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간 ‘학살 범인’ 추적…탐사보도가 ‘전쟁범죄’를 기록하는 방법
"우크라이나 안에서 벌어진 전쟁 범죄에 대해 더 많이 조사해야 합니다. 러시아군이 여전히 점령 중인 지역들이 있고, 그곳에서 지금도 범죄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부차 지역에서 했던 것처럼 자신들의 범죄가 CCTV 등을 통해 기록되는 것들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탐사보도’에서 중요한 건 러시아군이 점령하는 동안,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세상에 보여주는 것입니다."
500일 넘게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무엇을 취재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뉴욕타임즈의 마샤 프로리악(Masha Froliak) 탐사보도 저널리스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글로벌 탐사보도 총회 주요 키워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지난달 19일부터 나흘간 ‘2023년 글로벌 탐사보도총회(GIJC)’가 열렸습니다. 이 총회는 2년에 한 번 열리는데, 전 세계 탐사보도 기자들이 모여 자신의 취재 비법을 공개하고 격려하고 연대하며 함께 일할 동료를 찾기도 하는 ‘교류의 장’입니다.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오프라인 행사이다 보니, 132개국에서 2천 명이 넘는 기자가 참여했습니다.
이번 총회에서 주요 화두는 단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었습니다. 전쟁이 500일 넘게 진행되고 있는 데다 많은 사람들이 미사일 폭격과 총격 등에 희생됐고, 여전히 희생되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탐사보도 기자들이 현장으로 가 '전쟁범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추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8개월여간 추적 ... ‘부차 학살’ 범인 특정한 뉴욕타임즈
뉴욕타임즈의 마샤 프로리악(Masha Froliak) 저널리스트도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 현장에서 '전쟁범죄'를 취재 중입니다. 지난해 3월 우크라이나 수도 외곽 지역인 부차에서는 민간인 450여 명이 학살됐습니다. 그는 러시아군이 부차에서 철수한 이후 8개월 동안 그 지역에 머물며 학살의 참상을 보도하는 것을 넘어 학살이 누구의 소행인지, ‘학살 범인’ 을 추적했습니다. 끔찍한 ‘전쟁범죄’의 책임을 묻기 위함입니다.
끈질긴 추적 끝에 마샤 뉴욕타임즈 저널리스트는 부차 학살의 범인 중 하나로 러시아 제234연대를 지목했고, 지난 5월 미국 기자들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퓰리처상’ 국제보도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 전쟁 탐사 보도하기’ 세션에 패널로 참석한 그를 지난 21일(현지시간) 총회 현장에서 만났습니다.
■“학살 피해자 전화로 통화한 러 군인들의 기록·CCTV 수천 개 분석해 ‘부차 학살’ 추적”
그가 부차의 야블룬스카 거리에서 발생한 ‘학살의 범인’을 찾기 위해 확보한 건 학살을 목격한 주민이 찍은 영상과 거리와 건물에 있는 CCTV 영상, 우크라이나 군이 날린 드론 등이었습니다. 그 안에 ‘학살의 참상’이 고스란히 담겨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료 확보는 도전 그 자체였다고 합니다. 그는 “점령 3일 차에 전기가 끊겨서 CCTV 카메라가 작동하지 않는 것도 있었고, 전기를 연결해 다시 켜도 한참 뒤에나 다시 작동을 시작하는 것도 있었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CCTV 카메라가 다시 작동하면서 이전 데이터들이 삭제되기 전에 데이터를 확보하고, 우크라이나 당국 등을 설득해 자료를 얻는 일 등도 쉽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얻은 영상의 양만 23테라바이트에 달했는데 그 영상에 담긴 장갑차와 제복, 군인들의 얼굴 등은 ‘학살범인’을 찾는 퍼즐 조각 중 하나였습니다.
■사망 뒤에도 사용된 학살 희생자의 전화…러시아 군인들, 희생자 전화로 가족들에 통화
또 다른 퍼즐 조각은 러시아 병사들의 휴대전화 통화 기록이었습니다. 그는 현장에서 주민들과 이야기하던 중 일부 러시아 병사들이 민간인을 학살한 뒤, 휴대전화를 빼앗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는 우크라이나 당국을 통해 지난해 3월 부차 지역에서 러시아로 걸린 모든 통화와 메시지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입수했습니다. 또 피해자 가족들을 인터뷰하면서 학살 피해자들의 전화번호를 받아, 그 데이터베이스에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결과는 소름 끼쳤습니다. 러시아 군인들은 민간인을 살해한 뒤, 그의 전화를 사용해 러시아 본토에 있는 집에 전화를 걸었던 겁니다. 점령 기간 동안 군인들이 적어도 6명 이상의 학살 희생자 휴대전화를 사용한 걸 알게 됐습니다. 한 학살 희생자는 사망한 뒤에도 휴대전화 사용 기록이 있어 확인해봤더니, 러시아 군인 12명이 그 휴대전화를 사용해 러시아에 전화를 걸었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그는 군인들이 통화한 러시아 본토에 있는 이들의 전화번호 소유자의 소셜미디어를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가족 중 러시아 군인이 있는지 등을 역추적하고 그들과 전화통화 한 결과, 휴대전화를 사용한 군인들이 제234연대 소속 병사들이라는 것을 특정했습니다.
그는 “러시아 본토에 있는 군인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군인들은 가족들에게 통화로 작전 정보를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라며 “그들은 그저 ‘난 괜찮아, 난 괜찮아’라고 말했다고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유족 동의 거쳐 36명의 학살 희생자도 공개
우크라이나 당국은 지난해 8월 부차에서 모두 458명의 민간인이 총상과 방화, 고문으로 희생됐다고 발표했지만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 측이 꾸민 ‘조작’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즈는 부차 야블룬스카 거리에서 숨진 민간인 36명의 신원도 공개했는데, 모두 가족의 동의를 거쳤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희생자들은 군인들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고, 이는 국제법정에서 전쟁 범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라며 “가족들은 우리 보도가 정의를 실현하는 것임을 이해했고,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 "기록하는 게 우리의 일"…그가 '전쟁 현장'에 있는 이유
물론 8개월 동안 학살의 현장에 머물며 취재하는 게 쉬웠던 건 아니라고 합니다. 위험이 곳곳에서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최전방과 매우 가까웠고 키이우 지역 등 핵심 지역에 대한 지속적인 미사일 공격이 있었습니다"라며 "그 공격이 어디에 떨어질지도 알 수 없었어요."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러시아 군인들이 어디에 폭탄을 숨겨놨을지 몰라 위험했고, 인터넷이 안 되고 전기도 끊겨 매우 추웠습니다."라며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도 정신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었고, 그건 여전히 제게 도전적인 일입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현장에 있으면서 참상을 계속 기록하고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전쟁을 보도해 미래에 벌어질 전쟁은 물론 전쟁범죄가 예방되기를 언론인으로서 희망하지만, 역사는 전쟁이 멈추지 않고 반복적이며 잔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민간인에 대한 살해도 계속 일어나고 있고요. 이 같은 사실이 답답하지만 이를 모두 기록하는 게 우리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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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수 기자 (j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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