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이웃집 전기료 납부”…계량기 바꿔 단 한전 “당사자끼리 합의”
7일 조선비즈에 따르면, 김씨와 A씨는 2005년쯤 신축된 빌라의 첫 입주자다. 사건은 A씨가 지난 8월 무렵 한전에 “실제 사용량에 비해 전기세가 너무 많이 나온다”고 한전에 민원을 넣으면서 시작됐다. 이후 한전은 전기기사 실사를 통해 계량기가 잘못 설치됐다는 걸 확인했다.
일반적으로 계량기는 한전이 관리한다. 그런데, 설치 과정에서 생긴 과실은 건물을 지은 시공사 책임이다. A씨는 2005년에 해당 빌라를 지은 시공사를 찾았지만 이미 폐업한 상태였다. 수소문 끝에 연락이 닿은 당시 시공사 사장은 “나는 모르는 일이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김씨는 한전으로부터 지난 18년 동안의 전기요금을 정산해 보니, A씨가 김씨가 내야할 전기세 30만원을 더 낸 걸로 계산이 됐다고 통보 받았다. 그러면서 김씨가 이를 A씨에게 돌려주는 식으로 합의를 보라고 제안했다.
그런데 법률 전문가들은 이같은 제안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전이 직접 관여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당사자들이 차액을 갖고 서로 합의할 것이 아니라, 한전이 각각 당사자들과 따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한전이 세금을 더 낸 사람에게 돈을 돌려주고, 세금을 덜 낸 사람에게 돈을 받아내는 게 일반적인 법리”라고 말했다.
한전의 제안에 대해 김씨는 “당사자들끼리 합의를 보면 한전은 복잡한 상황에 얽히는 일 없이 손을 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A씨는 한전 측의 셈법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한전 측 합의안을 거절했다. 2013년 한전이 해당 빌라 계량기를 교체했던 이력이 있다는 점을 문제삼았다. 이전에는 계량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했으나, 2013년 계량기 교체 때 설치가 잘못되면서 전기세가 뒤바뀌기 시작했다는 게 A씨의 생각이다.
전문가들도 A씨 주장에 생각을 같이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교 전기공학과 교수는 “만약 빌라가 지어진 2005년부터 계량기가 잘못 설치돼 있었다면 2013년에 계량기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그 사실을 분명히 눈치 챘을 것”이라며 “한전 측 과실로 전기세 청구가 뒤바뀌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 말대로라면 김씨와 A씨의 계량기가 바꿔 달린 것은 2005년이 아닌 2013년이며, 잘못은 빌라를 지은 시공사가 아닌 한전에 있는 셈이다.
김씨는 “한전은 이때부터 더 이상 ‘당사자 간 합의’를 언급하지 않았다”면서 “이웃이 계량기 교체 이력을 갖고 따지기 시작하자 한전이 태도를 바꿨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A씨에게 10년치 부당이득 300만원을 환불해주고, 내게는 3년치 과소청구분 180만원을 내라는 식으로 합의를 보자고 말을 바꿨다”고 덧붙였다.
2005년부터 계산하면 김씨와 A씨의 전력 소모량이 비슷해 차액이 30만원가량 되지만, 2013년부터 계산할 땐 김씨의 전력 소모량이 크게 늘어 김씨가 물어내야 할 돈도 전보다 크게 늘어난다는 게 한전 측 설명이었다.
본인 잘못도 아닌데 상당량의 돈을 납부해야 할 처지에 놓인 김씨는 어쩔 수 없이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합의를 거절하고 한전과 소송전에 들어가면 변호사 선임 비용이 더 많이 나오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김씨는 “한전이 됐든 건물 시공사가 됐든 계량기 설치를 잘못하면 아무 과실 없는 시민들만 피해를 보게 되는 꼴”이라며 “억울해도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그나마 180만원 정도로 넘어간 게 다행이라 생각하며 애써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한전은 조선비즈에 “민원 해결을 위해 다양한 제안을 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긴 것 같다. 과소청구분은 당사자가 분할지급하도록 해 부담을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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