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교수 "김대중·오부치 선언 의의는 日사죄-韓수용-미래 약속"(종합)
"선언 불구 '과거사'가 발목…존엄의 문제"
"한미동맹 강화에 일본 관계 개선 필수적"
"남북관계 개선 당분간 어려워…美대선에 달려"
"한일 전략적 대화 중요…과거사 용서는 그 결과"
[서울=뉴시스]신정원 기자 = 한일관계 및 한반도 전문가이자 한일포럼 일본 측 의장인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는 7일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최대 의의는 '일본의 명백한 사과, 한국의 수용, 미래지향적인 관계 약속'이라고 평가했다.
오코노기 교수는 오는 8일 김대중-오부치 선언 25주년을 맞아 아사히 신문이 진행한 단독 인터뷰에서 이 같이 말했다. 인터뷰는 아사히신문 서울지국장을 지낸 하코다 테츠야 논설위원이 진행했다.
한일공동선언은 1998년 10월8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서명했다. 부제는 '과거를 직시하면서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바꿔가자'다. 정치, 경제, 문화 등 광범위한 교류 확대를 담은 43개 행동 계획을 담고 있다.
오코노기 교수는 먼저 선언의 의의에 대해 "일본 측이 과거에 대해 명확하게 사과하고 한국 측이 이를 받아들여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다짐한 것이 가장 큰 의의"라면서 "그래서 (그것은 양국) 관계가 악화해도 돌아가야 할 원점으로 항상 인식돼 왔다"고 평가했다.
이어 '선언 후 문화를 중심으로 한일 시민교류가 확대됐다. 정치가 주도한 드문 예'라는 기자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김대중 정권의 일본 대중문화 단계적 개방은 오늘날 융성의 출발점이 됐다. 어쩌면 선언의 가장 큰 의의는 여기에 있을 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오코노기 교수는 당시 이 선언이 탄생하게 된 시대적 배경도 설명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8년 2월 취임했을 때 한국의 민주화는 어느 정도 끝났고(달성됐고) 남북 문제에서 북한은 김일성 전 국가주석 사망으로 체제 위기와 식량난으로 피폐해져 갔다. 한국도 전 정권 말 외환위기에 직면해 국가적 파산 상태였다"면서 "일본과 대립해서 좋을 것이 없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국제적으론 냉전 종식 후 화해와 협력의 시대였고, 일본에선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와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가 과거 전쟁과 식민 지배에 대한 명확한 반성과 사과를 표명했고 하시모토 류타로 전 총리와 오부치 전 총리가 이를 계승해 일본 입장에서도 여건이 갖춰져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선언은) 대체로 한국보다는 일본에서 높이 평가됐고, 한국에선 진보로 불리는 좌파 정권보다는 보수 우파 정권에서 평가 받았다"면서 "당시 한국은 이른바 보혁연정, 보수 측 수장 김종필씨가 한일 국교정상화의 일등공신였기 때문에 한일기본조약이나 청구권 협정에 이의를 제기할 리 없다는 그런 안도감이 일본에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나 한일 간에 많은 현안이 표출됐고, 특히 과거사 문제가 양국 관계 발전에 발목을 잡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오코노기 교수는 "역사 마찰이란 것은 양국 국민 간의 정체성 충돌이다. 한국 사람들은 가혹한 지배에 얼마나 용감하게 저항했는지에 대한 자부심이 있고, 그것을 인정받기 전까지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서 "이것은 존엄성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또 "(한일) 국교정상화는 과거 한국병합을 '무효'로 하는 정치적 타협 위에 이뤄졌다"면서 "양측이 각자 해석하도록 허용하는 이른바 '어른의 지혜'였지만 잊히고 말았다. 최근 한국 사법부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진보 세력은 굴욕외교라고 반대하면서 재협정을 요구해 왔다"고 짚었다.
1965년 체결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체결한 '한일기본조약'은 '1910년 8월22일 및 그 이전 양국이 체결한 모든 조약과 협정은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국은 한일합병조약과 그 이전 강제조약을 '체결 때부터 무효'라고 해석하는 반면 일본은 '한국 독립 시점 때부터'라고 보고 있다.
또 당시 한일청구권 협정도 체결했는데 한국 대법원이 2018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개인' 위자료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한 것을 오코노기 교수는 지적한 것이다.
오코노기 교수는 그러면서도 "일본도 겸허함이 희미해졌다"면서 "특히 아베 신조 정권의 '역사 수정주의'는 한국에서 비판을 받았다"고 꼬집었다.
이어 "일본에서도 '기억의 전쟁'을 유발하고 있다. 피해자 측의 집요한 비판을 견딜 수 없게 됐고, 가해자 측도 자신들의 기억을 단순화하고 반론하게 됐다. 가해자 측에게도 역사 문제가 존엄의 문제가 된 것"이라고 부연했다.
오코노기 교수는 최근 한일관계 개선 배경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봤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핵보유론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윤석열 정권은 미국의 핵우산을 포함한 확대 억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한미동맹 재강화에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도 필수적"이라면서 "3월 윤 대통령이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직후 미국 방문을 계획했던 것은 한미일 연계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는 남북관계 개선이 한일 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과 관련한 질문엔 "논리적으로는 긴장이 완화되면 관심이 줄어들지 모른다. 다만 당분간 그런 상황은 상정할 수 없다"면서 "오히려 미국은 한미일 통합 억제 체제를 만들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그보다 더 불확실한 것은 미국 대선"이라면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선 여부에 달렸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일 역사 공동 연구 등의 노력과 관련해선 "결과적으로 잘 되지 않았다. 여론과 정치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라면서 "특히 한국은 그런 경향이 강하다. 만약 다시 공동 연구를 하게 된다면 순수하게 학자들끼리 서로 존중하면서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오코노기 교수는 2025년 60주년을 맞는 한일 국교정상화에 대해 "그 때 한일협정의 재평가가 불가피할 것"이라면서 "한일은 기본적 이념이나 가치관은 일치한다. 그렇다면 전략적 대화가 중요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한국 사람들은 역사 인식이 일치해야 전략적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하기 위해서라도 전략적 대화가 필요하다. 그 결과로서 역사에 관해서도 용서할 수 있는 부분이 나올 것이다. 전략적 대화가 역사 인식 접근을 낳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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