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의 이번 황금연휴 명절 인사“너, 그 일 알아?”
시진핑 정권에 대한 불만과 피로감도 상당
(시사저널=모종혁 중국 통신원)
9월29일부터 10월6일까지 중국인들은 8일 연휴를 보냈다. 중국 정부가 한국의 추석에 해당하는 중추절과 건국기념일인 국경절을 합쳐 역대급 휴일을 지정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휴 내내 고속도로를 무료로 개방했다. 그 덕분에 대륙 곳곳의 관광지와 휴양지는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 가족과 친척, 친구, 동창 등을 만난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연휴에 중국인끼리 만나 대화를 할 때 서두에 인사말처럼 묻는 말이 있었다. "너, 그 일 알아?"였다.
"알음알음 알려지던 소문, 서구 보도로 확인"
변호사인 뤄청(가명)은 필자에게 "최근 미국과 영국 신문이 친강 전 외교부장의 갑작스러운 경질이 미국 주재 중국대사 시절 혼외관계와 관련 있다고 보도했다"며 "이 소식이 해외로부터 전해져 떠돌았다"고 밝혔다. 이는 월스트리트저널과 파이낸셜타임스의 보도를 가리킨다. 9월19일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 중앙정부 부장(장관), 지방정부 당서기 등 고위 관리들이 친강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조사 결과를 8월에 보고받았다고 전했다. 친강이 2021년 7월부터 올해 1월까지 주미대사를 지내며 혼외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9월26일 파이낸셜타임스는 불륜 상대를 특정했다. 홍콩 피닉스위성TV에서 대담 프로그램 진행자로 일했던 푸샤오톈이다. 푸샤오톈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석사를 마친 후 2009년 기자로 입사했다. 이듬해인 2010년 주영국 대사관 공사로 부임한 친강을 처음 알았다. 그러다가 푸샤오톈은 2020년 베이징에 출장 가면서 당시 외교부 부부장이던 친강을 다시 만났다. 그 후 두 사람은 가까워졌다. 둘의 관계는 친강이 주미대사로 나간 후 더 깊어졌다. 지난해 3월에는 푸샤오톈이 자신의 프로그램에 친강을 출연시켜 인터뷰했다.
그런데 하반기부터 기류가 묘하게 바뀌었다. 친강이 조금씩 푸샤오톈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던 것이다. 게다가 11월에는 미혼이던 푸샤오톈이 아들을 낳았다. 직후부터 푸샤오톈은 주변 지인들에게 친강과의 관계에 대한 힌트를 흘렀다. 그리고 올해 3월12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친강이 국무위원으로 승진하자, 중국판 X(옛 트위터)인 웨이보에 아들 사진을 올리며 "승리의 결말"이라는 메시지를 달았다. 3월19일에는 다시 웨이보에 자신의 사진과 함께 누군가를 향한 장문의 생일 축하 글을 올렸다. 친강을 향한 메시지였다.
4월11일 푸샤오톈은 미국에서 중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자신과 아들 사진에 더해 지난해 3월 친강과의 인터뷰 장면을 담은 사진을 다시 X에 올렸다. 이 포스트를 마지막으로 푸샤오톈은 SNS 활동을 중단했다. 친강이 돌연 실종된 6월부터는 휴대폰 전화번호가 정지되었고 메신저도 두절되었다. 뤄청은 "알음알음 알려지던 소문이 서구 유력 신문의 보도로 확인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그 일'은 하나 더 있다. 8월29일 이후 실종 상태인 리상푸 국방부 부장에 대한 면직이 국경절 연휴 이후에 발표된다는 소문이다.
뤄청은 "홍콩 신문이 그렇게 보도했다"고 말했다. 이는 9월27일 홍콩 최대의 중문(中文) 일간지 '명보(明報)'의 평론을 가리킨다. 명보는 "리상푸 부장에 대한 조사 소식 공개가 가까워졌다"면서 "가을에 열릴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3중전회)에서 군 고위층 인사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리상푸는 9월30일 베이징 톈안먼광장에서 열린 열사기념일 헌화 행사에 불참했다. 행사에는 시진핑 국가주석을 위시해 모든 최고 지도부가 참석했다. 국무위원과 중앙군사위원 등도 모두 나왔다.
그러나 국무위원이자 중앙군사위원인 리상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리상푸는 시 주석 집권 이후 그야말로 승승장구했다. 2018년에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되었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2019년 최고 장성인 상장으로 진급시켰다. 올해 3월에는 국방부장에 임명했다. 리상푸는 1월에 외교부장이 되고 같은 날 국무위원으로 승진한 친강과 함께 가장 주목받았다. 그런데 4월부터 불거진 로켓군 수뇌부의 부패 혐의에 연루되면서 한 달여 동안 실종 상태다. 비록 리상푸가 친강처럼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진 않았지만, 행정부 격인 국무원 각료의 연이은 실종에 중국인들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현실로 인해 2012년 11월 시 주석이 집권한 이래 벌여온 반부패 사정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중국인들이 생겨나고 있다. 시 주석은 저우융캉 전 공산당 상무위원,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 링지화 전 통일전선부장 등 거물들을 부패 혐의로 잇따라 쳐냈다. 이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자 정적들을 제거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그 후로도 부패 사정을 계속 펼쳤다. 문제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고위 관료의 부패와 탈선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는 9월까지 차관급 이상 36명이 당국의 조사를 받아 지난해의 32명을 넘어섰다.
청년들 "취업 힘든데 애국심만 고취" 불만
은행원인 양밍(가명)은 필자에게 "반부패 사정몰이가 10년을 넘었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며 "이제는 친강과 리상푸마저 낙마했다"고 한탄했다. 무엇보다 친강과 리상푸는 시 주석의 낙점과 총애로 승승장구한 최측근 인물이다. 과거 중국은 공산당 총서기를 정점으로 하되, 집단지도체제를 이루었다. 따라서 당정의 주요 인사는 상무위원 7명의 토론과 협의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 주석이 모든 인사권을 쥔 1인 지배체제다. 그래서인지 다수의 중국인은 시 주석이 중국몽(中國夢)의 실현을 앞세워 애국심을 고양해 왔던 사회 분위기에 대해서도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한 대졸 미취업자는 "청년들은 취업난에 시달리는데 70년이나 지난 항미원조전쟁 영화와 드라마 제작에 많은 돈을 쏟아붓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꼬집었다. 항미원조전쟁은 한국전쟁을 가리키는 중국 용어다. 이런 현실을 보여주듯, 9월28일 개봉한 《지원군: 웅병출격》의 흥행수입은 《견려반석》과 《전임4: 영년조혼》에 한참 뒤처졌다. 《지원군: 웅병출격》은 가장 많은 제작비를 들였고 중국 언론의 대대적인 응원을 받았다. 이로써 2020년 《금강천》, 2021년 《장진호》, 2022년 《장진호지수문교》로 이어졌던 항미원조전쟁의 대박 신화도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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