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2030’ 위해 갈등국과도 관계 개선… ‘국가 대개조’ 올인 [뉴스 인사이드-탈석유 시대 준비하는 사우디]
제조업 육성 등 산업 구조 다각화 구상
677조원 규모 ‘네옴시티’ 조성 총력전
관광 허브 위해 지정학적 리스크 해소
2030 월드컵 3개 대륙 공동개최 영향
2034 월드컵 유치 노력에 파란불 켜져
스포츠·엔터 육성 등 소프트 파워 강화
1930년대 건국해 석유를 개발하고 미국에 수출하기 시작한 이래로 100년 가까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이해하는 데 필요했던 열쇳말들이다.
최근 들어 사우디의 대내외 행보는 이런 전통적 문법으로 해석하기가 다소 난감하다. 올해 3월 시아파 종주국이며 미국의 앙숙이자 러시아의 우방인 이란과, 그것도 중국의 중재로 외교 관계를 복원했다. 미 언론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뺨을 맞은 격”이라고 평가했다.
두 달 뒤 사우디는 또다른 시아파 국가인 시리아와 관계를 정상화했다. 사우디는 지난해에 제다를 찾은 바이든 대통령이 요청한 석유 증산 요청도 묵살했다. 앞서 2018년에는 여성의 운전을 최초로 허용했고, 이듬해에는 남성 보호자 없는 여성의 단독 해외여행 금지 규제도 풀었다.
◆탈석유 시대 대비 비전 2030
“석기시대가 돌이 부족해서 끝난 것이 아니듯 석유가 고갈되지 않아도 석유시대는 끝날 것이다.”
사우디 석유장관을 25년간 지낸 아메드 자키 야마니가 1973년 남긴 것으로 알려진 이 말에는 석유에 의존하는 경제가 언제까지고 지속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고민이 담겼다.
비석유 부문 정부 수입도 지난해 4분기 6.2% 성장한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는 5.8% 성장했다. 모두 무함마드 왕세자가 의도했던 방향이다.
더 라인 길이 170㎞, 폭 200m의 900만명 거주 친환경 직선 도시 |
무함마드 왕세자는 2015년 국방장관으로 취임 후 예멘 내전에 본격 개입했다. 사우디가 예멘 정부를, 이란이 후티 반군을 지원하면서 내전은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 양상을 띠었다.
예멘 내전이 격화하는 가운데 2019년 사우디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의 정유 시설 두 곳이 후티 반군의 무인기 공격을 받은 사건은 사우디에 작지 않은 충격을 줬다. 이는 사우디 내에서 미국의 안보 공약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는 계기가 됐다. 이후 사우디는 외부 위협 제거를 위해 분쟁에서 발을 빼고 안보 파트너를 다각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옥사곤 팔각형 수상 첨단산업단지 |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은 “오늘날 사우디의 외교 우선순위는 국내 정책(비전 2030)의 그림자일 뿐”이라며 “사우디 관료들은 석유가 세계의 지배적인 에너지원 지위를 상실한 이후에도 자국의 부와 역내 패권을 보장할 수 있는 활기차고 다양한 경제를 신속히 창출하는 데 최우선 목표를 두고 있다”고 짚었다.
특히 사우디가 외국인 투자를 지속적으로 유치하고 네옴시티를 중동과 유럽 관광의 허브이자 각종 국제 행사의 무대로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이루려면 지정학적 위기 해소가 필수적이다.
사우디는 이 밖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구단 뉴캐슬 유나이티드 인수, LIV 골프 출범 및 미 프로골프(PGA) 투어와의 통합, 미 종합격투기 대회 ‘프로페셔널 파이터스 리그’(PFL) 지분 인수 등 스포츠계의 굵직굵직한 이슈를 주도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사우디가 2021년 초부터 지난 7월까지 스포츠에 쓴 돈은 최소 63억달러(8조5000억원)에 달한다. 몬테네그로 GDP에 맞먹는 액수다.
이를 두고는 ‘스포츠워싱’, 즉 스포츠를 통한 이미지 세탁 목적으로 보는 견해가 많았다. 그러나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스포츠워싱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카슈끄지 살해 사건, 사우디·예멘 국경에서 벌어진 에티오피아 이주민 대량 학살 의혹 등 사우디의 인권 침해 관련 보도가 상세히 나온다”며 “사우디가 분명 스포츠워싱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런 시각에만 갇히다 보면 사우디가 금융, 첨단기술, 지정학, 예술,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주요 행위자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각하고자 하는 사우디 지도부의 더 큰 의중을 놓치게 된다”고 지적했다. 스포츠는 비전 2030과 관련된 사우디 국가 브랜드 제고 노력의 미끼 상품일 뿐이라는 뜻이다.
트로제나 스키 리조트·인공호수 등 갖춘 산악 휴양단지 |
이런 투자는 7000억달러(949조원) 상당의 자산을 관리하는 공공투자기금(PIF), 즉 국부펀드가 주도하고 있다. 국부펀드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이끄는 비전펀드를 통해 글로벌 기술기업에도 투자하고 있다. 미국 전기차 업체 루시드는 사우디 공장에서 차량 생산을 시작했고, 최근에는 사우디가 테슬라 공장 유치에 뛰어들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투자 수익 창출과 제조업 육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다.
관광산업 육성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이슬람 주요 성지 메카, 메디나가 있는 사우디는 전 세계 17억 무슬림 인구라는 기본적 수요를 갖추고 있지만, 투자를 보다 활성화해 2030년까지 여행·관광산업 규모를 전체 GDP의 1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업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사우디의 외부 유입 관광객 지출액은 2021년 414억9700만리얄(15조원)에서 지난해 1588억8800만리얄(57조5000억원)로 급증했다.
사우디가 2029 동계아시안게임(네옴시티), 2034 하계아시안게임(리야드)을 유치한 것도 이 연장선상에서 해석된다. 2030 엑스포(리야드) 유치전에도 뛰어들어 부산과 경쟁 중이다. 최근 국제축구연맹(FIFA)이 2030 월드컵을 아프리카·유럽·남미 3개 대륙 공동 개최로 결정하면서 사우디의 2034 월드컵 유치에도 파란불이 켜졌다는 분석이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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