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에 바뀐 강제추행 기준…어떻게 다를까?[The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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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대법원이 강제추행죄를 판단하는 기준을 새로 내놨습니다. 가해자가 물리적으로 폭행하거나 공포심을 일으키는 말을 한 뒤 추행했다면 강제추행죄가 성립한다는 겁니다. 피해자가 ‘저항하기 곤란한 정도’로 가해자가 폭행·협박해야 강제추행죄로 처벌하던 기준을 40년 만에 바꾼 건데요. 이제 추행 가해자는 모두 강제추행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게 되는 걸까요? 법원이 강간죄를 판단할 때도 피해자가 죽기 살기로 저항했는지를 따져 묻지 않겠단 걸까요? 사회부 오연서 기자에게 물었습니다.
[The 1] 대법원이 기준을 바꾸면 구체적으로 뭐가 달라지는 건가요?
오연서 기자: 지금까지 강제추행죄가 성립하려면 가해자의 폭력·협박의 정도가 피해자가 저항하기 곤란한 수준이어야 했습니다. 앞으로는 폭력과 협박의 수준이, 피해자가 저항하기 곤란한 정도였는지를 따지지 않겠단 거예요. 폭행과 협박을 한 뒤 추행을 했다면 죄를 묻겠단 것이죠.
예를 들어 과거엔 피고인이 술에 취해 피해자의 가슴을 만지려고 한 사건에서 법원이 “피해자가 구호요청이 가능했음에도 이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었거든요. 더 저항했어야 한단 뜻이죠. 이젠 이렇게 안 하겠단 거예요. 하지만 가해자가 폭행·협박을 했어야 강제추행죄가 성립된다는 건 똑같습니다. 현실에선 폭행·협박이 없는 추행이 더 많이 이뤄지고 있으니, 앞으로도 처벌 공백이 클 것으로 보입니다.
[The 2] 폭행이나 협박이 어느 수준이어야 가해자가 강제추행죄로 처벌받나요?
오연서 기자: 폭행이 뭔지는 일반 폭행죄 유·무죄를 따지는 판례가 상당히 쌓여있어요. 그 기준을 따르게 될 것 같습니다. 고성도 폭행으로 보고 있거든요.
협박의 경우엔 피해자가 공포를 느꼈느냐가 중요한데요. 이 역시 피해자의 저항이 곤란했는지를 따지는 것 못지않게 추상적이긴 합니다. 다만 법원은 협박죄에 대한 판례가 축적돼 있어 혼란이 거의 없을 거라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The 3] 이제 피해자는 ‘곤란할 정도로 저항했다’ 대신 ‘협박을 받고선 공포심이 들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거네요. 그 과정에서 2차 가해를 당하진 않을까요?
오연서 기자: 그런 우려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근데 죄를 따질 때 피해자 진술을 완전히 빼고 재판하는 건 사실상 어렵다고 봐야 합니다. 분명한 건 내가 저항이 곤란한 상황이었단 걸 입증하는 거랑 내가 공포감을 느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거랑은 확실히 다르단 거예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피해자다움을 요구받거나 2차 피해를 받을 가능성은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The 4] 강간죄를 판단할 때도 피해자가 죽기 살기로 저항했는지를 따져 묻잖아요. 그 기준도 바뀌는 건가요?
오연서 기자: 바뀌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법원은 강간을 당할 때 피해자가 저항하기 현저하게 곤란할 정도로 가해자의 폭행이나 협박이 강력했는지를 따져왔습니다. 강제추행죄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들이댔던 건데요. 이번 대법원 판결은 강제추행죄에만 해당하는 것이라 강간죄는 별도로 판단해야 합니다.
물론 강제추행죄처럼 강간죄 역시 1·2심에서 더 엄하게 처벌하는 분위기입니다. 예전엔 피해자 어깨나 몸을 누르는 정도로는 무죄가 선고됐지만, 요즘엔 이 경우도 유죄로 판단합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강간죄 판단 기준 역시 결국 바뀌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The 5] 강제추행죄나 강간죄 모두 기준이 복잡한데요. 그냥 피해자가 동의했는지, 아닌지로 간단하게 판단하면 안 되나요?
오연서 기자: 여성계는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은 추행이나 강간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실제로 이번 판결에선 노정희 대법관이 처음으로 “세계 주요국은 피해자 ‘저항’을 요구하던 데에서 피해자의 ‘동의 부재(결여)’를 파악하는 것으로 변하고 있다”는 소수 의견을 내놨습니다. 피해자의 동의 여부로 가해자에게 죄를 물어야 한단 뜻입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번 판결 취지가 비동의 추행죄를 인정하겠단 건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지금 형법 조항엔 폭행·협박을 강제추행죄의 전제로 두고 있으니 재판은 그 범위에서 해야 한단 건데요. 피해자의 동의를 따지는 건 국회가 법 조항을 고치거나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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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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