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 개구리" 도쿄 대참사 충격 컸던 원태인-박세웅…정말 이 악물었구나[항저우 NOW]

김민경 기자 2023. 10. 7.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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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웅(왼쪽)과 원태인은 자기 임무를 200% 완수하고 대회를 마무리했다. ⓒ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김민경 기자] "솔직히 벽을 느꼈다. 정말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것을 이번 대회에 와서 더 느꼈다."

지난 3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202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마치고 투수 원태인(23, 삼성 라이온즈)이 했던 말이다. 한국은 숙적 일본(B조 1위, 우승)과 다크호스 호주(B조 2위)에 발목을 잡히면서 1라운드 B조 조별리그 성적 2승2패 3위에 그쳐 탈락했다. 2013, 2017년 대회에 이어 3연속 1라운드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자 '도쿄 대참사'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일본과 호주의 방망이를 감당하지 못한 한국 마운드의 붕괴가 뼈아팠다. 베테랑 김광현(SSG 랜더스)과 양현종(KIA 타이거즈)은 전성기 때와 같은 기량을 펼치지 못했고, 국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데려갔던 젊은 투수들은 스트라이크조차 제대로 집어넣지 못하는 답답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한국은 팀 평균자책점 7.55를 기록하면서 대회에 참가한 20개국 가운데 16위에 머물렀다.

결과가 가장 아쉬운 건 당사자인 선수들이었다. 원태인은 당시 "솔직히 벽을 느꼈다. 어떻게 보면 큰 리그에서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야구를 하고 있지만, 3번 연속 탈락한다는 것은 변명할 수 없다. 인정하고, 정말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것을 이번 대회에 와서 더 느꼈다. 지금 당장 한국에 가서 이때까지 했던 운동과 마인드를 바꿔야 할 것 같다. 나만 바뀐다는 게 아니라 다들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쉽거나 실력에서 밀린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다들 한국에 가서 바뀔 것이다. 우리가 퇴보하고 있다기보다는 다른 나라들이 많이 발전하는 사이 우리는 유지밖에 못 한 것 같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한국 야구가 많이 발전했으면 한다"고 말하며 이를 악물었다.

WBC에 함께 참가했던 박세웅(28, 롯데 자이언츠)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타자를 빨리 잡을 수 있을까 생각을 많이 했다. 나를 포함한 어린 선수들이 이런 국제대회 경험이 많지 않다. 많은 관중 앞(도쿄돔 4만6000명 만석)에서 던진다는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을 선수로서 잘 안다. 경험이 더 쌓이면 선수들도 더 좋은 투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앞으로 더 많이 세계 야구와 부딪히며 성장하고 싶은 바람을 표현했다.

▲ 박세웅 ⓒ 연합뉴스

원태인과 박세웅은 이번 대회에서 한국 마운드의 중심을 잡아줘야 했다. 함께 WBC를 경험했던 고우석(LG 트윈스), 곽빈(두산 베어스)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처음 태극마크를 다는 유망주들이었다.

아시안게임은 WBC와 비교해 참가국과 참가하는 선수들의 무게감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태극마크를 달고 나서는 모든 경기는 중요하다. 한국은 2010년 광저우, 2014년 인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에 이어 4연속 금메달을 목에 걸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다.

류중일 한국 감독은 그래서 결승 진출이 걸린 슈퍼라운드에 박세웅과 원태인을 차례로 선발 마운드에 올렸다. 한국은 대만과 조별리그 경기에서 0-4로 완패하는 바람에 B조 2위로 밀리면서 1패를 떠안은 상태로 슈퍼라운드에 진출했다. 자력으로 결승에 오르려면 무조건 2승을 거둘 필요가 있었다.

박세웅은 5일 일본과 슈퍼라운드 첫 경기에서 맏형의 임무를 완벽히 해냈다. 6이닝 2피안타 2볼넷 9탈삼진 무실점 완벽투를 펼치며 2-0 완승을 이끌었다. 박세웅은 타선이 일본 선발투수 가요 슈이치로(5⅔이닝 1실점)에 막혀 고전하는 동안 꿋꿋하게 무실점으로 버티며 중요한 승리를 챙겼다.

박세웅은 경기 뒤 "초반은 중요한 경기라 신중하게 던지려 했는데, 이닝이 지날수록 몸이 더 풀어지고 상대팀 타자들을 상대하다 보니까 어떻게 공략을 해야겠다 이런 계산이 조금 섰다. 아무래도 국제대회 특성상 좋은 투수들이 나와 대량 득점이 쉽지 않을 걸 알았기에 점수를 주더라도 최소 실점을 하려고 집중을 많이 했다. 맏형으로 와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어린 선수들을 잘 이끌어서 돌아가겠다고 했다. 일단 좋은 모습 보여드렸으니까 이제 어린 선수들을 잘 이끌어서 남은 경기 잘 치르고 돌아가겠다"고 의젓하게 이야기했다.

▲ 원태인. ⓒ연합뉴스

원태인은 2일 중국과 슈퍼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6이닝 3피안타 무4사구 6탈삼진 무실점 완벽투를 펼치면서 8-1 승리를 이끌었다. 투구 수가 68개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효율적인 피칭을 했다. 중국 타자들이 원태인의 공에 거의 대응하지 못하자 자신감이 붙었고, 일찍부터 김주원과 강백호가 홈런을 터트리며 득점 지원을 해준 덕분에 쉽게 경기를 풀어 갈 수 있었다. 원태인은 조별리그 첫 경기였던 1일 홍콩전 4이닝 무실점 투구를 포함해 이번 대회에서 모두 10이닝을 책임지면서 단 한점도 내주지 않고 마무리했다.

임무를 모두 마친 원태인은 "팀이 벼랑 끝에 서 있었는데 그런 경기에 (중요한) 임무를 맡겨주셨다. 책임감을 가지고 경기에 나섰는데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다. 금메달을 생각하고 왔다. 또 (예선전) 대만에 졌기에 꼭 설욕하자는 마음도 크다. 그 경기에서 지고 난 뒤 버스나 단체 메신저 방에서 ‘결승에 가서 꼭 복수하자’고 많은 얘기를 나눴다. (대만과 맞대결을 치를) 기회를 한 번 더 받았다는 것에 감사하며 내일(7일)은 꼭 금메달 딸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의욕을 불태웠다.

한국은 7일 대만과 결승전에서 필승을 다짐했다. 선발투수는 확정하지 않았으나 곽빈과 문동주를 순서에 상관없이 중용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미 사력을 다한 박세웅과 원태인을 제외한 나머지 투수들은 전원 불펜 대기하는 총력전을 펼칠 예정이다. 원태인과 박세웅은 동료들과 함께 금메달을 목에 걸고 좋은 추억을 공유하면서 국제대회에서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까.

▲ 금메달을 노리는 한국야구대표팀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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