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국제오페라축제 개막작 '살로메'…음악이 선명해지는 연출
(대구=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지난 20년간 꾸준한 발전을 이뤄온 대구국제오페라축제(예술감독 정갑균)가 올해 축제 개막작으로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를 무대에 올렸다.
지난 6일 대구오페라하우스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1905년에 초연한 무조음악 오페라가 이렇게 재미있는 작품이었느냐며 공연 뒤에 감탄을 연발했다. 어렵거나 지루할 줄 알았던 현대오페라가 사운드 면에서나 연극적인 면에서나 놀랄 만큼 재미있고 참신했다는 것이 중학생부터 노년에 이르는 다양한 관객들의 공통된 평가였다.
2016년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 시립극장이 제작한 이번 프로덕션은 2018년 오스트리아 최고의 오페라 작품상을 받는 등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대본, 오페라 및 연극 연출, 영화 등의 분야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연출가 미하엘 슈투르밍어의 다채로운 영화적 아이디어와 음악을 눈으로 보고 느끼게 만드는 잘 계산된 '음악의 시각화' 방식이 눈길을 끌었다.
함부르크, 할레, 빈 등에서 활약해온 지휘자 로렌츠 아이히너는 대구시립교향악단을 이끌며 때로는 영화음악이나 효과음향처럼 들리는 슈트라우스의 지극히 연극적인 음악을 시종 긴장감 있게 연주했다. 오케스트라가 피트 깊은 곳에 있어 객석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데도, 개별 관악기와 타악기의 음색이 손에 잡히듯 선명하게 구분돼 귀에 꽂혔다.
살로메 역의 소프라노 안나 가블러는 세계적인 바그너 전문가다운 기량으로 90명 가까운 대규모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뚫고 선명한 고음을 전달했을 뿐 아니라, 외모와 연기 면에서도 관객을 극에 온전히 몰입시키는 살로메였다. 헤롯왕 역을 맡은 테너 볼프강 아블링어 슈페어하케는 내면의 두려움을 우스꽝스러운 자신감으로 감추려는 이 독특한 캐릭터를 천재적으로 구현했고, 명료한 가창과 딕션(발음)으로 고난도 배역에 매력을 더했다.
헤로디아스 역의 메조소프라노 하이케 베셀은 분노와 조소를 뒤섞은 저음의 가창도 훌륭했지만, 무대 위의 사소한 동작 하나로도 인물의 성격을 강렬하게 전달하는 타고난 연기자였다. 요한(오페라에서는 '요하난') 역의 바리톤 이동환은 탁월한 가사 전달력, 오케스트라를 제압하는 에너지 넘치는 가창, 치밀하고 기품 있는 표현력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첫 등장 때부터 명징한 경질의 고음으로 귀를 활짝 열게 만든 경비대장 나라보트 역의 테너 유준호는 자결해 무대에서 사라진 것이 아쉬울 만큼 뚜렷한 존재감과 뛰어난 음악성을 과시했다. 헤로디아스의 시녀 역을 맡은 메조소프라노 김예은, 유대인1 역의 테너 이희돈, 나사렛인1 역의 베이스바리톤 안민수, 병사1 역의 바리톤 정제학을 비롯한 조역들 대부분도 처음 등장할 때마다 신선한 청각적 즐거움과 놀라움을 선사했다.
이처럼 고르게 뛰어난 성악적 역량을 지닌 적역 가수들을 한 프로덕션에 모은 대구오페라하우스의 능력 또한 감탄할 만했다. 극단 늘해랑의 연기자들도 자연스러운 극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탰다.
헤롯 왕궁의 대리석 계단, 촛대들이 불을 밝힌 연회 테이블과 의자들, 한쪽 구석의 침대, 요한이 갇힌 지하 감옥 등으로 복잡하게 구성된 무대는 반투명 유리로 채워진 대형 철제 구조물 하나로 묶여있다. 계속 회전해 앵글을 바꾸는 이 거대한 감옥 같은 무대장치는 음악과 극의 진행에 맞춰 대단히 효과적으로 활용됐다.
특히 관현악곡 '일곱 베일의 춤' 장면에 관객 모두의 관심이 집중됐다. 살로메는 나이트클럽 조명등 아래 춤을 추는데, 무대가 회전하면서 살로메와 헤롯왕이 철제 구조물을 채운 반투명 유리에 가려 어렴풋한 실루엣만 보이다가 뚜렷하게 보이다가 하며 관객의 호기심과 긴장을 갈수록 고조시킨다.
오리엔트풍의 음악과 서양의 왈츠 음악이 반반을 이루는 이 음악의 전환점에서 연출가는 두 인물이 함께 왈츠를 추게 해 음악적 특성을 더욱 명확하게 전달했다. 요한의 잘린 머리 대신 시신 전체를 등장시킨 것 역시 대단히 적절한 아이디어였다. 연출 콘셉트, 무대디자인, 성악, 오케스트라 음악, 의상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가 통일성을 이뤄 보기 드물게 완벽한 공연이었다.
rosina@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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