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집' 속 '거미집'이 걸작이냐 괴작이냐 보다 더 중요한 것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최근에 만들어지고 있는 한국 영화 대부분은 마치 20세기엔 한국영화가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군다. 요새 한국 영화에서 에드워드 양, 알프레드 히치콕, 에릭 로메르,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향을 찾는 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옛 한국영화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거나 그 영화들을 직접 회상하는 영화는 몇 편이나 될까.
드물지만 없는 건 아니다. 류승완의 <밀수>는 1970년대 한국 액션물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작품이다. 보다 교과서적인 예는 이번 추석 시즌에 개봉된 김지운의 <거미집>이다.
<밀수>를 보기 위해 70년대 액션물을 굳이 챙겨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거미집>을 보려면 최소한 한 편의 영화는 먼저 보고 가는 게 좋다. 그건 김기영의 <하녀>다. 시간이 조금 더 난다면 프랑수아 트뤼포의 <사랑의 묵시록>도 챙겨보면 좋은데, 이건 여러분의 선택에 맡긴다.
영화의 내용. 시대배경은 1970년대 초다. 첫 영화 이후 계속 평판 안 좋은 '치정물'만 내놓았던 김열 감독은 얼마 전에 <거미집>이라는 영화를 완성했다. 그런데 결말만 바꾸면 이 작품이 걸작이 될 거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결국 김열은 배우들을 세트로 불러들여 문공부의 허가도 받지 않고 재촬영에 들어간다.
한국고전영화에 대한 지식이 있는 관객들은 영화가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김열과 김기영을 연결시키게 된다. 하지만 일대일 연결은 곧 끊어진다. 김열이 찍는 영화 <거미줄>은 분명 김기영의 영향 아래 있다. 초반에 드러나는 설정 몇 개는 김기영을 희미하게 연상시킨다. 하지만 둘은 전혀 다른 사람이다. 김열은 전설적인 신상호(자막 없이 보는 관객들 상당수는 그 이름을 신상옥이라고 들을 것이다. 이 영화의 신상호도 신상옥과 전혀 다른 길을 걸은 다른 사람이라는 걸 확인하기 전까지는)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고 자신의 재능과 능력에 대한 확신이 없다. 김기영은 누군가의 조연출인 적 없었고 자신의 작품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개봉 전에 영화가 김기영의 유족이 낸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에 휘말렸다가 합의한 것도 이와 관련되어 있다. 김열을 김기영을 모델로 한 인물이라고 보면 영화는 모욕적일 수 있다. 하지만 신상호가 신상옥이 아닌 것처럼 김열은 김기영이 아니다.
김열이 찍는 <거미집>은 70년대 초 한국영화의 정확한 재현은 아니다. 일단 이 영화의 화면은 김기영의 <하녀>처럼 아카데미 비율이고 흑백인데 1970년대엔 이런 영화는 이미 거의 멸종된 상태였다. 윤여정이 주연한 <화녀>가 더 그럴싸한 레퍼런스였겠지만 아마도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70년대의 현실과 더 선명하게 구별되는 허구를 원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하녀>가 <화녀>보다 더 유명하기도 하고. 디테일을 꼼꼼하게 따지는 관객들은, 당시 한국 영화들은 모두 전문 성우를 동원한 후시녹음이었고 현장에서 들리는 배우 목소리와 실제 완성된 영화 속 성우 목소리가 같을 가능성은 비교적 낮다는 걸 지적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까지 따진다면 영화는 너무 복잡해진다. 무엇보다 이 정도 타협 속에서 만들어진 허구의 영화는 여전히 꽤 재미있다.
김열의 <거미집>은 김열이 꿈꾸었던 걸작으로 완성되었을까? <거미집>의 유니버스에 김기영이 존재했다면 그 영화는 <하녀>의 초라한 아류작으로 평가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아마 신상옥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김기영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만희는 존재했을까? 종종 언급되는 이만희처럼 들리는 이름을 가진 감독은 사실 비슷한 이름을 가진 누군가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거미집>은 <하녀>의 영향 없이 탄생한 독창적인 걸작 또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억할 만한 괴작으로 남았을 수도 있다. 단지 신연식과 김지운이 쓴 각본 속 <거미집>은 여전히 김기영의 기괴한 독창성을 따라잡지는 못한다. 스타일의 흉내만으로 걸작의 힘을 재현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지만 <거미집> 속 <거미집>이 걸작이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김열이 정말로 자신이 주장하는 것처럼 재능 있는 예술가인가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어떤 예술가들은 늘 자신의 재능과 능력이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영역의 무언가를 갈망한다는 것, 그 무언가에 도달하는 과정은 늘 현실 세계의 추잡함과 초라함과 복잡함에 의해 발목잡힌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라는 이 미친 일에 뛰어든 사람들은 자신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 무언가가 원래 꿈꾸었던 것과 닮지 않았다고 해도 영화는 그 혼란스러움 속에서 자신만의 생명력과 가치를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에서 분리된 아름다운 이상으로 존재했던 원래 계획을 넘어서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거미집'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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