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 감성, 노래 잘 하는 오빠들이 돌아왔다('오빠시대')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3. 10. 7.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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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시대’, 소외됐던 8090 음악과 시절의 소환

[엔터미디어=정덕현] 이덕진의 '내가 아는 한 가지'를 담담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부른 이현. 그는 과거 그룹 오션(5tion)에서 활동하며 주목받던 가수였지만, 그 후 회사원 생활은 물론이고 뮤지컬 배우로도 활동하며 하루하루를 버텨왔다고 했다. 1979년생 40대의 나이지만 여전히 앳된 외모로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온 듯한 그가 부르는 '내가 아는 한 가지'는 그래서 그가 대하는 음악에 대한 이야기이자 다짐처럼 들렸다.

모든 심사위원들의 불을 받아 '올라잇'으로 첫 번째 무대를 이현이 통과하자, 자막에는 '오빠가 돌아왔다'는 문구가 찍혔다. 이건 아마도 MBN <오빠시대>라는 이색적인 오디션 프로그램이 가진 색깔을 말해주는 것일 게다. 1992년에 발표된 이덕진의 '내가 아는 한 가지'는 당대를 살았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노래방에서 도전했을 곡이었지만, 최근 그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 속에서도 결코 잘 선곡되지 않던 곡이었다. 그래서인지 노래를 듣는 순간, 그 시절의 기억들이 소환되는 마법 같은 순간이 펼쳐졌다. <오빠시대>는 오디션 프로그램이지만 이처럼 음악을 통한 시절의 소환이라는 지점이 특징이다.

가왕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를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의 보컬 트레이너로 무려 717명의 가수를 트레이닝했던 장우람이 부르고, 들국화의 '사랑한 후에'를 피노키오의 마지막 멤버로 들어온 황가람이 반전의 허스키 보이스로 부르며, 노고지리의 '찻잔'을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은 끼를 보여주는 신공훈이 록스피릿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불러주고, 뮤지컬에서 김광석 역할을 맡아 열연 중인 최승렬이 김광석의 '혼자 남은 밤'을 불러줄 때, 시간은 자연스럽게 그 노래가 흘렀던 시절로 돌아간다.

힙한 개성이 뚝뚝 떨어지는 류지호가 부르는 도시아이들의 '텔레파시', 야구선수 출신인 권의빈이 꾸밈없는 순수한 톤으로 부르는 조덕배의 '꿈에', 쩌렁쩌렁한 보이스로 객석을 쥐락펴락하며 윤희찬이 부르는 김추자의 대형곡 '무인도', 재즈 감성 묻어나는 안성현이 불러주는 박성신의 '한번만 더', 자유로운 영혼의 느낌으로 여러 악기를 소화하는 김정우가 부르는 민혜경의 '보고싶은 얼굴', 성북동 록스타 이동현이 기타 연주와 함께 부르는 김현식의 '사랑 사랑 사랑'... <오빠시대>는 선곡 자체가 최근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소외시켰던 8090의 곡들이라는 점에서 신선하게 느껴진다.

물론 <팬텀싱어> 우승자인 이벼리나 오션의 이현 같은 이미 팬덤을 갖고 있는 출연자도 눈에 띠지만, 힘겨운 어린 시절을 겪었던 그 마음을 담아 김동환의 '묻어버린 아픔'을 불러 모두를 눈물바다로 만들어낸 박지후 같은 출연자가 주는 임팩트도 적지 않다. 노래는 이처럼 시절을 소환해내기도 하고, 또 노래를 부르는 이의 삶이 묻어나 더더욱 감동을 주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오디션 공화국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무수히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간 상대적으로 그 장르들은 트로트와 아이돌 음악으로 집중되어 왔던 게 사실이다. 1990년대 음악은 그나마 <응답하라> 시리즈 등이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주목받은 바 있지만, 7080 음악은 마치 없는 것처럼 소외되곤 했다. 그래서 오디션 프로그램들을 보다보면 우리네 가요가 아이돌 음악 이전에는 마치 트로트 음악이 있었던 것처럼 그 중간지대가 사라져버리는 착시효과를 만들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오빠시대>는 그간 소외됐던 시절의 음악들을 '오빠'라는 키워드를 통해 소환해내는 오디션이라는 점에서 의미와 가치가 충분하다. 노래 잘하고 매력적인 오빠들이 무대에 오르고, 순간 소녀시절로 되돌아가는 '오빠부대' 관객들이 그 노래에 맞춰 호응한다. 그 광경은 우리에게 사라진 것처럼 여겨지던 '오빠의 시대'가 있었다는 걸 새삼 떠올린다. 트로트에서 K팝으로 이어주는 더할 나위 없이 빛나던 중간지대가 있었다는 걸 <오빠시대>는 음악과 시절을 소환해 보여주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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