대한레슬링협회 회장 선거에선 법적 싸움까지 번지는 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태가 이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한국 레슬링은 말라갔고, 대표팀은 세대교체에 실패했다.
30대 중반의 김현우, 류한수(이상 삼성생명)를 넘을 20대 젊은 선수들은 나오지 않았다.
2021년에 열린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노메달' 충격을 받은 뒤에도 한국 레슬링계는 각성하지 못했다.
세계 변방으로 밀려난 한국은 끝없이 추락했다.
올해 4월에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남자 그레코로만형 60㎏급 정한재(수원시청), 여자 자유형 50㎏급 천미란(삼성생명)이 각각 동메달을 획득하는 데 그쳤다.
아무도 결승조차 오르지 못한 최악의 성적을 내자 레슬링계엔 비로소 발등에 불이 붙은 듯했다.
레슬링계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하는 '대참사' 수모를 겪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돌았다.
그제야 레슬링계는 땜질 처방에 나섰다.
대한레슬링협회는 2024 파리 올림픽 출전 티켓이 체급별로 5장씩 걸린 세계선수권대회를 사실상 포기하고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올인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세계선수권대회 직후에 열리자 1진 선수들의 체력 안배를 위해 세계선수권대회엔 대표팀 2진을 내보냈고, 한국은 세계선수권대회에 걸린 올림픽 티켓을 단 한 장도 획득하지 못했다.
급한 레슬링협회는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에게 3천만원의 포상금을 내거는 등 당근책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 걸린 18개의 금메달 중 단 한 개도 가져오지 못했다.
전성기가 지난 김현우, 류한수는 모두 메달 획득에 실패했고, 정한재과 남자 그레코로만형 130㎏급 김민석(수원시청)이 동메달 1개씩을 따내는 데 그쳤다.
'최악의 성적'을 냈다고 자체 평가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성적(금메달 2개, 동메달 6개)보다 더 처참한 결과다.
한국이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한 건 2010년 광저우 대회 이후 13년 만이고, 은메달도 따지 못한 건 1966년 방콕 대회 이후 57년 만이다.
'아시안게임 노골드' 참사를 예견했던 체육고교 지도자의 말은 그대로 현실이 됐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당장 내년 파리 올림픽엔 단 한 명의 선수도 내보내지 못할 수 있다.
세계선수권대회에 올림픽 출전권을 모두 놓친 한국 레슬링은 내년에 열리는 대륙별 예선 대회와 세계 예선 대회를 통해 파리 올림픽 출전 티켓을 다시 노려야 한다.
아시아 약체로 전락한 한국 레슬링이 두 대회에서 메달을 따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레슬링계에선 '항저우 참사'가 차라리 잘됐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국 레슬링의 현실과 위치, 미래가 고스란히 드러난 만큼 확실한 변화를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코앞에 닥친 국제대회에 급급하지 말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밑바닥부터 다지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는다.
레슬링이 예전의 위치를 되찾기 위해선 레슬링에 관한 인식부터 개선해야 한다.
'힘들기만 한 스포츠'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선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해 대중화를 끌어내야 한다.
생활체육과 접목한 '밴드 레슬링' 등을 활성화해 종목의 문턱을 낮추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필요하다면 일본의 사례를 수집해 본보기를 삼아야 한다. 한국이 무시하던 일본 레슬링은 수년 전부터 여자 레슬링을 집중적으로 육성했고, 지난달 세계선수권대회 10개 체급 중 6개 체급을 석권하며 세계 최강의 위치에 등극했다.
레슬링의 부활을 위해선 모든 레슬링인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cyc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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